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바라바를 만나다
14. 혁명에 대한 집착
이윽고 육중한 나무 문이 열리고 창을 든 간수가 들어왔다. 그는 서 있는 요셉을 훑어보고 바라바와 라몬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더니 돌아나갔다. 그가 나간 뒤에도 무거운 문이 닫히지 않고 반쯤 열려 있었다.
순간 바라바는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두 발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솟구쳐 오르던 충동을 풀썩 내려놓았다.
라몬은 누운 채로 바라바의 몸이 격동하는 것과 동시에 지반이 꺼지 듯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
"길게는 안 됩니다. 빨리 만나고 나오십시오."
간수들의 목소리가 엄중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한 사내가 문밖의 어둠 속에서 간수들 사이를 빠져나와 감옥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사내의 시선이 요셉을 지나쳐 바라바에게로 가 꽂혔다. 요셉의 얼굴에 피었던 웃음이 사막을 만난 듯 시들었다.
“대장군님!”
바라바를 바라보는 사내의 목소리는 안타까움과 울분으로 떨렸다.
"유다. 자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벌떡 일어난 바라바가 다가온 가룟 유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일찍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몸이 많이 상하셨군요.”
가룟 유다가 요셉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저 친구는 염려하지 않아도 돼. 내 고향 에브라다에서 함께 자란 친구라네. 여기선 무슨 말이든 해도 돼. 우연히도 모두 에브라다 출신이거든. 저기 누워 있는 라몬조차도 에브라다에서 잡혀온 내 친구라네.”
바라바는 에브라다를 강조했다.
“어떻게.......”
가룟 유다는 못 믿겠다는 듯 다시 한번 요셉과 누워 있는 라몬을 돌아보았다. 가룟 유다와 눈이 마주친 라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요셉은 화가 난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친구는 불행히도 우리에게 돈과 무기를 보내준 친구일세. 내가 자네에게 말한 부자가 바로 이 친구......”
바라바가 말했다.
“아, 예. 선생님이셨군요. 그런데 어쩌다.......”
가룟 유다가 요셉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요셉은 가룟 유다를 외면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 이렇게 되었을 뿐이야.”
바라바가 말했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
바라바가 말했다.
“대장군님이 잡히셨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가 여러 장군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 요새를 습격이라도 할 작정이었지만..... ”
가룟 유다가 말했다.
“나 하나 구하자고 혁명군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네."
"그래서 저도 장군들을 일단 달래 놓았지만 대장군님이 안 계시는데 혁명 봉기를 누가 이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돌아가면 혁명군이 요새를 습격하게 될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는 말을 끊고 요셉을 돌아봤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화가 난 듯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기밀이 새 나가면 로마군이 요새를 겹겹이 둘러싸고 방어 태세를 구축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대장군을 당장 처형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들은 요새를 습격해서 대장군님을 구출하는 것이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대장군님을 뵙고 오겠다고 해서 잠시 미뤘지만."
가룟 유다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었다.
"유다, 나를 구출하는 데 혁명군의 군사력을 낭비해서는 안 돼. 어렵더라도 힘을 합쳐서 봉기를 일으키도록 설득해 주게.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내 친구가 여기 있으니 곧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칠 걸세. 식량도, 물자도 더 이상 지원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버티겠나. 식량을 비롯해서 모든 물자가 부족해지면 사기가 땅으로 떨어질 거야. 봉기를 해보기도 전에 분열이 일어나고 혁명군이 와해될 게 뻔해. 뿔뿔이 흩어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나. 강도짓을 하거나 꿈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니 자네가 그들을 설득해 주게. 내가 힘을 합해 봉기를 서두르라고 했다고 전하게. 로마주둔군은 6천 명에 불과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헤롯의 용병들이 무장을 하기 전에 신속하게 헤롯궁을 점령해야 하네. 그리고 동시에 총독궁을 치게. 성공하고 나면 이웃 속국들이 동조하게 될 걸세. 우리의 혁명이 팔레스타인과 아프리카를 자극하게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독립혁명이 일어날 거야. 그러면 로마군사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겠지.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네. 아니 실패란 없어. 우리 혁명군이 다 죽는다고 해도 백성들 가슴속에 묻혀 있던 독립 의지를 일깨워줄 테니까. 우리가 죽은 뒤에도 봉기는 끝없이 이어질 거고 언젠가 해방은 오기 마련이네. 누구보다도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바라바가 말했다.
“사실....... 벌써 크고 작은 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탈 세력도 나올 것 같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달아나는 자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장군님의 처형이 집행되면 아마도 많은 군사가 창을 버릴지도 모릅니다. 도적떼가 되는 무리도 나오겠죠.”
가룟 유다가 말했다. 그리고 요셉의 눈치를 살피다 때마침 돌아서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왜, 내가 로마에 밀고라도 할 것 같소. 하긴 살 수만 있다면 당신과 내 친구를 밀고하겠소. 하지만 나를 살릴 사람은 따로 있으니 걱정 마시오."
요셉은 자리로 돌아가 앉으면서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서둘러야 하네.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으니 힘을 합해 봉기를 일으키라고 설득해 주게.”
바라바가 말했다.
“참, 자네 선생은 뭐라하시는가? 자네는 이제 그분을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네. 그분이 승낙하시기만 하면 아마 혁명은 더욱 순조로워질 걸세. 더더구나 백성들이 혁명군을 믿고 지지해 주길 바란다면 그분을 꼭 왕으로 모셔야 하네.”
동굴에서 만났던 그분의 얼굴이 떠올라서 바라바는 불현듯 애끓는 심정이 되었다.
“어제 그분이 채찍을 휘두르시며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분노하시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가룟 유다가 말했다.
“그래! 그거 좋은 소식이군.”
바라바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미움을 사는 일이고 죽음을 자처하는 일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처음 마음먹은 대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무모하게 적의를 노출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혁명을 염두에 두었다면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겠죠. 따르겠다는 혁명군도 물리치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다니 실망스러웠습니다. 성전의 부조리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또 그런다고 그 부조리가 뿌리 뽑힙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왕이 되시든 강력한 왕을 세우시든 하셔야죠. 날이 갈수록 산헤드린의 장로들과 율법사와 서기관들 같은 기득권 세력들이 더욱 공고하게 뭉쳐서 선생님을 잡겠다고 혈안인데 거기다 불을 붙인 격입니다. 만약 그분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면 왕이 아니라 선지자가 분명합니다."
"선지자!"
바라바가 낮게 외쳤다.
"예, 영적 제사장. 왕을 세우시고 기름 부으실......."
가룟 유다가 말했다.
"이를테면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 부운 사무엘 같은....... 자네 선생이 사무엘 같은 선지자라는 말이군."
바라바가 말했다.
"저는 그것을 깨달았고...... 대장군님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하자고........ 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장군님께서 잡히신 것도 모르고요. . ...최후의 수단으로 저의 선생님을 궁지에 빠트릴 수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바라바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선생님은 제게 제가 할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을 궁지에 빠트리는 것이 자네가 할 일이라는 건가?”
바라바가 말했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위기에서 구하실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말했다.
“그런다고 우리의 간청을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네만 믿겠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언제나 자네의 판단을 믿지만 혁명에 추대할 왕이 없다는 건 명분 없는 봉기나 마찬가지일세. 우리가 지금의 헤롯과 대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그들을 몰아내고 나면 추대할 왕과 대사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가 지혜를 짜내 그분을 설득해 보게."
바라바의 목소리가 자신감을 잃고 가라앉았다.
"......."
가룟 유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젊은 선생, 우리를 먼저 이곳에서 꺼낼 방도가 있소. 바라바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말이오."
요셉이 불쑥 끼어들었다.
"가룟 유다 선생이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수완이 보통은 넘는 것 같소. 선생의 그 수완에다 유대를 통째로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라면 우리를 빼낼 수 있을 거요. 내가 아는 관리를 만나 설득해 보시오. 그들은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자들이니까. 총독을 구워삶아서라도 우리를 내보내 줄 것이오. 바라바는 기껏해야 잘못 잡아온 도적이고 나는 정당방위고, 그리고 라몬은 정말로 정당방위니까....... 그들이 죄목을 바꿔서라도 내보낼 거란 뜻이요.”
요셉이 말했다.
“........”
가룟 유다가 말없이 요셉을 바라봤다. 여전히 생각에 골몰한 듯 보였다.
“속는 셈 치고 그 친구를 찾아가 보시오. 바라바가 있어야 봉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요. 대장군 없는 봉기라면 승산이 없어 보여서 하는 소리요.”
요셉이 목소리를 높였다.
“.......”
가룟 유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에브라다에서 온 친구요. 다윗의 자손들이지. 어릴 때 함께 양치기를 했소. 게다가 우리는 오래전, 모두 하나님께 선택받았소. 그걸 잊지 마시오. 내 말은 우리가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란 거요.”
요셉이 말했다.
“대장군님, 제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습니다.”
가룟 유다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라바와 요셉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