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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바차 May 13. 2024

훈련소 담당 조교 L

33. 녹색바다는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았다.

조그마한 까만 손, 군복 소매를 한껏 끌어당겨 가리고는

검은 귀 붉게 물든 채 총총총 뛰어가던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입을 삐쭉 내밀고 툴툴거리면서 애꿎은 바닥을 연신 차대던

조그마한 까만 손 꼼지락 거리며 삐져나온 내 옷의 보풀을 라이터 불로 정리해 주던 너.

불빛은 연신 일렁거리지만 불빛 뒤 너는 흔들림 없는 무표정.

이내 다했는지 작은 눈이 휘어져라 웃어 보이는 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쉬워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타들어간다, 우리 마음이.

짧아져간다, 우리 만남이.

그을려진다, 우리 낯빛이.

단정해진다, 우리 관계가.     


깔끔히 정리된 내 군복처럼 우리의 관계도 정리 될 것만 같다.


아껴줘서 고마웠다.

덕분에 처음을 잘 해낼 수 있었다.

내 담당 조교가 당신이라 행복했다.

                              

최고였던 훈련소 담당 조교 L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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