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왕을 찾아서
13. 가룟 유다의 깨달음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갑자기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벽에 기대앉아 있던 바라바와 요셉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그자 일 거야. 내가 던져주던 것을 받아먹던 귀족 말이다. 그자가 어떻게든 나를 찾아올 거라고 했잖아."
먼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난 요셉이 흥분한 듯 바라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문이 열리기만 하면 뛰쳐나갈 것처럼 문 앞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요셉은 문밖에서 잠금쇠를 푸는 소리가 나는 동안 한차례 고개를 돌려 누워 있는 라몬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너는 구해줄게.'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라몬은 그 웃음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요셉의 등 뒤를 바라보던 바라바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뜬금없는 기억의 소환이었다.
오래전 고향과 집과 가족과 친구를 두고 떠나 온 바라바는 떠도는 소문을 쫓아다녔다. 선지자나 예언자, 훌륭한 선생이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갔다.
광야와 동굴과 들판과 산과 도시를 떠돌아다녔으나 애타게 찾던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지쳐갈 무렵이었다. 바라바는 히포스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여행을 위해 돈을 마련해야 했던 바라바는 다른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막노동을 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무거운 돌과 목재를 나르고 받은 임금을 최대한 아껴서 모았다.
“바라바,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곳에 정착하는 것도 좋아. 역마살이 낀 사람들은 객사하기 십상이거든. 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더 나이 먹기 전에 장가도 가고 자식도 낳아야지. 안 그런가!”
바라바가 새로운 각오로 다음 여행지로 떠나려고 준비할 때였다. 입은 거칠지만 인정이 많은 십장이 바라바를 붙잡았다.
“십장님 말처럼 언젠가 정착을 해야 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겠죠."
바라바가 말했다.
“난 자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지. 떠돌이들에겐 그런 사연이 있기 마련이거든.”
십장이 말했다.
“저는 도망자가 아닙니다. 다만 유대의 왕을 찾아다닐 뿐입니다.”
바라바가 말했다.
"자네가 왕을 찾아다닌다고? 아하, 메시아의 출현을 믿는군. 성서에 예언된......"
십장은 비웃음 섞인 얼굴로 바라바를 바라봤다.
"그럴지도 모르죠. 제가 찾아다니는 그분이 성서에 예언된 그분일지도......."
"메시아는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출현을 기다리면 되는 거라네. 하하...... 그런 거라면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거라고. 자네가 무슨 재주로 메시아를 찾을 수 있겠나. 그러지 말고 곧 축제가 열리는데 구경이라도 하고 떠나게. 자네가 메시아를 찾아서 팔자 좋게 세상 구경을 하고 다니는 거라면, 여기 히포스에서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축제를 놓쳐선 안 되지 않겠나. 혹시 아나 축제 기간 동안에 메시아를 만나게 될 줄. 사실 말이야 자네가 경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 혹시 아나 자네가 우승자가 되면 메시아가 자네를 찾아올지. 하하하하”
십장의 사람 좋은 너털웃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바라바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히포스 축제의 영웅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을 하고 기술을 쌓아온 젊은이들이 멀리서부터 모여들었다. 마라톤과 권투, 창던지기, 검술, 레슬링 등 모든 경기에서 우승하는 자가 그해의 최고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축제를 앞두고 용기 있는 젊은이들은 각종 운동 경기에 참석해서 힘을 겨뤘다. 축제의 영웅을 뽑기 위한 시작이었다.
어렵지 않게 모든 경기에서 예선을 통과한 바라바는 연습과 훈련으로 준결승전에 대비했다. 창을 몸에 익히고 레슬링과 권투를 배웠다.
“내 친구 맛단이야. 이래 봬도 왕년엔 이 친구를 이길 자가 없었지. 몇 년 동안 이 친구가 모든 종목에서 우승자였어. 마라톤까지도 말이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일이지. 아직까지는 맛단이 최고의 영웅이자 전설이지.”
십장은 바라바에게 나이 많고 눈빛이 흐린 사내를 소개했다. 맛단이 숨을 내쉴 때마다 역한 술 냄새가 났다. 옷과 몸에서도 악취가 풍겼다. 그는 거리에서 자고 구걸해서 연명하는 주정뱅이 같았다. 그 어디에서도 영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라바는 별 기대 없이 맛단과 훈련을 시작했다. 막상 훈련에 들어가자 망가진 맛단의 몸과 눈빛 어딘가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맛단은 잃었던 자신의 명성을 바라바에게서 되찾으려는 듯 보였다.
맛단은 거친 입으로 바라바를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어릴 때부터 양치기로 산과 들판을 넘나들며 단련된 바라바의 몸은 막 노동판을 전전하며 더욱 튼튼해졌다. 하지만 바라바의 근육들은 맛단의 혹독한 훈련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바라바는 오기와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체력단련이 끝나자 비로소 맛단은 자신의 기술들을 전수해 주었다. 레슬링과 권투, 창던지기 그리고 마라톤의 요령까지.
“싸울 때는 내가 가르쳐 준 것들을 잊어라. 기술이나 꾀를 생각하면서 싸운다면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기술이나 꾀가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와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런 것들이 이미 네 몸속에 녹아 피와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
맛단이 말했다.
“제 둔한 몸으로 우승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바가 말했다.
“피나는 훈련과 연습만이 네 몸과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맛단이 말했다.
석달 남짓 결승전까지 바라바는 맛단에게 배운 것들을 몸에 익히려고 쉬지 않고 연습했다. 바라바는 더욱 강인해지고 민첩해진 자신을 느꼈다.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합을 불과 며칠 앞두었을 때였다. 맛단이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하다가 거친 히포스의 젊은이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히포스의 젊은이들은 왕년의 챔피언인 맛단이 타지에서 온 바라바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맛단은 아직 누구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히포스에는 자신이 가르칠만한 인품을 갖춘 젊은이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맛단이 외지에서 온 에브라다 촌놈에게 열정을 쏟아붓자 히포스 젊은이들의 마음이 배배 꼬여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히포스의 젊은이들은 왕년의 챔피언의 막말을 더 이상 참아주지 않았다.
맛단이 달려드는 젊은이들을 제압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맛단의 몸속에서 꿈틀대는 기술과 담력을 발휘하기에는 그의 근육들이 너무 많이 쇠잔해 있었다. 세월과 술로 망가진 그는 젊은이들을 향해 헛손질만 되풀이했다.
술집에 있던 남자들이 싸움을 말렸지만 성난 젊은이들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맛단에게 달려들었다. 젊은이들은 아무에게나 거들먹거리는 챔피언 맛단을 쓰러트리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십장과 함께 목을 축이려고 술집에 들어온 바라바는 히포스 젊은이들을 뜯어말리려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히포스 젊은이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라바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라바는 방어만 하고 공격을 자제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이 거칠어지고 심지어 칼까지 빼들자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바라바는 늘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투봉으로 칼을 휘두르며 발악하는 히포스 젊은이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두 명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바라바가 다시 투봉을 높이 쳐들자 미친 듯 달려들던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뒷걸음쳤다.
흥분한 바라바가 달아나는 젊은이를 향해 투봉을 날리려 할 때였다. 누군가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이제 그만하시죠? 다윗의 자손이신 선생님께서 이기셨습니다."
바라바보다는 어렸다. 하지만 신념과 의지로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유대의 귀족 자제였으면서 유대의 혁명과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가룟 유다였다.
"내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걸 어찌 알았소?"
"투봉을 다루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게다가 에브라다에서 오셨다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포스의 장로들과 회당장은 타지 사람인 바라바를 심문했다. 하지만 바라바는 가룟 유다의 적극적인 변론과 옹호로 풀려 날 수 있었다. 대신 즉시 추방되었다. 때문에 그는 히포스 축제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바라바는 가룟 유다를 따라 반군의 본거지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훗날 바라바가 대장군으로 추대될 수 있었던 것도 가룟 유다의 영향력이 컸다.
바라바가 대장군이 된 뒤로도 가룟 유다는 책사를 자청했다. 우연히 만난 친구 요셉의 재정적, 물질적 지원과 책사 가룟 유다의 지혜로 혁명은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가룟 유다는 에브라다 출신이자 다윗의 자손인 바라바가 유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지지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뒤를 쫓아다니면서부터 어쩐 일인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수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했다.
바라바 입장에서 보면 가룟 유다가 예수의 열두 제자가 된 것은 어쩌면 완전한 변심이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바라바는 평소에도 자신이 유대의 새로운 왕을 모시기 위해서 혁명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대장군이 된 뒤에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가룟 유다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밝혀 왔던 터였다.
바라바의 지나친 겸손과 망설임에 가룟 유다는 대놓고 실망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면서부터는 바라바의 뜻을 공경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뿐이 아니라 예수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다.
가룟 유다의 마음은 바라바에서 예수로 옮겨 간 것이었다. 그러나 바라바는 조금도 가룟 유다를 원망 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룟 유다가 왕이 되실 분을 모셔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튼 예수를 잘 모르는 바라바였지만 그분과 더불어 왕위를 놓고 다툼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도리어 가룟 유다가 믿고 따르는 예수를 왕으로 추대할 뜻을 비췄다. 그만큼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신하고 있었고 가룟 유다의 안목과 판단을 믿었다.
그것을 잘 아는 가룟 유다는 자신의 스승,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바라바와 머리를 맞대어 왔다. 그리고 방법과 시기를 의논하기 위해 바라바를 만나 왔었다.
바라바가 잡혀오기 직전까지도 그 논의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예수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진전은 없었다. 아니 예수가 거절의 뜻을 분명하게 했는데도 가룟 유다가 고집스럽게 설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룟 유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어서 예수를 설득하고야 말 것이다.'
그런 생각이 희망의 불꽃처럼 삽시간에 바라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간수가 무거운 나무 문을 들어 올리면서 어렵사리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