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도적에 불과했을 거야. 하지만 교만한 자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데는 나보다 네가 더 크게 성공한 것 같더군. 네가 어쩌다 혁명군 대장까지 되었던 거야. 난 그게 몹시 궁금했어. 양치기 바라바가 어쩌다 혁명군이 되었지, 하고 생각해 보곤 했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더군. 다윗처럼 돌팔매에 능하긴 했지. 어쩌면 왕이 될 운명이었을지 모르겠군."
요셉은 바라바를 비꼬고 원망하다가 분노했다.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은 사나워졌다.
"나는, 이 요셉은 바라바, 네가, 혁명군 대장인 내 친구가, 이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서 나를 꺼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로 잡혀와. 뻔뻔스럽게.”
이윽고 요셉이 바라바를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요셉, 넌 지금 죽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참다못한 바라바가 낮게 쏘아붙였다.
"내가!"
외친 요셉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바를 노려봤다. 바라바의 말이 맞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목동이었을 때,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서 영접했던 그 아기를 모두 기억할 거야. 나는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뜻을, 나에게 미래의 왕을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기 위해 살았다."
요셉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라바가 입을 열었다.
"혁명군 대장이 된 후에도 베들레헴 구유에서 영접했던 그 아기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 그분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포기한 적은 없지만 한 가지 깨달았지. 내가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찾을 거라는 걸. 그분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던 거다. 혁명군을 이끌고 봉기를 준비하면서도 그분이 나를 찾아주기를 바랐다. 그분이 혁명의 이유이고 혁명의 완성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바라바의 차분한 음성이 라몬의 가슴에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라몬은 문득 자신은 그분을 찾으려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어쩌면 헤롯의 칼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랐다.
소년일 때 만났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동산으로 찾아왔지만 그가 정말 자신이 영접한 아기인지 확신은 없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구심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믿음마저도 증발해버리고 만 것 같았다.
요셉은 바라바의 말에 마음의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애써 비웃는 얼굴을 했다.
요셉도 그 아기의 존재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니었다. 천사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별의 인도하심으로 왕이 될 아기를 영접했는데 잊힐 리 없었다.
그도 가끔 아기에 대해 생각했고 선지자나 랍비로 불리는 자들 중에 그 아기가 있을지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좋아 그것만은 인정하지. 우리가 어떻게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있겠어. 나도 가끔은 그 아기를 찾아보려고 했으니까."
요셉은 라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겠지만 언젠가 친하게 지내는 사두개 사람과 함께 예수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다. 혹시 그자가 그 아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요셉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라몬을 바라봤다.
"어느 날 내가 그자에게 물었지. 선하신 선생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영생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질문하고 말았어. 뭐든지 물어봐야 했거든. 어쩌면 그자를 실험해보고 싶었는지 모르지. 왕이 될 자질이 있는지 말아야. "
"그래서......."
라몬은 요셉의 다음 말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자가 그러더군. 어찌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리고.......”
바라바는 자기가 만난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계명을 지키라고 하더군. 난 주저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뻔 한 거짓말을 했다. 다윗도 지키지 못한 계명을 누가 다 지킬 수 있겠어. 물론 그자도 내 말을 믿진 않았겠지.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자기를 따르라고 하더군.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지. 부자일수록 그 말을 따르기가 힘들지. 내가 당혹스러워하니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그자를 믿지 않기로 했지. 그자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나는 하늘에 가기는 틀린 셈이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 그자가 왕이 되려고 했다면 내 돈을 자기에게 가져오라 했을 거라고. 그런데 그자는 내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했거든. 그래서 나도 그자가 왕이 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도 그분을 만나봤다."
바라바가 말했다.
“사실 내 심복이던 가룟 유다가 나에게 예수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망설였다. 예수를 만나는 게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예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는 소문이 부담이 되었던 거지. 너도 알다시피 예수를 죽이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사들은 나의 적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돌아보는 게 지도자의 자존심과 용기라고 생각했지. 무모한 시도로 혁명군을 혼란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목숨을 걸고 예수를 만났다는 거지? 겁쟁이 혁명군 대장 나리께서.......”
요셉이 비아냥댔다.
“네 말대로 난 예수를 찾아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가룟 유다가 예수를 우리의 은거지인 동굴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지.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에 가룟 유다가 정말로 예수를 동굴로 데리고 왔다. 예수는 제자들을 도시에 남겨 둔 채 홀로 왔더군. 먼 길을 마다 않고 와준 예수가 고마웠지. 그전에도 가룟 유다는 틈이 날 때마다 예수에게 왕이 되어 백성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간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처럼 예수와 단 둘이 여행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를 설득하려 애썼다고 하더군. 가룟 유다는 명석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지. 거기다 지도력과 결단력까지 겸비한 사람이다. 예수도 그런 가룟 유다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 만약 예수가 가룟 유다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 먼 길을 동행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솔직히 난 가룟 유다가 예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 자기 입으로 말했듯이 예수는 죽음에 자기 운명을 내던지고 있는데 말이다.”
바라바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첫 대면에서 나는 예수가 가룟 유다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가룟 유다가 그토록 예수를 믿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가룟 유다는 이미 내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사람이었지. 가룟 유다는 예수를 혁명군의 새로운 지도자로 또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로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가룟 유다가 지도자를 잃어버린 혁명군을 설득해서 봉기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들의 우두머리는 내가 아니라 예수가 되는 거지.”
바라바는 쓰게 웃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믿는 건 단지 기적을 봤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수는 온화한 듯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었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지.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때와 장소를 미리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나 대신 예수를 새로운 지도자로 모시고 싶어 했고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와 예수와의 만남을 적극 주선했던 것이지. 그때부터 이미 가룟 유다는 나 대신 예수가 우리 혁명군을 이끌어 주길 바랐던 거다.”
"......."
“그분이 귀신을 쫓고 갖은 병을 다 고치며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다 위를 걷고 풍랑을 잔잔케 했다는 것을 가룟 유다를 통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고....... 솔직히 수상한 냄새가 났지만, 가룟 유다가 직접 목격하고 전해준 것이라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룟 유다 역시 그분의 그런 능력과 권위 있는 말씀에 크게 감동받았던 게 틀림없었다.”
"혁명군 대장 자리가 위태로웠나? 심복을 잃게 생겨서 질투가 났었나 보군. 선지자는 선지자의 일을 할 뿐이지. 기도의 능력이 뛰어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자 같은 선지자들은 왕을 세워서 나라를 다스리게 해. 기적만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거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현실이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왕은 이런 현실의 문제를 풀어야 돼. 현실이야 말로 진짜 삶이거든.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자는 왕이 되기보다는 선지자로 남게 내버려 뒀어야 해. 가룟 유다가 그자를 왕으로 모시려 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란 말이다. 가룟 유다가 그자를 설득해서 백성들 앞에서 너에게 기름 붓게 했더라면 지금쯤 세상이 바뀌었을지 모르지. 좋게 말하면 칼로 백성들의 아픈 곳을 긁어준 네가 훨씬 더 왕의 모습을 갖췄지. 기득권을 가진 부자와 권력자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권력을 잡은 후에는 그들에게도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면 될 것이고. 어차피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또 부자는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너는 이제 왕이 되기는 틀린 것 같군. 목숨이나 구걸해야 될 처지가 되었으니.”
요셉이 비꼬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봉기에 마음이 급해져서 예수를 등에 업고라도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 백성들이 따르는 선지자 예수가 적극 지원해 준다면 혁명이 훨씬 순조로워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간청했지. 내 심복이었던 가룟 유다가, 삼 년 전 내 권유로, 예수 공동체의 일원이 된 그가, 완전히 예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동굴로 데리고 온 것은 봉기를 일으키고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을 그에게 다짐받기 위한 것이었지. 가룟 유다는 자기 스승인 예수가 봉기하면 언제라도 혁명군을 동원할 것을 다짐하라고 나에게 종용하기까지 했다. 요셉 니, 말대로 섭섭하긴 했지만 받아들이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자가 거절한 거군.”
요셉이 말했다.
“예수가 왕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종용했는데도 결국 예수는 대답을 피했지.”
바라바가 말했다.
“교묘한 말장난이나 늘어놓았겠지. 그자의 재능이니까”
요셉이 말했다.
“유다야, 어린애처럼 성급하게 보채는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것이 없다. 다만 너의 뜻을 버리고 내 뜻과 가르침을 따르던지 네 친구를 따르던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를 한참 바라보더군. 마치 오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나는 오래전 영접했던 아기의 눈에서 보았던 평안을 느끼고 무릎을 꿇을 뻔했지.”
바라바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진정이 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예수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동요가 일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이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고 그분의 손을 잡고 싶은 뜨거운 마음도 생겼지."
"......"
“그때 예수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하더군. 칼과 군대를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그러면 머지않아 죽음을 이기고 오는 참된 왕을 보게 될 거라 했지. 나는 혼란스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분이 일어서서 돌아가려고 할 때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습니까,라고. 그분이 돌아서서 그러더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운 나라라야 영원하다. 칼로 세운 나라는 칼로 허물어진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예루살렘엔 로마의 시녀들이 득실거리고 대사제들도 타락했습니다. 예배드릴 백성이 있고 성전을 지을 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 외에 또 어디에다 성전을 짓겠습니까. 나는 좀 실망스러워서 투덜거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분은 흔들림 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군. 네 앞에 있는 이가 살아 있는 성전이다,라고.”
바라바가 말했다.
“결국 너에게 기름 부어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군.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했어야지. 너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었던 거야.”
요셉이 또다시 비아냥댔다.
“.........”
바라바가 말없이 요셉을 바라봤다.
“그자가 한 말이 생각나는군.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자에겐 평범한 말도 진리로 바꾸어 놓는 능력의 혀가 있지. 그러니 그자가 무능한 너쯤이야 가지고 놀았겠지.”
“그 후로도 가룟 유다는 예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줄 것을 귀찮을 정도로 간청했던 걸로 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며 가룟 유다를 실망시켰다. 부활을 믿지 않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의 부활 선포는 공허했던 거지. 그러나 가룟 유다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룟 유다야 말로 유대의 최고 랍비지.”
바라바는 요셉의 비아냥에도 아량곳 하지 않았다.
그때 철창 밖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