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Mar 02. 2024

엄마가 금쪽이 였다.

나의 우울증 공황장애 이야기.


삼촌 ~~ 이모 금쪽이 같애

오랫만에 우리집에 놀러온 조카가 삼촌에게 쪼르르 달려가 나를 놀리는냥 말한다.


내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고 밥도 안먹으니  

다 큰 어른이 누군가에게 반항하는 금쪽이 같아 보였던 던 것이다.

나는 가끔 금쪽이이고 잼민이일 때가 있다.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 처방이 심각히 필요로 했다.


30대 여성 발달장애 아이와 함께 자살

간혹 인터넷 기사를 보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점점 늙어가고 아이는 점점 무거워진다.

지금도 매일 20프로의 에너지로 200프로를 사는 느낌이다.

힘이 점점 쎄지는 아이를 붙잡고 밥을 먹이고 있으면, 미래의 할머니가 되어 다 큰 성인 남자를 붙잡고

억지로 밥을 떠먹이는 내 자신이 그려져 마음이 슬프고 두려울때가 있다.


간혹 우리 부부 둘다 죽으면 어떻하지?

우리가 없어지고, 아이 혼자 외로이 텅빈 집안에 있을걸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 공감해 줄 사람도 없었다. 사막위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외로웠다. 인생을 잘못 산것 같았다. 그동안 걸어온 인생자체가 통틀어 부정 당하는 느낌이였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빨리 일어나야지 ”라며 다그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가 강해야지 아이를 잘본다며, 나도 아는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오늘도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문득 거울앞에서면,

피곤으로 생기없는 죽기 직전의 사람 같은 몰골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엔 슬픔과 우울이 자리잡았고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울증에 걸린것이다.


공허

우울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허 이다


뭘하든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사는것이 괴로우니 죽음밖엔 답이없다.

매일매일 죽고싶다는 생각만한다.


우울증이 최고조로 심했을땐 남편에게 왜 사냐고 무수히 물어봤다. 유투브에 사는이유 , 왜 살아야하는가 를 검색해 보지만 딱히 머리에 꽃히는 해답은 없다

수백번 물어봐도 남편의 대답은 비슷했다.

“글쎄 .. 태어났으니깐 사는거지”

”뭐 꼭 이유가 있어야만 사나?“


아이의 장애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더 이상 길어지면 안되었다.

마음이 조금 괜찮아 지자 하나 하나 하나 미션처럼 병과 싸울 준비를 한다.


처음 한일은 병원을 찾아간 일이다.

아직도 처음 병원에 갔던 그길이 기억에 난다.

사막에 홀로 남겨져 내리 쬐는 태양을 맞으며 정신없이 모래위를 걸어가는듯했다.

연세지긋한 할머니 의사분이 계셨다.

“무슨일로 오셨나요 ?“

“아이가 태어 낳는데 장애가 생겼어오.”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의사선생님이 펑펑 우신다. 그 동안 쌓인 서러움에 나도 운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분은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중 가장 명의셨다. 약을 잘 처방해주시는 것보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치유받는 느낌이였다.
공감의 기적인 것이다.



두번째 한일은 하루에 한 가지일을 목표로 하기였다.

쌓여있는 설거지 하기, 쓰레기 버리기 , 바닦청소하기 등을 하루에 꼭 하나씩 미션임파서블 여 주인공 인냥 비범하고 위대한 마음으로 수행한다.

두가지는 어차피 하지도 못한다.

힘들지만 하루 한가지라도 한 내자신을 칭찬한다.


세번째 한일 운동이다.

우울증이 심하면 운동은 꿈도 못꾼다.

사람 보는게 두려워,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갈수도 없다. 장은 배달을 시키거나 남편이 대신 봐 주어야 했다. 나는 컨디션이 조금 괜찮은거 같으면 일어나 집안에서 ,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거나 실내사이클을 30분이라도 탄다.


우울증으로 한참 힘들었을때 쓴 일기 , 지금 보면 참 가엽고 노력이 가상했다.


네번째 한일은 글을썼다.

현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써내려 갔다.

누군가를 잡고 하소연 하듯이 써내려가다보면 ,

복잡한심정이 정리되고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감사일기도 썼다.
감사한일이 없음에도, 정말 내키지 않음에도 억지로라도 써나아 갔다.

오늘 하루 안죽고 살아서 감사 , 잠자는 아이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감사,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는 마음의 여유에 감사 , 그리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노을이 예뻐서감사 등 감사하기 연습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차차 소소해 보이는 감사가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이 왔다.

감동을 하니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났다. 눈물로 마음이 해소 되었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마음속 쓰레기 더미를  누군가가 말끔히 치워주는듯했다.

약을먹고 무언가를 해서가 아닌 내 몸안에
신이 주신 치유제가 있었던 것이다.


네번째 한일은 나를 내려놓기 연습이였다.

나에겐 이제 체면 같은건 없었다. 모든걸 내려놓기로 한다. 지금도 나는 가끔 잼인이 스러울때가 있다.

춤을 추고 릴스를 찍는걸 좋아하는 나는

나를 내려 놓자 춤이 더욱 격렬해졌다.

점점 푼수끼 있는 아줌마가 되어가도 괜찮았다.

어차피 죽어 썩어질 이 한몸 , 어떤 모양으로 살던 , 

웃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삶의 고통을 비웃기나 하듯
더욱 격렬히 춤을 춘다.



우울증이 심할땐 이 모든것중 하나라도 하기 힘들다.

그럴땐 안죽고 그저 숨만 붙이고
살아만 있어도 잘하는 일이다.


매일 죽을까 , 말까 를 고민하다 안죽고 살아남은

것이니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아무것도 안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머리로는 “아픈아이를 어떻게 지킬것인가?

이왕 사는거 어떻게 잘 살것인가 ?“

머리를 싸메고 고군분투하며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사같은 것이다.

그러니, 숨만 붙이고 아무것도 못한 자신이 무가치 하거나,  의욕이 없다 자책하지 말자.

오늘도 살아남으려고 힘들었을 자신을 너그러이 안아주자.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으니, 창문에 기대어 잠시 잠을 청하는 것처럼 ,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비상시 약을 먹고 잠을 청하며, 시간을 흘러 보내는것 또한 방법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낸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님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이틀 쉰다.


남편은 내가 우울증일때와 아닐때가 극명히 다르다고 한다. 내 성격은 밝고 잘웃으며 감정이 풍부하며 사람들과 잘지내는 편이다. 그게 원래의 나임을 잊지말자. 평소보다 예민하고 폭력적이며, 무기력하다 스스로 질책하고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

병때문에 그런 것이니 평소와는 다른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어야 한다.  


누군가는 우울증이 꼬릿꼬릿한
무좀과 같다고 했다.


아마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수 있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조금이라도 균이 있으면 또 자라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곤 한다.

그렇기에 우울증은 완치를 기대하기 보단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하는 것 이라 여겨야한다.


욕심일수도 있겠지만 , 나는 아직도 완치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우주이고 전부인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 슬픈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다. 아이가 자신때문에 엄마가 아픈것이라고생각할까 두렵기도 하다.


아픈아이를 키우면서 어쩌면 우울은
내 감정의 배경화면 일수도 있다.

하지만 , 아이가 주는 기쁨 ,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조금은 이 우울을 중화 시키면서 살것이다.

지켜줄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힘을 다해

나름의 터득한 방식으로 조금씩 일어나 걸으려 한다.



이전 07화 개미 오줌만큼만 커도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