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드릴 Jul 12. 2020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서른에 다다라서야 나는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포기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모호한 말밖에 늘어놓지 못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정신과에 들어가서 수련 생활을 시작하고, 진단을 내리고, 보고서를 쓰는 법을 배우는 동안, 나는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환자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작은 심리검사실에서는 건강함과 건강하지 않음, 절망과 희망 중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삶만을, 규정 내릴 수 없는 모호한 삶의 언어만을 건져낼 수 있었을 뿐이다. 심리학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병원 연구실에 있는 나의 책상을 정리했다. 물건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몇 권의 소설책, 이제는 펼쳐보지 않을 전공 서적, 선물로 받은 오래된 티백들. 사용해보지도 않았는데 아깝다고 생각하며 잠시 빛바랜 티백 포장지를 뒤집어보았다가 이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마음에 결핍이 있으니 심리학을 하는 것이다,라고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심리학을 하는 사람이 남보다 특별히 더 결핍이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결핍이 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그림자 쫓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림자는 시끌벅적한 중국의 시장을 넘고, 양 떼가 풀을 뜯으러 서성거리는 중앙의 거대한 초원을 넘어, 이름 모를 뾰족한 교회 첨탑에 잠시 걸리기도 했다가, 북적거리는 뉴욕 중심가를 지나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렇게 그림자는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발아래 드리워진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작가의 문장을 읽다가 예상치 못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림자가 기다랗고 구불구불한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평생 동안 그림자의 뒤꽁무니만을 쫓고, 또 쫓는다. 연못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는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그림자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연못 아래로 손을 내밀지만, 그 무엇도 잡히지 않는다. 그림자는 일생 동안 쫓아가야 하는 존재일 뿐 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닿지 않는 것을 쫓기에 우리의 마음은 그토록 목마른가. 


  나는 그림자를 쫓다가 심리학을 선택했다. 덜 외로워지고 싶었다. 더 단단해지고 싶었다.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마음에 구멍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알려주었던 유일한 것.


  나는 심리학자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단보다는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적합한 사람이었던 것이고, 그것을 깨닫는 데 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정신과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많은 인연을 만났다. 환자들의 얼굴보다는 손이 떠오른다. 심리검사를 하다 보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네모난 나무토막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는 손을 볼 수 있었다. 까무잡잡하고 굳은살이 배겨있는 손, 얇고 가늘고 흰 손, 마디가 두껍고 어쩐지 모호한 미소를 띠고 있는 묵직한 손, 그리고 나의 손. 그 사람의 손은 그림을 그린 종이를 내밀고는 이내 검사실 밖으로 멀어져 가고,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간다. 나는 언제나 혼란에 젖었다. 그 사람에 대해 무엇도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내가 본 것은 그 사람의 과거도 아니고, 남보다 특이한 행동도 아닌, 그저 정의할 수 없고 보고서 안에 녹여낼 수도 없는 흐릿한 그림자였으므로. 그것이 내가 본 전부였으므로.


  어쨌든 모든 것은 끝났다. 나는 심리학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손님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작은 책방의 서점 지기로 일한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날에는 온종일 무료하게 졸거나 동네를 산책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훨씬 마음에 든다. 펼쳐보는 심리학 책이라고는 대형서점에 놀러 갈 때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의 페이지를 잠깐 들춰보는 것이 전부다. 무심코 옆에서 어딘가 고심하는 얼굴로 심리학 책을 넘기는 여자의 손을 바라본다. 어딘가 찡그린 얼굴을 한 사색가의 손을. 그러다가는 이내 여자의 손을 훔쳐보고 있는 게 들킬까 고개를 깊게 숙인다. 비로소 심리학에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다.


  누군가가 나 대신 사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병원 연구실의 빈자리에 늦은 인사를 보낸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작가의 이전글 너를 만나기까지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