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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22. 2022

행복할 때 떠날 수 있길

반려동물 안락사




  진료실 안 공기가 무겁다.

  보호자분의 이따금씩 훌쩍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고 이 공간 안에서는 차단되어 먹먹하게 들려온다.

  "수면제 투약하겠습니다."

  보호자분의 훌쩍이는 소리가 좀 더 커진다. 진료대 위에 힘없이 누워있던 강아지가 스르륵 눈을 감으며 이내 헐떡이던 호흡이 잦아든다. 

  "이제 심장을 멎게 하는 약을 투약하겠습니다."

  끊임없이 강아지를 쓰다듬던 보호자분의 손이 좀 더 애타게 아이의 온기를 찾는다. 

  강아지는 스르륵 떠나간다. 청진기에선 더 이상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생각보다 빠르게 체온이 내려가고, 이제 곧 몸이 굳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아이가 떠나갔습니다. 이제 안 아플 거예요."

  장례업체 상자에 사체를 정리해 넣어드리면 보호자분은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떠나신다. 아이가 꽤 오래 고생했던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으신 것 같다. 


  모든 치료의 끝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만성 질환의 끝이 너무 고통스럽거나 돌이킬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앞으로 살 날이 너무 짧게 남아있을 경우, 환자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안락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슈첸이를 잊을 수 없다. 호두껍질을 먹어서 배탈이 난 줄 알았던 아이였는데 오랜 입원 치료 끝에 악성 종양이 진단되었고, 아이가 통증에 표현을 전혀 안 하는 너무 의젓한 성격이어서 그게 더 마음 아팠던 슈첸이. 

  복강 전체에 종양이 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시점쯤 되어서도 슈첸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멀쩡해 보였다. 잘 걸어 다녔고 반가우면 꼬리도 흔들었고 밥 먹는 양이 줄어 살이 조금 빠지기는 했지만 얼핏 보면 그냥 순하고 얌전한 강아지 같았다. 


  그러나 보호자분은 느끼고 계셨다. 슈첸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밥을 먹던 만큼 먹지 않고 가끔 구토를 하고, 힘없이 누워있고 배에 손을 대면 살짝 움찔하는 것만으로도 평소 어떤 일에도 내색하지 않던 슈첸이가 엄청 아프지 않으면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슈첸이의 뱃속 전체에 퍼져 있는 종양이 치료가 불가능하고 점점 더 통증만 심해질 거라면 많이 아파서 고통이 극심해지기 전에, 그래도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일 때 보내주고 싶어 하셨다.

 

  보호자분은 슈첸이가 입원해 있는 상당히 긴 기간 내내 병원에서 슈첸이랑 같이 밤을 보내려고 이불을 갖고 오셔서 좁은 입원장 안에서 새우등을 하고 슈첸이랑 주무시고 가시기도 하고, 입원과 치료, 진단을 위해 병원에 있는 내내 수백의 병원비가 들었지만 싫은 소리 한번 없이 필요한 모든 검사와 치료에 적극적이셨다.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실 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슈첸이를 보내주는 것이 슈첸이를 위한 것이라 믿으셨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아이를 너무 일찍 안락사를 결정한 것은 아니냐고, 자연적으로 갈 수도 있는데 굳이 앞당겨서 인위적으로 보내줄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보호자분의 진심을 절절히 느꼈다. 너무나도 귀한 나의 아이가 더 아프지 않고, 덜 쇄하였을 때까지만, 즐거운 기억을 마지막으로 할 수 있을 때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보호자분은 슈첸이를 데리고 마지막 산책을 다녀오셨다. 보호자분께서 보내주신 사진 속에서, 평소 좋아하던 한적한 산책로에서 보호자분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슈첸이의 모습은 오렌지빛 햇살과 함께 빛나고 있었고, 슈첸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슈첸이는 내 손에서 하늘로 떠났다. 




   반려동물의 안락사를 요청받을 때, 치료비보다 안락사비가 싸니까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하거나, 애가 아프지는 않지만 내가 키울 사정이 안되어서, 버릴 수는 없으니 안락사하겠다고 하거나, 치료가 100% 성공 보장이 없으면 애초에 안락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럴 때 '안락사'라는 단어가 어울릴까? '살처분'은 아닐까?

  각 개인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비용이 너무 큰 부담이어서 치료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아이를 보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가 된다. 다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란 동물은 고사하고, 사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 하였다고 스스로 자신할 수 있을 때, 가슴 찢어지게 미안한 심정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일이다. 


  신장 질환을 진단받은 고양이를 위해 이제부턴 평생 약 잘 먹이며 관리하셔야 할 거라고 하자, 그냥 치료하지 않고 데려가겠다고 하시며, 

  "결국 얘도, 제가 행복하려고 데려온 거잖아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신 보호자가 있었다. 

  아이가 제대로 치료받으면 수년을 더 보호자분 곁에서 살 수 있는데, 그냥 포기하고 보내버리시고나서, 보호자분은 진정 행복하실 수 있으실지. 좀 더 생각해주시길 바랐지만 그 보호자분은 다시 오지 않으셨다. 




  수의사로서 한 아이의 생명을 앗는다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환자가 말 못 하는 동물이라, 직접 '죽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없고, 통증의 정도 또한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지금 얘가 진짜 '죽고 싶을 만큼' 아플까? 이걸 객관화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의 결정이 자칫 살고 싶은, 아직은 보호자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아이를 반강제로 사망케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되고, 두렵다. 


  결국 반려동물의 안락사는 보호자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수의사와 보호자가 아이를 같이 꾸준히 치료해왔고, 마지막을 오랜 시간 예상해 왔다면, 수의사로서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보호자분의 성향도 알고 있는 상태라면 좀 더 결정이 쉽다. 

  이 보호자분이 안락사 이야기를 꺼냈다면 이건 진짜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보호자의 결정을 지지하고 아이를 편하게 해 주기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처음 내원한 보호자가 안락사 요청을 한다면, 아이 상태가 아무리 안 좋아 보인다 해도 선뜻해드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살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정말 통증이 극심한 게 맞는지, 보호자분이 이 아이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게 맞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볼 것이다. 스위스 등 몇몇 나라에서 특정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람에서의 안락사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불법이며 합법으로 진행되는 나라에서도 매우 한정적으로 엄격한 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물에서의 안락사는 사람에서의 그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지만, '인도적인 죽음의 선택'을 위해서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의 입에서 '그만 끝내고 싶어요.'라는 말을 직접 듣지 못하였기에 이 의료행위는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면, 그 아이가 아직 행복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보호자분을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 영혼을 갉아먹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였기를 바랄 뿐이다.   

  내 주사 바늘 끝에서 행해지는 이 행위가 정녕 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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