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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 쌓아가며 형태를 만든다.

선이 모여서 면이 된다.

by Inclass

수학을 공부하다가 보면 미분과 적분이라는 단원을 만나게 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미분은 미세하게 자른다는 의미이고, 적분은 그것을 쌓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분의 도입에는 흥미를 보이다가 미분의 활용에서 기울어지면서 적분을 만나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하여 원망하곤 한다. 물론, 그럴 의미가 전혀 없지만 말이다. (그깟 수학으로 자존감이 무너질 필요는 전혀 없다.)


역사적으로는 적분이 먼저이고 미분이 이후에 나왔지만, 교육과정에서는 미분을 먼저 배우고 적분을 이후에 배우게 된다.


미분과 적분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구분구적법이라는 개념을 배우는데, 수학에서는 그래프를 이용해서 이 개념을 설명한다. 수학적 개념에 대해서 깊이 들어가면 너무 머리가 아프니, 최대한 간략하게 압축해서 이야기하자면, 별 모양의 슬라이스햄의 면적을 측정하기 위해서 별 모양의 슬라이스햄을 아주 작게, 그러니 요리 용어로 표현하면 채 썰기를 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폭이 아주 좁고 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서 그것들의 넓이를 합치면 별 모양 슬라이스햄의 크기를 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표현보다는 원의 면적을 구하기 위해서 원을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부채꼴(피자조각) 모양으로 자르고 이것을 서로 지그재그로 놔서 사각형 형태도 만들어서 사각형의 넓이를 구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해도 될 듯하다. (원의 넓이 구하기와 구분구적법 사이에 위상적 개념이 들어간다는 것은 대학 수학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아무튼, 수학에 대한 이야기는 이즈음에서 마무리하고 얇은 사각형의 형태로 잘라서 층을 이루어 쌓아서 별의 면적을 구하는 구분구적법이라는 방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도 교과는 수학이었지만, 학교에서 아이들과 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주로 했었다. 코딩, 3D프린팅, 아두이노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학습한 지식을 실질적인 부분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3D프린팅에서 이러한 적층형의 방법이 적용된다.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필라멘트가 고열에 녹으면서 노즐을 통해서 출력되고 그렇게 출력된 필라멘트가 하단부터 얇은 층을 만들어서 쌓이면서 결과물이 형태를 취하게 된다. 도자기 만들기에서 떡가래 같은 굵은 점토를 바닥부터 말아서 올리고 마지막에 외부를 다듬는 방법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3D프린터를 처음 접하고 구분구적법의 개념과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양말 방직을 시작하고 양말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이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적층형인 것이다.


우리 공장에서는 발가락 양말을 만든다. 그런데 어떻게 적층형이 될까?

사도라고 하는 원사를 주입하는 장치를 통해서 실이 출력되고 사도에서 조금씩 출력된 실은 기계에 위치한 수많은 고정된 바늘이 각자의 타이밍에 맞춰서 실을 당겨준다. 그렇게 하나의 층이 만들어지고, 다음 층이 만들어지며, 그렇게 발 끝부터 실이 바느질되면서 발바닥에서 발등으로, 발목으로 연결되면 양말을 방직하게 된다.


기술이 없었던 시절의 발가락 양말 방직 기계는 단색으로만 양말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발가락양말이라고 하면 검은색, 회색의 무좀이 있는 사람이 착용하는 양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하나의 원사가 들어가다가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다른 색상의 실로 변경되어 연속으로 주입되고 또 다른 색상으로 변경되어 주입되는 과정을 통해서 최근의 발가락 양말은 이전보다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된 양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발가락 양말을 편직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일단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러하다.)

하나는 원통형 방직을 베이스로 하는 환편기(circular knitting machine) 방식과 횡편기(transverse knitting machine) 방식이 있는데, 두 기계 모두 적층형 방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두 기계에서 만든 양말의 착용감의 차이가 있다. 환편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양말의 경우 유심히 살펴보면 양말이 조금씩 돌아가는 모양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발가락 양말 중에서 새끼발가락 부분이 새끼발가락 바로 앞의 4번째 발가락 부분으로 구부러진 것 같은 모양으로 나온 상품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말들의 경우 보통 디자인이 대각선모양, 사선, 다이아몬드 모양 등과 같은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단색의 양말도 있기에, 보통은 새끼발가락의 형태를 보고 편직 방법을 유추할 수 있다. 아무래도 착용감에서도 발가락이 조금씩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횡편기로 방직된 양말의 경우는 5개의 발가락이 모두 가지런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무래도 기기를 방직하는 과정에서 횡으로만 기계가 작동되며 양말을 방직하기 때문에 평면적인 느낌이 강한데, 기기를 다루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 발바닥 부분은 조밀하게, 뒤꿈치는 조금 더 조밀하게 방직하고 발등은 발바닥과 뒤꿈치와 비교해서 조금 덜 조밀하게 방직하여 착용감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방직하고 있다.)

양말이 평면적이기 때문에 착용하고도 발에 착 붙는 느낌이 매력적이라서 한 번 신으면 은근 중독성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지인을 만났는데, 신발과 바지 사이에 보이는 발목의 패턴이 익숙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야기를 꺼내니 OO브랜드의 양말을 신었다고 했다. 혹시 그게 발가락 양말 아니냐고 물어보니 맞다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길래 우리 공장에서 OO브랜드의 발가락 양말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엄청 신기하게 날 봤었다. 물론, 나 또한 우리가 만든 양말을 신은 고객(?)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었다.


아무튼, 횡편기 방식이든, 환편기 방식이든 양말 방직은 기본적으로 가느다란 원사를 어느 한 시점부터 층으로 쌓아서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방법을 보통 적층형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적층의 개념은 여러 부분에 적용된다.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된다는 수학적 개념도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언젠가 라디오에서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양말 방직과 삶의 적층에서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양말의 경우 예를 들어서 밝은 색 양말의 편직 과정에 검은색 이물질이 들어가면 그것은 상품의 가치를 잃게 되지만, 삶에서는 어쩌다 저지르는 실수나 후회의 오점이 어느 정도 있어도 그런 삶 또한 의미 있는 삶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실수나 오점의 크기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에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하여 하나의 시점으로 평가하지 말고 그것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부분을 통해서 보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예를 들어서, 5시간 공부를 했을 때, 누구나가 집중하고 그렇지 않고의 기복이 있는데, 집중하지 못했던 어느 시점으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거나, 집중했던 일부 시점으로 열심히 했다고 단언하지 말라는 말이다. 물론, 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 의해서 성공했고 실패했음을 평가받기에는 너무도 고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말 방직 공장은 사계절과 관계없이, 연초와 연말, 휴가철에 관계없이, 명절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렇지만, 이제 교직을 시작하는 초임 교사들, 그중에서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신임 교사들에게는 그들의 첫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 공고가 뜨는 학교에 기간제 원서를 접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제자 중 몇몇과 최근 자주 통화를 하게 되는데, 학교는 경력자를 바라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그들은 경력이 없어서 경력을 만들기 위해 원서를 제출하지만 연락이 오는 곳이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기다림의 시기가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때도 있음을 그들 또한 알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성장한 어른이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원서를 제출하고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그들의 요즈음이 얼마나 무거운 마음의 하루하루이며, 얼마나 많은 만약을 가정해야 하는 상황인지에 대하여 나 또한 그 시기를 지났기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과 전화하면서 응원하게 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이 그들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고민하는 하루하루의 누적 또한 시간이 지나고 그들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비록 지금은 검은색 실로 방직되며 적층 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혹시 아는가? 그렇게 만들어진 검은색의 누적이 포인트가 되어서 명품의 결과물을 만들게 될는지 말이다.


물끄러미 기계에서 횡으로 움직이며 주입되는 원사를 보며, 그 빠른 순간에 저마다의 순서에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양말을 만들고 있는 기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기계의 반복된 움직임 같이 우리의 삶도 큰 틀에서 반복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컬러를 모아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있으리라고. 나 또한, 오늘의 컬러를 채우고, 그들 또한 각자의 컬러를 채우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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