탁자에 앉아서 조심히 놓인 종이 뭉치를 이리저리 자세히 읽어보는 눈빛이 날카롭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던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빠르고 자세하게 훑어가다 말한다.
"괜찮네요."
그 앞에서 아직 얼떨떨한 모습으로 그 사람의 표정을 살피던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괜찮나요?"
그러자, 날카로운 눈매를 접고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가 말한다.
"좋아요."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그녀에게 한마디 붙인다.
"수고했어요."
그 사람은 자신이 읽었던 종이 뭉치를 잘 추슬러서 들고 일어서며 아직도 긴장해 있는 그녀를 보며 말한다.
"확실히 동네 사람이라서 다르네요. 내용이 구체적이고 사연도 잘 버물려져 방송에 참고하기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배우에 대한 내용은 날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를 떠나신 여자분 이야기도. 아무래도 가십거리에 불과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 논란이 될 수도 있고... "
그러자 그녀가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한다.
"아 그렇군요."
그가 바쁘게 움직이며 말한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네요. 저는 바빠서 이만!"
하염없이 그에게 보내는 그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그가 바쁘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가버린다.
그녀가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다 마무리된 건가?'
자신의 가방을 들어 이리저리 챙기고, 사무실을 터벅터벅 나온다.
민수지. 그녀는 한 달 전, 방송국 PD로부터 작은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문예 창작학과를 졸업한 그녀에게, 그녀의 동네에 대해, 동네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에 대해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PD는 동네와 동네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교양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첫 선을 보이려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스토리텔러로 그녀의 동네와 사람들에 관해 글을 써 볼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그것을 수락했다.
그녀는 이 동네에 꽤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동네에 어릴 적에 이사 왔었기에 아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고, 그녀를 도와줄 사람들이 꽤 됐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 대해 취재하고, 사연을 듣고,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으는 게 꽤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동네 사람들의 사연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자신만의 형식으로 묶은 글의 원고를 지금 PD에게 넘긴 것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하지만 PD가 차분하게 말한다.
“참고하려는 자료니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써 보세요.”
PD에게는 낯선 동네의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마을 사람이자 동네 사람인 주변 인물들인 것이다.
그녀는 다소 책임감도 느껴지고, 자신이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일을 시작하고 이제 최종 원고를 넘기고 나자, PD의 말에 과연 자신이 잘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원고이지 않은가. 최대한 자신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적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PD손에 원고가 넘어가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거기다, 마지막에 PD가 말한 대로 가십거리에 불과할 수 있는 내용조차 포함된 자신의 첫 원고가 내심 마음에 걸린다.
그것마저 지적한 날카로운 PD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좀 더 신경을 써서 글을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 버스를 탔고, 버스에 내려, 이제, 자신의 동네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다.
자신의 이야기의 소재가 된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아직 자신이 다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무심하게 그냥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동네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날이 막 저물어 붉은 노을이 하늘로 스며드는 것을 그녀는 조용히 바라본다. 그 밑으로, 동네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