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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Mar 30. 2024

엎지르기

우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어릴 때 눈물을 자주 쏟아내는 편이었다. 책을 읽다가도 울고 영화를 보다가도 울고. 남의 일로도 울고 내 일로도 울고. 눈물에 희석된 감정은 슬픔만은 아니었고, 때로는 분노였고 때로는 답답함이 섞인 짜증이었다.


마음 놓고 울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다. 적당한 시간과 장소,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그럴듯함의 기준은 너무도 까다로워서 사람은 도대체 언제 시원하게 울어도 되는 건지에 대해 자주 고민했다. 울어도 될 만큼 슬픈 일은 과연 몇 가지나 될까. 결국 나는 제풀에 지쳐 껍질이 조금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감정을 깎아내고 또 깎아냈다. 속살이 껍질과 함께 떨어져 나가 볼품없이 남겨진 사과 조각처럼.


언젠가부터는 아주 성공적이게도 울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 눈물은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정상의 범주에 들어갔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미 정상을 지나 또다시 비정상 쪽으로 기울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너무 울지 않는 쪽으로.


길거리를 지나는 여러 표정들 위에서 유독 슬픔의 감정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다들 나처럼 감정의 숨소리를 죽이고 사는 것인지, 태생적으로 물기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배운 세상에서 슬픔은 늘 숨겨야 하는 그늘이었다.


5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봐도 그들의 우는 모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처음 수필을 쓰기 시작했던 열아홉 살 때인데,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고서 나는 튀어 오르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세 편의 글을 첨부해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통과하는 심사인데, 나는 지하철에서 끄적인 글 한 편 만으로도 단번에 합격했기에 유독 들떴던 것 같다. 글에 담긴 시간과 사람들이 나에게는 촛불처럼 예쁘게 타오르는 기억이라 더더욱.


그 글에는 기숙사에서의 어느 날이 담겨있기에, 작가라는 호칭을 걸고 글을 발행하기 전에 룸메이트들에게 달려갔다. 한 명은 평소에 나와 티키타카 투덕거리던 사이인 만큼 간지러운 감상평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냐며 휴대폰 자판을 두들기는 표정에서 약간의 설렘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애와 쉬는 시간을 보내고, 수업을 마친 뒤에는 면학실로 들어가 다른 한 명의 룸메이트를 불러냈다. 친구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단숨에 글을 읽어 내려가더니 복도 한복판에서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다. 얼굴을 마주 볼 수는 없었지만 고마워, 라고 어깨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이슬이 서려 있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친구가 운다.


나는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 가만히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글은 초보자의 습작일 뿐이었고 다시 읽어봐도 허접하기 짝이 없었지만 수정도 삭제도 할 수 없었다. 그 글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울게 했고, 그 눈물은 내가 찾아 헤매던 어떤 울음의 이유보다도 오래 남을 기억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다시 울기 시작했더라.


고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나는 내 감정이 완전히 고장 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감각한 편이 차라리 나을 때가 많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종일 사람을 마주하는 삶에서는 숨겨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1지망 대학에 떨어지고서도 눈물이 나기는커녕 조금도 슬프지 않았을 때 이게 정상적인가를 다시 한번 고민했다. 정상의 기준이 대체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즈음에 나는 좋아하게 된 가수가 한 명 있었는데, 70여 곡에 달하던 그의 노래 중 그 곡을 처음으로 듣게 된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음악을 무심히 켜두고 교복을 갈아입으며 가사 한 줄 한 줄을 귀로 읽어 내려갔다. 후렴구를 지날 즈음에 나는 어이없게도 후드득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감정도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눈물만.


노래를 들으면서 운 건 살면서 그날이 처음이었다. 가사는 동화처럼 꽤나 아기자기했는데, 이후로도 나는 오랜 시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울었다. 도무지 눈물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울고 싶어서 그 노래를 들었다.


가사 한 줄 한 줄에 나는 울지 않았던 시간 속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뒤늦게 흘려보냈다. 내 눈물은 시간의 햇빛 속에서 다 증발된 줄 알았는데, 슬픔의 알갱이들이 소금처럼 남아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눈이 붉어지도록 울 시간도 장소도 없었지만, 노래라는 명분이 생겼기에 눈물을 잘게 나누어 천천히 쏟아버렸다.


정말이지 온몸의 수분이 다 날아갈 것 같아서 한동안은 또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 그 가수의 공연을 꽤 여러 번 갔지만 그 곡은 애초에 셋리스트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곡이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1월 공연장에서 그 노래의 전주가 울려 퍼졌을 때 관객석 곳곳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저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곡을 다시 들을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나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무대 화면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날 처음으로 그 노래를 편안하게 들었다. 봄의 꽃잎을 녹여낸 듯한 곡의 분위기만큼 예쁘게. 자간에 숨겨져 있다고 느낀 슬픔과 아픔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곡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음악이 대신 울어주는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턱을 괴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나는 당신 덕분에 울 수 있었다고.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여있던 눈물들이 조금씩 엎질러져 지금은 많이 울지 않는다고.


이제 이 노래를 들어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구나, 깨달았을 때 시간이라는 책의 한 챕터가 묶인 기분이었다. 끝났다기보다는 묶인 기분. 삶의 시기는 나이가 아니라 이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구분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눈물의 무게를 스스로 달아보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은 조금 변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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