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엽전 써봤어?'

by 엄면

아이가 물었다.

“엄마 어렸을 때 엽전 써봤어?”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엽전이라는 단어가 아이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고, 그걸 나에게 묻고 있다는 사실이 더 생소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엽전을 실제로 써본 적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역사책에서 본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였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설명하는 ‘어렸을 때’는

아이에게는 이미 충분히 먼 과거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던 연필, 공중전화 앞에 줄 서 있던 기억,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없던 시간들.

나에게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인데 아이에게는 박물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엽전을 쓰던 시대는 아니지만, 엽전을 질문받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의 애매한 내 나이를 증명하고 있는 걸까?


문득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실감이 났다.

엽전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로는 젊음을 증명할 수 없고,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의 설렘을 이야기해도 지금의 기준에서는 이미 옛날 얘기다.

아이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세대가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선이 들어 있었다.


아이에게 나는 이미 ‘옛날 사람’의 범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농담처럼 웃고 넘길 수 있는 단계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때는 그랬어?”라는 질문을 더 자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설명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설명조차 필요 없는 과거가 될 것이다.


그날 이후로 가끔 생각한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렇게 빠르게 낡아간다는 사실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보다,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아이는 앞으로도 나에게 묻겠지만, 나는 점점 대답 대신 웃음으로 넘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조금은 당황스럽고,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씁쓸하다.

하지만 그 감정들 역시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질문은 결국 내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서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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