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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13. 2022

함께 사는 우리

반려동물 에티켓



  이제까지 여행을 다녀왔던 나라 중,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나는 언제고 스페인을 떠올린다. 스페인 여러 도시 전반에서 느껴지는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와 곳곳에 있는 녹음이 우거진 작은 공원들. 밤 9시에도 대낮인 듯 광장의 노란 불빛 아래에서 웃고 떠드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어찌나 즐거워 보였는지. 언젠가 한 번은 꼭 다시 와서 오래도록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개, 고양이가 참 많았다. 유럽에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느꼈을 법한 사실일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있다는 느낌. 

  주인이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거나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테이블 다리에 묶여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는 큰 개들. 그 누구도 밥 먹는 곳에 개를 데리고 왔다고 날을 세우지도, 힐끗거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인이 슈퍼마켓에 뭘 사러 들어간 동안 소화전에 묶인 채 슈퍼마켓 문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도 자주 보였다. 그들에겐 그러한 일들이 일상인 듯, 아무도 그 강아지를 눈여겨보는 것 같지 않았다. 




  역사적인 유적지나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에서도 동물은 달리 여겨지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는 고양이들이 관광객들 사이를 누비며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었는데, 날씬한 몸매와 깨끗한 상태를 보아하니 굶주려서 뭘 얻어먹으려고 나온 것은 아닌 것 같고 그저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중인 것 같았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스르 궁전 (알람브라 궁전 관람의 백미라고 불리는 내부 궁전)을 자유로이 거니는 고양이라니. 그러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건축가이다. 그가 건축한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까사 바트요는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대부분 보고 싶어 하는 관광명소이다. 그런데 그 건물 내부에 목줄을 한 강아지가 주인이랑 같이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역사적인 예술 작품에 강아지라니? 나는 저 사람이 곧 쫓겨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리인들은 끝까지 그 강아지를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관심도 없어 보였다.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 속에 동물들이 깊숙이 녹아들어 있고, 아무도 그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유럽 사람들이라고 모두 개,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인의 삶의 스타일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동물들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서로 간의 예의가 지켜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이 절대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위까지 방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면 서로 눈치를 주거나 비방하며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개에게 물리다


  사람이 개에게 물려서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사회적 이슈가 종종 되곤 한다. 공영 방송에서 개가 다른 사람이나 개를 물면 보호자가 징역을 가도록 해야 할까에 대해 토론을 하는 예능 프로를 진행할 정도로, 개 물림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듯하다. 


  몇 년 전, 다른 사람을 물 가능성이 있는 개의 입마개를 잠깐 풀어주고 감시를 느슨하게 한 사이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물리는 사고가 있었다. 여자아이의 허벅지에 평생 안고 살아야 할 흉터가 남았다고 하는데,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게 될까. 그 개는 놀랍게도 평소에도 사람들을 물어서 여러 차례 그 동네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사건으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리던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큰 개에게 물려 병원으로 가게 된 일도 있었으며, 요양원 원장이 키우던 맹견이 60세 환자를 물어 죽이는 사건도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덩치가 큰 맹견이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개에게 달려들어 단번에 물어 죽이는 사건도 여러 번 매스컴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런 사건들이 나올 때마다 나는 모자이크 처리된 동영상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 끔찍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찰나의 실수, 목줄을 잠깐 놓쳤을 뿐인데, 입마개를 내내 하고 있다가 잠깐 풀었을 뿐인데, 그때에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개들도 집에서나 자기가 편안하다고 생각되는 환경에서는 순하디 순한 아이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보호자들이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개가 조금이라도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린 여자아이의 허벅지를 물었던 개의 견주도 내 개가 다른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불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책임감의 무게가 매우 무거웠다면 두 번째 사고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수의사의 입장에서, 개에게 물린다는 일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동물병원에서 나는 개에게 물린 개를 자주 만난다. 물린다는 것은 더러운 이빨이 몸 안에 세균을 깊숙이 심고 나온다는 말이다. 표면에서 보이는 상처는 작은 구멍일지라도 안쪽으로 긴 상처가 남아있는 데다가 통기가 되지 않으니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보이던 작은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서 안쪽부터 농이 차오르거나 주변부가 시퍼렇게 죽은 색깔로 변해 가기도 한다. 


  예전에 리드 줄 없이 산책하다가 눈치 없이 임신한 진돗개 옆에 다가가서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물리고 만 작은 몰티즈 한 마리가 있었다. 이 아이도 처음에는 상처부위를 만져도 별로 아파하지도 않고 괜찮아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부위 소독을 하는 시간마다 병원 식구 모두가 놀랄 만큼 크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물린 부위 주변을 광범위하게 도려낼 수밖에 없었고 큰 수술 자국이 남게 되었다. 

  이 사고도 생각해보면 리드 줄 없이 산책하다가 발생된 일이다. 리드 줄이 되어 있었고, 보호자분이 개를 잘 보고만 있었어도 이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거나 공공장소에 나가게 될 때에는 내 개의 성격과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제재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자유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필요하다.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그에 맞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 원론적인 이야기만으로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개가 다른 사람이나 개에게 위해를 가했을 시 그 상황과 개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합당한 벌을 내릴 수 있도록 법들이 제정되어 있고 실제로 가해 견을 견주의 의견과 반하여 안락사시키거나, 상당한 금액의 벌금형을 내린 판례들도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맹견의 견종을 지정하여 입마개 착용을 필수화하고 맹견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여 사고가 날 경우 보상을 해주게끔 하겠다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지정된 맹견의 견종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더 사나울 수 있는 개들도 많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안이 발의될 정도의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개 물림 사고나 반려동물 에티켓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길 바란다. 




  철저한 예의와 신뢰 속에서 이루는 안정감


  누구나 개를 좋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고 친근한 개도 그냥 이유 없이 무섭고 싫다는 사람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길을 지나갈 때 리드 줄 없이 풀려 돌아다니는 개를 만난다면 그 개의 보호자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귀엽고 귀엽기만 한 동물이 누군가에게는 행여나 마주칠까 봐 무서운 동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와 배려를 통한 공존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아주 오래 지속되어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안정감을 이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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