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탐구생활
하루는 나는 유서를 쓰기로 한다.
죽으려고 쓴 유서는 아니였다.
유투브에 정신과 의사가 한번 써보는것도 정신 건강을위해 좋다고 해서 였다. 그땐 유투브나 책에서 정신건강에 좋은건 뭐든 하던때였다.
아이를 밤에 재워놓고
방으로 들어와 하얀 노트에 조금씩 써내려간다
.
“더 이상 사는것이 힘들어
차라리 죽는게 편할거 같아…..“
갑자기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부모님, 조카 , 남편, 나의 소중한 아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에게 씻지못할 상처를 평생 주는 일인것 같았다. 죽는건 못할짓 이구나 싶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사는것이 의미있어지는 순간이였다.
미안함
이 감정이 제일 먼저 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글씨 잉크가 지워졌다.
혼자 청승맞게 울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는지
남편이 찾아왔다
내가 심각하게 울고 있으니 어쩔줄 몰라했다
“나 유서쓰고 있어 ”
어떻게 해줄지 몰라하는거 같아보았다.
“많이 힘들어?“
뚝뚝…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말한다.
“죽으려는건 아니고 쓰다보니깐 눈물이 나서 “
남편은 해줄말이 없는지 , 잠시 방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내방으로 들어 온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나보다.
남편이 말한다
”민식이형 쌍커풀 수술했다 ? 웃기지? ㅋㅋㅋ“
….
………….
………………..???!!!!!
”엥?? 뭐라고 ??!!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할소리야 ?
나 지금 유서 쓰는거 안보여?!!!!!!“
“아니 ….ㅋㅋㅋㅋㅋ웃기잖아 ㅋㅋ쌍수ㅋㅋ 그 형은 뭘해도 웃긴거 같아 “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아니 나는 너가 슬퍼보여서 웃으라고 “
저사람은 사이코 패스인가 ?
말이 안나왔다. 울고 있는데 갑자기 웃으라고??
이 상황에선
”많이 힘들었구나 …너가 유서를 쓸 정도면 얼마나 힘들까“ 가 나와야 정상아닌가?
달라도 너무 다른 생각에 나는 한참을 어의없어하다, 헛웃음이 났다.
위험을 감지한 우리집 아저씨는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할수록 어이 상실이였다
헛웃음이 났다.
정말 남편은 연구대상이구나.
나와 같은 상황에서 왜 저 사람은
우울증에 안걸리고 잘살까 ?
나는 우울증을 낫기 위해 남편을 연구하기로 한다.
사실 나보다 남편은 더욱 상황이 안좋다.
부모님 두분 다 투병을 하시고 이른 나이에 부모님 장례를 두번이나 치른 사람이다.
우울증은 내가 아닌 남편이 더 걸려야 하는데 정말 연구 대상이였다
그가 그런 상황을 이겨낼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 궁금했다.
깊은 우물에 물을 길러내듯, 그의 마음을 조금씩 떠본다.
“오빠는 힘들겠다. 부모님 두분 다 돌아가시고, 보고 싶겠다. 그치 ? ”
“아니 난 안힘든데”
”뭐가 안힘들어. 가장이라고 안힘든척 하면 진짜 병나. 나한테 다 털어놔. “
“진짜 안힘든데 , 어차피 부모님은 빨리 돌아가시나 늦게 돌아가시나의 차이지 “
아…..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구나. 내 남편이지만 이해하기 힘들고 소름이 돋았다.
“ 에이 그런게 어딨어. 같이 시간을 더 보낼수도 있는데 못 그렇자나. “
“난 부모님이랑 추억 많이 만들었어 여행도 많이가고, 그래서 후회없어. “
참 그 다운 대답이다. 그건 내가 인정하지.
“그럼 원래 그렇게 멘탈이 강했어?“
”…….아니였던거 같아. 처음엄마가 암에 걸리셨을때 회사에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 혼자 화장실에서 빵을 먹은 적이 있어 “
가엽어 보이기도 하면서 왜 하필 그 장소가 화장실이였을까 이상하게도 느껴졌다.
”아침엔 눈을뜨면 우리엄마가 암환자구나 라는 생각에 매일 눈물이 났던거 같아. “
그랬다. 멘탈이 강해 보였던 그도 처음부터 강했던건 아니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우리 쌍둥이 아들들을 사랑으로 대해 주셨어.“
“그래 맞아. 그건 내가 알지. 나 결혼하고 아버님 뵜을때 우리애 같은 남편 없을 거러고 했자나. 그래서 내가쫌 놀랬었지. 다 큰 오빠 보시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시더라구 ”
“응, 우리 아빠가 두아들을 엄청 사랑하시긴 했지.”
그랬다. 그는 뜨거운시련으로 어릴적부터 단련이 되 왔지만, 열대야의 가끔 느껴지는 솔바람 같은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자라왔던것이다.
그는 그렇게 단련된 마음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삶에 대한 유연함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 일본도(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도는 한화로 2000만원 이상의 매우 가치가 있는 칼이다. 이 칼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먼저 불에 시뻘겉게 달궈진 철을, 장인들이 여러번 두드려 철의 불순물을 빼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종이처럼 얇은 연철을 35겹 접고 두드리고를 반복하여 더욱 견고한 철이 된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마음이 여러번의시련을 겪고 견고한 마음이 되는듯 하다.
단단하기만 하면 부러지기 마련 ,
그래서 장인들은 겉표면은 단단한 철을 쓰지만, 칼의 중심은 부드러운 철을 넣어, 부드럽지만 부러지지 않는 명검을 탄생시킨다.
인생을 걷다보면, 불과 같은 시련을 만나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갔는데 , 거기에 여기저기 쥐어터지고 땅바닦에 패대기 쳐지는 등, 혼돈의 카오스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그런 시련이 남긴건 삐뚤어진 마음뿐이다 하겠지만 ,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내한다면 시련은 단단한 마음이라는 선물을 준다.
하지만 사람이 단단하기만 하다면 작품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어느정도의 유연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 유연함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
삶의 유연함은 집착이 아닌 내려놓은 마음, 자기 삶에 대한 만족,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유머감에서 생긴다.
인생은 어차피 고통의 연속이기에 아플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분명 아름다움과 즐거움 그리고 어느정도의 재치를 발휘할수 있다.
심각한 심장질환으로 인공 심장을 가지고
계신 한 80대 할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자신을 무쇠심장을 가진 아이언맨이라 칭한다.
그러면서 질병과 싸우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해보이신다. 나는 그런 그가 한 인간으로써 아름다운 예술작품 처럼 보였다. 35겹 접히고 두들겨 맞아도 그 속엔 부드러운 심철이 있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분들이 분명 있을것이다.
오랜세월 풍파를 이겨낸 연약하고 가녀린 할머니도,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
어떤 사연을 가졌든
강인한 마음과 삶에대한
유연한 태도가 있다면 누구든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될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초라한 형색 일지라도 마음속엔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본인만의 아름다움이 있는것이다.
가끔 생각없어 보이는 남편도 나름 자신이 살면서 터득해온 방식으로 지금의 시련을 이기고 있었던 걸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 없는 농담에 어이없어하는 웃음일지라도 , 그렇게 한번 웃고 나면 기분이 전환되기에, 우리에겐 어쩌면 꼭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나는 그런 농담을 잘치는 그가 부러워, 그에게 과외라도 받아야 하나 싶지만 ,나는 또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