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결국 선택하게 되었다.

feat. 시카고 파이어

by Inclass

소방 드라마를 즐겨 본다.

다른 이유보다는 여러 사고 상황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생명을 구하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자주 감명받기도 하고, 은근 소방드라마에서 빌런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즐겨 보기도 한다.


처음 봤던 드라마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제공하는 <스테이션 19>였다.

물론, 불편한 부분도 있다. 아주 극심하게 표현하는 동성애에 대한 표현. 유교적 성향이 강해서 그런 건지, 내가 꼰대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수용하기는 힘든 정서이다.

좋게 표현하면, <스테이션 19>에서는 삶과 죽음의 순간 속에서 동성과 이성 간의 사랑,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하고 있음을 자주 묘사한다. 생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동료를 잃게 된 사람들, 친구와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죽음 직전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기쁨과 행복만이 삶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까지도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느낌의 드라마로서 약간의 막장과 동성애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많은 울림을 주는 드라마로 기억한다.


그리고 역시나 디즈니 플러스에서 제공하는 <9-1-1>이 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재미나게 봤던 드라마는 아니다. 어딘가 비밀스럽고, 의문스러우며, <스테이션 19>에서 등장한 상담원이 <9-1-1>에서 동성애자로 나오는데 캐릭터가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어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보다가 말았다.


최근 정신없이 보고 있는 드라마는 쿠팡 플레이에서 시청 가능한 <시카고 파이어>이다.

시카고 소방서 대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그와 함께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하며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에서 다시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동성애적 요소가 그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등장인물들의 투철한 직업의식, 사명감, 전문성 등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드라마였다.


오늘 이야기는 최근 <시카고 파이어>에서 봤던 한 대목을 이야기하려 한다. 최근 그 에피소드가 유난히 기억에 남았기 때문도 있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가브리엘라 도슨은 일전에 소방학교 시험을 응시했고 드디어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소방 학교에 입학하니 여성 소방대원은 도슨을 제외하고는 한 명이 있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스테이션 19>는 2018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지만, <시카고 파이어>의 경우는 2012년부터 방영을 시작해서 그런지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아무튼, 도슨이 최종 시험에서 탈락한 것과 달리 그녀는 최종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고, 도슨이 일 하는 소방서에 소방관 후보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소방부청장의 딸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소방관이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 오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소방관이 되는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했던 것. 그렇지만, 소방서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에서 보든 소방부청장은 보든 서장과 케이시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탈락하게 만들어서 소방관이 아닌 소방서의 홍보부라는 행정직을 하도록 손을 쓰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이 소방관이 되지 못하게 손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되고 결국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소방관으로 일 했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며, 그녀의 오빠들 또한 모두 소방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일 하는 모습이 얼마나 의미 있었기에 그의 아들 모두는 소방관이 되었을까? 그녀 또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비록, 극 중에서 그녀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커닝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것 까지도 아버지에게 자신이 소방관이 되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바탕되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소방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소방관 후보생으로 일 할 기회를 얻어서 드디어 소방관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게 되었는데, 그 조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탈락을 직속상관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극의 일부에서는 그녀의 과거사를 잠깐 언급하며 불안했던 심리상태에 대한 언급도 나오지만, 그건 대중적 성향을 갖는 미디어이기에 그런 언급을 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봤다. 어떻게 본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것을 미화하는 것은 좋지 않고, 나 또한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자살이라는 선택을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삶에서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내야 한다. 아무리 어렵다 하여도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며, 아무리 힘들다 하여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선택에 대해서 그녀의 불안한 정서만을 이유로 삼는 것 또한 옳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이길 수 있는 한계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비계설정"이라는 말이 있다.

학습자의 인지 능력과 발달 상황, 선행학습 정도와 같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교사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가이드를 제공하되 그것이 학습의 목표점이 되지 말고 목표점으로 가는 도움이 될 수준의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언급되는 말이다.


때문에, 모든 학습자에게 동일한 비계를 설정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며, 바르고 효율적인 학습이 아니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바꿔서 이야기하면, 누군가에게는 발전의 단계가 되는 시험이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주는 한계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가 강하기에, 또는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며 저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역량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존재하기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멘탈이 강하다고 하여도,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칼을 들고 달려드는데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고 약자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던 당시를 고려했을 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자신이 꿈꾸던 조직에 첫 단추를 끼웠던 그녀의 눈에 자신의 직속상관 둘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해임하려 하고 조직의 최고 권위자가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아마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그녀를 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조직에서 생활하며 너무도 자주 리더의 역량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조직의 규모와 조직이 갖는 힘은 리더의 역량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로 <온라인 스쿨>이 도입되었던 시기에 내가 있었던 학교의 <온라인 스쿨>을 구현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최전선에서 일을 했었다.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한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나마 나는 운이 좋게 2018년부터 나름의 온라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하던 많은 일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었다.

그중에 하나가 비평준화였던 지역에 있던 우리 학교의 고입설명회였다.


비대면수업이 진행되던 시점부터 나는 이미 비대면 고입설명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의 주요 공간을 VR로 촬영하려 계획했고, 촬영 장비를 알아보고 있었으며, 그것을 온라인에 구현할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당시는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욕심에서 그런 공간을 온라인에 구현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했던 실수라면 그런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부장이 나를 불러서 비대면상황에 고입설명회를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물어왔고, 나는 그동안 준비하고 찾아본 방법을 바탕으로 온라인 설명회 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 일을 혼자서 하기는 어려우니 함께 할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분의 답변은 그렇게 어려운 기술적 부분을 지원할 우수 인력은 없으니 내가 자유롭게 해 보라는 말과 함께 능력이 되니 이왕이면 프레젠테이션도 함께 준비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지어 프레젠테이션의 경우는 비대면 상황이 발생하기 오래전부터 항상 해 오던 전문 선생님이 있었음에도 그 일을 내게 넘기려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 온라인 설명회의 개념 또한 매우 빠른 대응이었고, 국내 사례가 없어서 외국 사례를 찾는 상황에서 기존의 일을 덮으려는 부장의 안일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나름 예의 바른 척하는 사람이라서 그분 앞에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으로 파워포인트 준비까지는 어렵다고 했지만 말이다. (당시에 이미 온라인 스쿨을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정보부"라는 이유에서 말이다.)

이후의 말은 생략하겠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과 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의 교양이 그 정도 바닥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덕분에 아직도 그 에피소드는 나를 알고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씁쓸하지만 웃고 넘길 썰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온라인 설명회는 완성했다. VR로 공간을 둘러보는 것도 완성했고 말이다.

그분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나 내가 우수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당시 내가 지도하는 아이들, 나와 같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적어도 다른 학교, 지역의 아이들 보다는 앞선 경험을 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했던 것이다.


내 경우는 업무부장 중에서는 나름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이 내 생사를 쥐고 있다고 보이지 않았기에 그 벽이 작게 느껴졌지만, 아마 그가 가진 영향력이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큰 벽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마다 같은 문제에도 그 문제의 크기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핵심은, 문제의 크기를 다르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와 거리가 가까우면 그것은 크게 느껴지고 거리가 멀면 작게 느껴진다.

군부대의 사단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등병의 눈에는 태산 같은 존재로 부들부들 떨리게 만들지만, 군인도 아닌 일반인의 눈에는 사단장이라고 하여도 좋게 말하면, 군인,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군바리로 보이기 마련이다. 거리의 문제다. 이등병의 눈에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고, 일반인에게는 자신의 인사권은 직장 상사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결국 어려운 것은 문제와의 거리를 줄이는 과정이다.

다른 생각을 하거나, 조금 멀리서 시트콤처럼 내가 속한 상황을 보는 것이다. 참 지지리 처절한 시트콤이라도 말이다.


<휴남동 서점>의 황보름 작가는 책을 읽음으로 나만 구렁텅이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나만 구렁텅이에 살고 있다는 좌절감을 조금은 가볍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충분히 동의한다. 나만 바닥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도, 너도 저마다 다른 환경이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도 내일을 이겨낼 힘을 준다.


우리 직장의 사장, 부장에 대한 욕을 하려 오랜 친구와 술자리를 했는데 그의 직장 이야기는 정말 개차반 같은 경우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의 직장 인물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를 안주삼아 욕을 하다가 보면, 다음날 못나도 우리 직장 사람들은 짜증은 나도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황보름 작가님이 이야기했던 책을 통한 위로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을 읽는 누군가를 향한 말인지, 내가 나 스스로를 향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하나 확실하게 얻는 느낌은, 적어도 지금 내 꼬여있던 생각의 매듭이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진 느낌을 얻었다는 것이고 적어도 내일 하루는 또 이겨낼 만큼 지금의 문제와 거리가 생겼다는 느낌이다.

정서가 조금은 풀어졌으니 이제 몸을 충족시켜야겠다. 그래야 내일도 이겨내지 않을까?

횡설수설한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은 누군가에게도 남은 오늘과 쉼의 시간이 내일을 이겨내기 충분한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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