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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바차 May 14. 2024

열외는 용기 순.

34. 녹색 바다는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았다.

또래보다 늦은 나이 입대를 앞둔 내게 일찍이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말했다.

군대는 할 수 있어도 못 하는 것처럼 굴고 아프지 않아도 아픈 것처럼 굴어야 한다며

최소한 나서고 최대한 사려 뺄 수 있는 건 전부 무조건 빠지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과 훈련을 받으며 그들의 말을 되새기며 훈련소 생활을 임했다.

대표 훈련병을 지원하지 않았다. 군화 끈 묶기를 버벅거리는 옆자리 훈련병을 못 본 체했다.

자원자를 뽑는 상황이면 늘 조교의 시선을 회피하기 필사적으로 굴었다.

내가 우선이고 개인의 편의와 안전만을 따지며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에게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당시 이는 현명한 판단이라 확신했다. 그게 어디 나 하나뿐이었을까?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훈련은 좀처럼 순탄치 못했다.

서로를 의지하지 않으니 전우 간 신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훈련 간 열외자는 넘쳐났다.


몸이 아프고 불편한 훈련병들이 열외 받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힘든 훈련을 받기 싫다는 이유로 이를 악용하는

이른바 꾀병을 연기하는 훈련병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때문에 몇 없는 참여자들은 해내야 하는 몫이 늘어났고

금방 끝낼 일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무엇보다도 정말 열외가 필요한 훈련병들이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

아픈 몸으로 힘겹게 고된 훈련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렇게 열외를 받아 낸 열외자들은 득의양양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열외는 용기순”      


남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열외를 주장하는 용기 있는 사람 만이 편히 열외를 받는다는 의도로 그들은 사용했다.

평소 이 말은 화장실 문, 서랍 밑, 간이 책상 등 쉽게 볼 수 있는 낙서였고

모두 대수롭지 않게 농담처럼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했다.

훈련소에서 접한 이 말이 난 너무도 싫었다.


힘겹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로지 내 편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용기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나만 아니면 돼 라는 고약한 심보의 말이 싫었고

동시에 개인의 편의만을 중시하며 이기적으로 굴었던 이전의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용기라는 희망의 단어가 이런 이기적인 의도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용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자처하고, 선행을 베풀 줄 알며

타인을 위한 양보와 배려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단어였으니까.     


이곳 훈련소를 떠나기 하루 전.

언제, 누군지 모를 사람이 적어둔 열외는 용기 순 이란 말 아래 끄적였다.

    

열외자는 용기에 본인만 담은 사람들이고

참여자는 용기에 모두를 담은 사람들이다.


당신은 어떤 걸 담았고, 어떤 걸 담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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