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Mar 20. 2024

우리는 그저 안아주는 사람일 뿐

공감의 기적


작년 말 때쯤 , 아이가 폐렴과 췌장염으로
두 달간 입원한 적이 있다.


연말이라 TV에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반면 나는 한평 남짓한 병실에서 아이와 함께 병과 싸우고 있었다.  

폐렴이 있는 아이에게 호흡기 치료를 해주어야 하였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석션을 해주어야 하였으며,

소화가 되지 않는 아이가 토라도 한번 하게 되면

침대시트부터 옷까지 모두 갈아주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없이 아이와 나 둘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니는 어때 괜찮아?”

“주니는 괜찮은데 , 연말인데 둘이 병원에 있으니 마음이 이상해.”

“그렇구나 , 뭐 어떡하겠어 , 좋게 생각해 ”

“어떻게 좋게 생각해?”

“신촌 거기 땅값 비싼데, 좋은 호텔에 있다고 생각해. 편하잖아. 간호사도 있고 “

역시 남편 다운 대답이었다.  이젠 놀라울 것도 상처받을 것도 없어 그저 넘겼다.

“그래 알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뭐. 병원생활 하루 이틀도 아닌데 ,“



그렇게 며칠이 지나 남편은 나와 교대를 해주었고

집에 혼자 와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 병원에 있으니 장난 아니게 힘들다. 마음도 외롭고”

나는 이때다 싶어 남편이 이전에 한말을 그대로 리플레이하였다

“왜 거기 땅값도 비싼데, 비싼 호텔에 있다고 생각해. ” (속으로 희열을 느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진짜 위로가 안된다 “

“오빠가 나한테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잖아”

“내가 그랬다고?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랬잖아 …. 나보고 좋은 호텔에서 간호사도 있고 좋게 생각하라고”

“아,,, 내가 그랬어? 그랬다면 내가 진짜 사과할게 ”


사람은 역시 겪어 봐야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힘들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


공감은 어렵다.


나 역시 공감이 어려울 때가 많다.

내 앞에서 펑펑 울었던 사람에게도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공감은 어떻게 잘하는 것일까?

공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머리를 칠 만한 명언이나 조언을 해주는 것일까?

내가 경험한 공감의 기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한동안 하느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나는 하느님을 오랫동안 믿어왔고

나름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니

하느님을 많이 원망하고 있었고,

그런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물론 하느님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신 것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한동안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을 때,
한 언니와 통화를 했다.


그 언니는 요즘 나의 마음에 대해 어떤지 물어 봐 주었다.  나는 일초도 망설임 없이 수화기에 대고 펑펑 울며 말했다.


“나는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게 했는데 ,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건지 …

하느님이 원망스러워.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내 믿음이 약한가봐“

그 언니는

“지연아….그건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야.

전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하느님도 다 너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함께 슬퍼해 주고 계셔. “


지금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며 나를 안도감에 들게 했다.


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니
그 모든 죄책감과 원망들로
날 서 있던 나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차분해졌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언니가 어떤 조언이나 명언을 해서

내가 마음이 치유가 되고  ,

화난 마음이 누그러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그저 나약하거나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내 상황이면

이렇게 힘들어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해 주었기에 나는 마음의 안도감을 느낀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하혈과 산후통, 오한,

그리고 산후우울증으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럴 때일수록 더 “엄마가 힘을 내야 한다”,  또는 “아이의 뇌는 계속 성장하니 뇌가소성을 믿고 희망을 가져라”라는  말들을 했다.


물론 다 맞는 말이지만 ,

뇌도 씨앗이 많아야 연결되면서 자라듯이,

그 씨앗이 많지 않은 우리 아이에겐 맞지 않는 말이었기에 이 역시 나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무엇으로 힘들어한다면 ,

조언이나 충고는 되도록이면 아끼는 것이 좋다.

아무도 그의 상황이 되어 보지 못했기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짐작해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그는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
무수한 자기 검열을 통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수 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 잠시 몇 초만이라도 그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조언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생각하며

모두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조언 역시

그의 상처에 자칫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머릿속에서

문제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할 뿐,

어떠한 조언도  조언도 명언도 필요하지 않다.



그럼 공감은 그럼 어떤 사람이 잘하는 걸까?


공감은 상처받은 영혼,

시련과 아픔을 건강하게 이겨냈고

지금도 그 시련을 이기고 있는 사람들이 잘한다.


그가 견뎌낸 아픔은 따뜻한 위로가 되어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며,

그가 그동안 받았던 수많은 위로는

상대의 눈물을 닦아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감을 잘 못한다 생각했던 남편이 병과 싸우고 있는 한 가족을 위로해 주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남편 역시  어머니의 암투병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지금도 아이의 장애라는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상처가 있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그 사람을 잘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신이 어떤 일로 힘들어한다면 ,

당신 역시 훗날 누군가에게는 최상의 위로자,

그 어떤 심리상담가보다 그 사람을 이해해 줄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해 주는 것이
감정낭비, 시간낭비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길 가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한 노인을 지나가던 행인이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리는 일을 보며,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심폐소생을 하며 사람을 살린

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낸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공감해 주고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공감과 치유의 말은

벼랑 끝에서 손에 힘이 없어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에  심폐소생을 해 찬사를 받은 사람만큼 위대한 일을 한 것이다.



눈물에 젖은 얼굴, 슬픔에 잠긴 눈빛을
우리는 자신의 아픔에 비추어
그의 아픔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


내 상처를 거울에 비추어

상대방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

그의 편이 되어 옆에 있어줄 수 있다.


조심스럽게 내민 따뜻한 손,

지금의 아픔은 당연한 것이라 인정해 주는 마음,

그리고 그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공감은

기적의 묘약처럼 아름답다.


우리는 그저 안아주는 사람일 뿐,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사람일 뿐

공감은 간단해 보이지만,

생명을 살리는 그 무엇보다 위대한 일이다.





이전 11화 나는 B급 엄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