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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Dec 06. 2023

삥 뜯어 산 클쑤마쑤 선물, 에어로치노4

"쁨! 엄마 이거 사줘!"


며칠 전 카카오톡에 정가 149,000원짜리 에어로치노4가 87,000원에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찾아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건지, 그런 가격은 처음이라 잠시 고민했었다. 이왕이면 나는 바리스타메이커를 사고 싶은데. 에어로치노를 산대도 언젠가는 갖고싶던 바메를 사고 말 텐데. 그렇게 되면 낭비일 게 분명한데. 무엇보다 나는 라테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1년 365일 까만 아메만 마시는 것도 아닌데. 흠... 과연 몇 번이나, 얼마나 사용할까. 그러던 중 에어로치노는 무상기간 2년이 지나면 AS가 안 된다며, 15퍼센트 할인되는 보상판매로 안내받았다는 경험자의 정보를 얻게 됐다. 음. 그렇다면 안 사.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제. 이번엔 80,190원이다. 아이 참... 안 산다니까... 왜 그르냐... 뭐라구? 이게 미숫가루도 밀크티도 핫초코도 만들 수가 있다구? 어머머머머 그럼 우리 쁨이 음료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잖아! 생각보다 많이 쓰겠는걸! 아참... AS가 안 된다고 했지. 에잇 댄장...


퇴근길에 혹시나 하고 들어가 봤다. '품절됐겠지, 뭐.' 아니 이런. 품절이 안 돼 버렸네. 왜 품절이 아닌 거지? 사람들이 모르는 건가? 이 정도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 AS가 안 된대서 안 사려고 했는데.. 왜 품절이 아닌 건데, 왜~.


(그렇다면) 어디 보자... 휴대폰 계산기 앱을 켠다. 80,190원÷24개월=3,341.25원. 2년 동안 매월 버려지는 돈이다. 3,341.25원÷30일=111.375. 한 달 동안 매일 버려지는 돈이다. 사용을 한 번도 안 했을 시 버려지는 숫자인 거다. 커피 전용이 아니므로 사용을 안 할 리 없다. AS가 안 된대도 2년 동안 맛있게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다 고장 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오랫동안, 7년도 넘게 사용 중이라고들 한다. 그래 사자. 이건 사라는 계시다!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나중에 제값 주고 사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지. 사 버렷!


집에 들어가자마자 수입도 없는 대딩이 우리 쁨이에게 쫄라댔다. 침대에 앉아서 깐닥깐닥 발장난 하며 휴대폰 보고 있는 쁨이에게 쁨이도 한 적 없는 조르기를 더 큰 내가 한 번 해 봤다.


"사줘~ 사주라~"

"그건 엄마 돈으로 사라니까."

"아아~ 장갑 대신 이걸로 사줘~ 장갑은 많이 있는데 이거는 없잖아~ 다이소 거품기는 우유를 따로 데워야 하는데 이거는 안 데워도 된단 말야~ 시나몬 솔솔 카푸치노 먹고 싶다구~ 핫초코도 만들 수 있다니깐? 아 쫌 하나 사줘 봐라! 어쩌나 보게! 어? 어? 내 생일 선물인데 내가 갖고 싶은 거 사줘야 하는 거 아니니? 어? 쫌~!"

"입금했어. 사."

"어? 뭐? 진짜? 언제? (입금 확인) 오예! 9만 원이네? 나머진 팁이야? 고마워~ 헤헷! 엄마가 맛있는 핫초코 해줄게!"


해서 바로 주문했다. 나는 카드만 부잔데 우리 딸은 용돈이며 장학금이며 다 모아 갖고 있어서 현금이 부자다. 난생처음 떼라는 걸 써봤다. 울 엄마한테도 써 본 적 없는 떼. 반 협박만 해봤지. 밥 안 먹어. 학교 안 가. 놀러 안 가. 아무것도 안 해. 그래 봤자 나만 손해였지만 먹힐 때도 간혹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들 하던데 울 엄마는 거의 다 이겨 먹었다. 심지어 내가 아팠을 때도 얄짤 없이.


무튼, 원래는 생일 선물로 장갑이랑 안경 받기로 했는데 장갑은 에어로치노랑 바꾸었으니 내일은 안경 맞추러 가는 날이다. 안경알만 해도 되는데 안경테까지 다 해줄 거란다. 기억이 도통 안 나는데 안경테 도금 벗겨졌다는 말을 내가 했었나 보다. 눈에 띌 정도로 심한 건 아닌데. 그걸 기억하고는 끝내 다 해주겠단다, 미안하게.


"아참! 이거 생일선물로 할 거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할 거야?"

"무슨 말이야? 생일 선물이라니까."

"그냥 빨리 둘 중 하나로 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면 너무 빠르잖아."

"그럼 어때~ 엄마가 갖고 싶은 거 빨리 받은 건데. 뭘로 할 거야?"

"... 크리스마스로 할게."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어, 엄마는! 고마워!"


우리 쁨이의 쌈지돈을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 쁨이가 내 딸이라는 게 나는 늘 감사하고 미안한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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