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이라는 감정은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스무 살의 나는 쉽게 기대했고, 쉽게 실망했고, 또 쉽게 서운했다.
서운함의 감정은 뭘까.
그 감정은 단순한 삐침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를 재보는 조용한 체온계처럼 느껴진다.
나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어왔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마음을 쏟은 만큼 돌아오길 바랐고, 그 기대는 늘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대의 마음이 작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다른 기준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나는 자주 연락하는 것이 애정이라 믿었고, 챙기는 말 한마디가 마음의 크기라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는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이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시간을 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내 기준으로만 상대의 마음을 재단해 왔다.
돌이켜보면 서운함의 대부분은 상대가 나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대한 방식으로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가 달랐을 뿐이다.
마흔을 앞두고서야 나는 서운함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라, 관계를 이해하라는 신호였다.
‘너와 나는 다르다’고 말해주는 조용한 알림 같은 감정이었다.
기대가 클수록 서운함도 커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너무 늦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서운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그 사람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서운함은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기준의 차이라는 걸.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