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요셉

10. 부자의 광기

by 이세벽

요셉은 상인들에게 돌려받은 물건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년 뒤, 요셉은 귀족처럼 좋은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금은보화와 하인을 부리고 넓은 밭과 과수원을 살만큼 넉넉한 돈을 모았다.


부자가 된 요셉은 여자들 틈에서 술과 향락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날이 허무했다. 연락은 요셉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요셉은 아내 라합과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태어난 아이가 사내인지 아니면 계집인지도 궁금해졌고 다 자란 아이들 모습도 눈에 밟혔다.


라헬이 그랬던 것처럼 라합도 둘째를 낳다가 아기와 함께 죽었지만 요셉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고아가 된 그의 딸 마르다가 거상에게 팔려 간 것조차 요셉은 까마득하게 몰랐다.


요셉은 낙타에 많은 선물을 싣고 아내와 자식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했다. 자기 재산을 모두 정리해서 금화로 바꾸었고 이제 아내와 함께 그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요셉은 자신이 부에 집착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떠도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잃어버린 그 마을로 가는 도중에 잔인하고 악랄한 강도를 만나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건졌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요셉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고 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요셉은 그대로 누워서 짐승의 밥이 되고 싶었다. 그는 뙤약볕 아래서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곤 했다.




겨우 의식을 되찾았을 땐 낯선 여관이었다. 여관주인이 자기를 극진하게 보살펴 준 이유를 안 것은 사나흘 후였다.


자기를 구해준 사람은 부자 사독이었다. 가깝게 지낸 적은 없지만 암몬이 귀한 보석을 구해서 사독에게 팔아넘길 때 몇 번 그의 집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사독은 풍채가 좋고 얼굴에 기름이 흐르는 부자였지만 부자답지 않게 사람도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독은 보석을 가지고 온 암몬과 요셉을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하게 대접하던 사람이었다.


사독은 오갈 데 없는 요셉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사독의 집은 예전보다 더 크고 화려했다.


요셉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두어 달 가까이 몸종처럼 시중들고 돌봐준 하녀는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앳된 소녀였다. 소녀의 이름은 요셉이 태어난 아기에게 지어준 이름과 같았다. 마르다.


너무 흔한 이름이어서 마르다라는 이름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이번엔 왠지 달랐다. 소녀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딸의 이름도 마르다였어. 아마 지금쯤 마르다처럼 예쁜 소녀가 되어 있을 거야."


요셉은 어쩐지 마르다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을 느꼈다.


"어서 회복되셔서 돌아가셔야죠."


사독의 몸종 마르다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 적도 아버지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다.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요셉이 그 저택을 떠나야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요셉은 자신이 빈털터리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요셉은 사독의 침실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보화들을 떠올렸다. 지우려고 해도 자꾸 생각났고 눈앞에 어른 거렸다.


보석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독은 암몬과 거래가 끊어진 뒤에도 끊임없이 보석을 사 모았을 게 틀림없었다.


요셉은 사독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침실로 몰래 들어갔다. 억제할 수 없는 강한 충동이 일었고 사뭇 흥분되기까지 했다.


노력해서 모은 모든 재산을 강도에게 빼앗긴 복수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세상 탓이야. 어쩔 수 없어. 이대로 돌아간다면 억울해서 화병에 걸리고 말 거야. 사독의 것을 조금 가져간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어.'


요셉은 어렵지 않게 크고 단단한 보석함을 침대 밑에서 찾아냈다. 상자 안에는 호박, 사파이어, 진주, 다이아몬드 등 값이 나가는 것으로 알려진 진귀한 갖은 보석이 들어 있었다.


침대 밑엔 다른 보석함보다 두 배나 더 큰 상자도 있었다. 그 상자엔 금화가 가득했다. 그 정도의 보물과 금화면 어쩌면 예루살렘을 통째로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이 돈이면 세상을 전부 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 권력을 사고 부릴 수도 있다면 나는 사독 하나쯤 죽이고도 무사할 거야. 내가 강도를 만난 건 잘된 일일지 몰라.'


요셉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요셉이 금은보화가 든 가방을 전부 가져가려고 끌어내고 있을 때였다. 마르다가 마침 찻잔을 들고 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요셉의 숨소리에서 두려움을 느낀 마르다가 사색이 되어 뒷걸음쳤다. 요셉은 소녀를 방 안으로 낚아채서 입을 틀어막고 침대에 눕혔다.


요셉은 그저 마르다를 위협해서 조용히 시킬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침대에 누운 마르다를 보자 그동안 억눌렸던 욕정이 치솟았다. 요셉은 순식간에 마르다를 겁탈했다.


하지만 요셉은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영원히 모르고 죽을 운명이었다.


“나와 함께 가자.”


요셉은 겁을 먹고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는 마르다에게 말했다.


“........”


마르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사독이 들어왔다. 요셉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사독의 가슴을 칼로 찔러 쓰러트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풍채 좋고 인심 좋은 남자가 쓰러졌다.


그 사이 마르다가 달아나려고 문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흥분한 요셉은 마르다를 붙잡아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칼로 저항하는 마르다의 가슴팍을 깊이 찔렀다.


당황한 요셉은 잠시 허둥댔다. 그러나 곧 정신을 수습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마치 심부름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보석 상자들을 챙겨 마차에 싣고 사독의 집을 빠져나왔다.


하인들은 요셉이 마차 가득 싣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침실에 주인 사독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다.




요셉은 경비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웃 나라를 떠돌며 새로운 신분을 만들었다.


마침내 귀족 신분으로 변신한 요셉은 잃어버린 마을에 들렀다.


하지만 라합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유대 예루살렘에 도착한 요셉은 훔친 부를 밑천으로 관료들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그들의 권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안하고 초조했던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로마 귀족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그 자리에 많은 바리새 사람과 율법사 그리고 유대 관리들을 초대해서 자기의 부와 신분을 과시하여 의구심을 차단했다.


요셉은 돈을 필요로 하는 고위 관료들과 로마 귀족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신변을 보호하고 관직을 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를 통틀어 최고의 거부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그의 이름은 요셉이 아니라 요아스였다.


요셉의 새 이름 요아스는 로마 귀족들은 물론 원로원, 그리고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성공한 장사꾼이고 수완이 좋은 관리이며 인심이 후하고 배짱이 넘치는 유쾌한 사내였다.


“선생의 집은 로마의 부자들 집보다 더 넓고 호화롭기로 소문이 나있더군요. 내가 들어오면서 보니까 과연 소문대로입니다. 힘센 노예들도 많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여자 노예들이 득실거리는데 그저 놀라울 지경입니다. 헛소문이 아니었습니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황제의 총애를 받는 본디오 빌라도 총독 각하께서 온 유대 땅에 자유와 평화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선생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지 않았겠소.”


가이우스의 말투는 비꼬는 듯 거만했다.


“자유와 평화!”


단숨에 와인을 들이켠 요셉이 빈 와인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가이우스를 가소롭게 쳐다봤다.


“나 같이 로마에 빚진 게 없는 사람도 로마 나리에게 아부를 해야 하는 판인데, 산헤드린의 개나리들은 말해 뭘 하겠소! 사두개 지도자들이나 바리새 지도자들 율법사, 서기관 같은 유대의 지도자들 치고 로마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이 어디 있겠소! 평화라고 했소. 그들은 목이 달아날까 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소.”


“그거야 자기들의 욕망 탓이 아니겠소!”


“욕망!”


“더 많은 재물과 더 높은 자리를 얻으려는 자들 말이오.”


“천만에, 로마 나리들과 관계를 이어가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데 로마 나리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곤 여자와 재물밖에 없지 않소. 나리들과 유대인 사이에 진심 어린 우정이나 친분이 어디 존재하기나 합니까! 유대인들은 안팎으로 중상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로마 나리들 가까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안 그렇소! 붙어 있는 다고해도 목숨이 온전히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게 최선의 방법 아니오. 나야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황제와 친분이 있으니 로마 나리들이 함부로 중상모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오. 게다가 백성들 꼴은 또 어떻습니까. 재산과 인구를 조사한 뒤로 소득의 사분의 1을 세금으로 바쳐왔소. 덕택에 유대인들은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소. 설마 그것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수천 명씩 잡아다가 십자가에 처형해도 왜 유대인들이 굽히지 않고 툭하면 반란을 일으킬까요. 내가 말해볼까요. 가난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아시겠소! 그러니까 내 앞에서 자유니 평화니 따위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유대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억압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소. 그것이 진실이오. 물론 나야 유대인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소. 나는 나만 잘 먹고살면 되오. 그러기 위해서는 나리들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야겠지만.”


요셉은 종국에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부드럽게 말을 맺었다.


요셉 아니 요아스는 그즈음 친구인 바라바가 이끄는 반군에게 적지 않은 군비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친구 바라바가 반군의 지도자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아무튼 요셉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늘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포악해지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황제께서 총독을 갈아치운 것도 선생께서 말한 그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였소.”


“그러면 뭐 합니까. 본디오 빌라도도 만만치 않을 걸요. 하하하......”


“당신네 왕 헤롯 안티파스도 마찬가지 아니오.”


“그러니까 내가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을 개나리라 하지 않았소. 하하하....... 아무런 득도 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합시다. 자유와 평화라는 말에 내가 잠시 흥분했던 것 같소.”


“자유와 평화가 선생을 흥분시켰습니다. 우리는 선생의 선물 때문에 흥분할지도 모르겠소.”

푸블리우스가 말했다.


“두 분은 뭘 바라고 오셨습니까? 나를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시지는 않았을 테고.”

술이 취한 요셉은 비아냥거렸다. 요셉은 로마 귀족들 사이에 자신이 귀한 것을 후하게 퍼주기로 소문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물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요셉이 로마 귀족들과 친분을 쌓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선생에 대해선 뭐 아는 게 있어야죠. 다들 선생을 모르더군요. 선생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 말고는.”


“그러니까 금은보화라도 얻어가려고 오셨군요.”


“하하......... 그런 걸 알고 계시니까 하는 말이지만 기왕 주려거든 빨리 좀 주어 보시오. 이번엔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값이 나가는 것을 줄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나는 사람을 부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두 분도 개입니다. 그렇게도 개가 되고 싶습니까? 나하고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겠습니까.”


술이 취한 요셉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


가이우스와 푸블리우스가 뜨악한 얼굴로 요셉을 바라봤다.


“개라는 말은 개나리란 뜻입니다. 아무튼 개라고 말씀드린 건 사과합니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을 친구로 초대했습니다. 내 돈은 어디 거저 주워오는 줄 압니까. 당신들이 내 친구라면 개뼈다귀는 잠시 잊고 내 일과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주시오. 개뼈다귀 같은 보석과 돈은 가는 길에 얼마든지 싸 보내겠소. 친구들이여, 만약 내가 주는 개뼈다귀를 먹고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면 불충한 개처럼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술에 취한 요셉은 상대방이 눈에 불을 뿜는 것도 알지 못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쉬지 않고 지껄였다. 요셉은 술이 취해 순식간에 내뱉어놓은 자기의 실수를 수습한다는 것이 도리어 더 화근을 키웠던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온 줄 아시오.”


가이우스가 분을 가라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요셉이 히죽 웃으며 가이우스를 바라봤다.


“내 개가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보려고 왔소. 그런데 알고 보니 미친개였어.”


가이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요셉의 따귀를 후려쳤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지.”


푸블리우스가 불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술에 취한 요셉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만찬장 밖으로 나갔다. 가이우스와 푸블리우스도 돌아가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데 요셉이 칼을 들고 돌아와서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주춤하던 두 귀족은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오늘 내가 너희 개놈들의 목을 치리라.”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실성한 듯 헤픈 웃음을 흘리며 다가와서 가이우스와 푸블리우스를 향해 칼을 겨눴다.


“이놈이, 실성을 해도 단단히 했구나. 그래 죽일 용기가 있으면 죽여 봐라. 네놈은 내일이면 까마귀밥이 될 것이다.”


가이우스가 목을 내밀었다.


“그래 이놈아, 이렇게 사는 것도 지겹다.”


요셉은 순식간에 가이우스의 목을 베어버렸다.


“허 저놈이 미쳐버렸구나.”


푸블리우스가 몸이 굳어버린 채 떠듬떠듬 소리쳤다.


“네 놈도 죽어라.”


광분한 요셉은 푸블리우스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칼날은 푸블리우스의 얼굴을 사선으로 그리며 빗나갔다. 겁에 질린 푸불리우스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울부짖었다. 검붉은 피가 그의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렸다. 요셉은 다시 칼끝을 푸불리우스의 살찐 배 깊숙이 찔렀다.


“시원하군.”


요셉은 가이우스와 푸불리우스의 시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더니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포도주를 들이켰다.


입가로 흘러내린 포도주가 피투성이가 된 그의 겉옷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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