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뛸까 말까?

by 엄면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을 뿐인데 몸이 아팠다.


신호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고 습관처럼 속도를 냈다.

예전 같았으면 단순한 일상이었을 일이다.

하지만 이젠 숨이 살짝 찬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먼저 뻐근해졌고 허리가 뒤늦게 신호를 보냈다.

건너편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난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혼자서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뛰었다는 선택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몇 초 늦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누군가에게 혼나는 것도 아니었다.

뛰는 쪽을 선택한 건 머리였고 아프다고 말한 건 몸이었다.

그 사이에 서있는 내가 조금 낯설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일이었다.

늦을 것 같으면 뛰었고 힘들어도 일단 해냈다.

몸이 보내는 반응과 신호는 대체로 무시했다.

그 정도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참아왔다.

그렇게 몇 번의 신호를 건너고도 별일 없었던 기억이 쌓이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졌다고 믿었던 거 같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뛰고 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괜히 피곤하고 별일 아닌 통증이 오래 남는 날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비슷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쪽을 택해왔다.

뒤쳐지기 싫었고 멈춰있는 시간이 불안했기에.

숨이 차도 참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음 신호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낼모레 마흔, 이제는 안다.

모든 신호를 뛸 필요는 없다는 걸.

조금 늦게 건너도 다음 신호를 기다려도 인생은 망하지 않는 다는걸.

오히려 멈춰 기다리는 시간이 몸과 마음이 덜 상한 다는 걸.


아직 마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른도 아니다.

애매한 나이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여전히 횡단보도를 뛴다.

급한 성격도 그대로, 제시간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길 수는 없다.

뛰고 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이제는 아슬아슬하게 신호가 바뀌면 잠깐 망설이게 된다.

뛸 수는 있지만 뛰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이 늘었다.

괜히 여유를 부리는 건 아니다.

다만 내 몸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다.

예전처럼 무작정 밀어붙이는 대신, 오늘의 컨디션을 먼저 확인한다.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는 일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몇 초가 내 나이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앞으로의 속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예전만큼 불안하지도 않다.


이제는 뛰어야만 도착하는 삶이 아니라, 아프지 않게 건너는 쪽을 배우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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