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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r 11. 2024

나를 살린건 모든 살아있는것들 이였다.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강원도에 사시는 어머니는
요즘같은 봄철이면 전화를 잘 안받으신다.

나물을 캐러 다니시느라 바쁘시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그렇게 무언가를 캐고, 줍고, 심고, 키우신다.

최근엔 유투브에서 몸에 좋다는 약초를 공부하시고 캐러 다니시며, 당신의 손주에게 뭐라도 도움이 될까싶어 그리 무언가를 캐다 주신다.


약초를 캐시다 넘어지셔서 다리를 다친적도 ,

심지어 팔이 부러진적이 있기에,

나는 늘 불안한 마음이다. 나는 번거롭게 그렇게 다니시지 말고 집앞 마트에서 사드시라 잔소리도 한다



하지만 , 어머님은 흙을 파면서 맞는 흙내음이 좋고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다니면 기분이 좋다하신다.

더불어 이것은 돈이 안드는 생산적인 취미활동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나는 한때 어머니의 취미를 촌스럽고
투박하다 여겼다.

먹고 싶은게 있으면 클릭 몇번이면 문앞까지 바로 배달이 되는 시대에 어머니의 취미는 번거롭고,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지금의 어머니의 귀찮고 비효율적이라여긴 삶이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방에서 처음 서울 강남이라는 곳에 왔을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멋있고 예쁜 전문적여 보이는 사람들, 대형쇼핑몰 , 화려한 빌딩에 매료된적이 있다.


그러면서 사람은 역시 서울에 살아야한다며 주민등록증에 서울특별시를
찍어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큰일을 겪고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 그런 것들은 나의 일시적인 욕구만을 채워줄뿐 영구적인 기쁨은 아니였다. 

죽어있는것들은 보기에만 멋있어 보일뿐 시간이 지나자 모두 허상이였다.

심지어 나의 남아있는 좋은 에너지를 가져가기만 했다. 한마디로 기를 빼앗아간 것이다.


반대로 , 나를 살게한건
모든 살아있는것들이였다.

따스란 햇살은 죽어서 이미 온기를 잃은 마음을 따뜻히 어루만져 주었고 ,

계절마다 피는 아름다운 꽃들은 그저 이렇게 피고지는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노래를 따로 배우지 않은 새들의 지저귐은 나의 마음을 감동으로 벅차게 했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은 내가 걸을 때마다 말을 걸어왔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제주도이다.

제주에 가면 살아있는것을 많이 보고 느낄수 있다.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을땐 숲에서 숨만 쉬러 제주에 가도 좋다.

아이를 낳고 코로나로 사람을 만날수 없어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사람들도 보기 싫었다.


그때 자연은 울며 자신을 찾아온 나를 묵묵히 안아주고 받아주었다.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은 나의 모든것을 아는듯 위로해주고
함께 울어 주었다.


제주의 바다속도 여러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눈을 커다랗게 뜬 아기복어와 눈이 마주친다.

이름모를 물고기떼들이 눈앞으로 지나간다.

바다 속으로 비치는 윤슬이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  


24시간 쉬지않고 돌아가던 기계같은 내 복잡한 머리속이 셧다운되면서 모든 걱정과 번민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그렇게 자연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아프고 나서 그제서야 자연으로 찾는다.

그것도 물론 잘하는 일이지만, 아프기 전에 좀 더 일찍 자연의 위로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오히려 그 반대가 세련된 삶이며 , 괜찮은 삶이라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든다.


예전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 간적이 있다. 모네, 마네, 내가 좋아하는 빈센트 반고흐 등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하다.

작품이 너무 많아 하루 온종일 미술관 안에 있어야 모든 작품을 제대로 볼수 있다.

모두 당연히 아름답고 깊은 영감과 감동을준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들도 하루종일 보다보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뜩 본 창문 밖의 풍경은 잊을수 없는 감동을 주었고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파란하늘 이라는 캔버스 위에 누군가가 노을과 구름으로 물감을 칠해놓은 듯하다.

해질녘 하늘과 센강의 모든것이 조화롭고 무드 있으며 구도와 명암 딱 알맞게 들어가 있다.

 그 많은 내놓아라 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는데도 ,오르세를 나오고 기억에 남는것은 유일하게 그 창문밖풍경이였다.


인간의 그림은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을 모방만 할뿐,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것을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던 순간이였다.

정말 공감가는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 동안 죽어있는것들을 위해
살았는지도 모른다.
죽어있는 것들을 손에 쥐려 애쓰려 했다.


30평대 수도권에있는 아파트, 겉으로 보이기에 그럴싸해보이는 학위와 외모, 어느정도 내 세울만한 직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허영심으로 산 물건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물론 이런것들은 살아가면서 어느정도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죽어있는 것들은 삶의 낭떨어지에 있는 나를 위로해 주지못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죽지않고 살아야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답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자연인이
왜 자연인이 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오직 살아있는것만이
나를 숨쉬게 했기 때문이다.

푸른 산과 바다 ,

계절마다 열리는 탐스러운 과일과 채소,

아기의 사랑스러운미소 ,

애완동물의 귀엽고 엉뚱함,

곁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힘든 삶을 살기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유에 포함된다. 


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돌보며,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신이 주신 삶의 이유이며 목적일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것을 만끽하고 , 그들을 돌보며, 사랑하며살자.

이것이 내가 우울증으로 매일같이 죽고 싶었을때,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무수히 고민하고 성찰한 끝에 마음속으로 내린 결론이다.


죽음이 내 눈 앞에 있었을때, 비로서 삶에 대해 생각한것이다.

그 동안 나는 백화점에서 주는 10프로 할인쿠폰에만 연연해 했지, 자연이 주는 그 많은 혜택은 다 받지도 않은채 무심히 아무곳에 처박아 두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모든것이 공짜였는데도 말이다.


다소 투박해보이고 촌스럽고 효율이 떨어지는 듯하여 보여도 나는 신이 준 이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vvvip 고객이 되려한다. 그렇게 사는 삶이      
목적이고 이유가 되는 삶을 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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