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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Sep 18. 2023

지고 또 지더라도 언젠가는 이길 수도 있는 게임

[Book] 파친코 -이민진

(책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미리 알고싶지 않으시면 주의해주세요~)



  폭력적인 역사가 만드는 사회, 문화 속에서 개인은 어떤 힘이 있는가. 


  슬프고 잔인한 역사 속에서 살아나가야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미혼모, 남편을 잃은 아내, 자식을 잃은 어미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선자.

  그녀의 삶에는 5명의 사내가 있었다. 


  장애를 가졌지만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올바르게 살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선자를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수. 어린 시절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던 사랑이었지만 그는 다른 가족을 가진 사람이었고, 야쿠자였다. 어쩌면 선자가 끝까지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끝까지 미워했던 사람이었다. 

  이삭. 선하고 온화했지만 병약했던 그는 미혼모의 선자를 거두어 일본으로 아내로서 데려가 아껴주었던 지아비였지만 종교 활동과 관련하여 투옥된 후 일본 감옥에서 고문 끝에 죽고 만다. 

  노아. 한수와의 관계에서 낳은 첫째 아들. 명석하고 선하고 올곧은 아이였지만, 자신을 경제적으로 도와줬던 사내가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야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족을 등지게 된다. 더러운 피를 물려받아 더 이상 자기답게 살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상처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다 결국 자살한다. 

  모자수. 이삭과의 관계에서 낳은 둘째 아들. 정의 앞에서 물불 가리지 않는 성정으로, 일본에서 파친코 사업으로 성공하지만 일본사회에서 조선인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에 지쳐 자신의 자식만은 편견 없는 세상에서 어깨 펴고 살 수 있길 바란다. 아마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문제없이 잘 살아 낸 사람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 한계와 결핍을 가장 잘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 인물. 




  무엇 하나 순탄하지 않았던 선자의 기구한 인생에는 그 시대 그 세상을 살아내야 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다.  


  선자는 돼지가 집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냄새나는 빈민촌에 살아야 했고,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조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감옥에 있는 남편의 옥바라지도 해야 했고, 남편의 형인 요셉이 전쟁통에 얻은 끔찍한 질병(원자폭탄 피해자로, 전신 화상을 입게 됨)의 간호도 해야 했다. 일을 하지 않고 편히 지내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녀의 삶을 쭉 따라 읽어가며 나는 숨 막히는 피곤함과 고됨을 느꼈지만 동시에 강인함과 생명력을 느꼈다. 무너지지 않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그녀의 생명력이 경외스러웠다. 그 시절 많은 조선인 어머니들의 삶이 선자와 비슷했겠지. 




  일본으로 건너온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이 전쟁터가 되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머물러야 했지만 일본에서의 삶이 녹록했을 리 없다. 차별과 편견과 멸시에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고 그러한 시선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무뎌진 듯 보이고 덜 노골적이게 되었으나 조금 더 예리하고 깊이 스며들어 빠져나오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더 뼈아프게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한국이 어떤 곳인지 본 적도 없지만 한국인이라 불리는 재일 조선인들의 후손들. 자신의 삶이 기반되어 있는 곳에서 자신을 밀어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그들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평생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솔로몬의 생일날. 그날 낮에 솔로몬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기위해 받아야 하는 외국인 등록증을 발부받아야만 했다. 그날 밤. 화려한 조명과 음악, 값비싼 선물과 부잣집 손님들, 연예인까지 부른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하면서도 솔로몬의 손 끝에 남아있는 서류발급을 위해 바른 잉크자국은 어린 솔로몬에게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었을 수 있겠으나 모자수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부당함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크고 더 화려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예전에 재일교포 유도선수 안창림 씨를 한 TV프로에서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던 중에, 태극 마크를 달고 경기를 뛰기 위해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그가 생각이 났다. 

그도 소설 속 모자수나 솔로몬처럼 보이지 않는 결핍을 느끼고 있었을까? 

나는 살면서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게 그렇게 절실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파친코는 조선인이 일본에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어둠의 직장이었다. 파친코 사업은 모자수가 부유하게 살며 가족을 건사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노아가 마음을 다친 뒤 방황하였을 때,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고,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결국 번듯한 직장에서 밀려나 파친코 사업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자수는 솔로몬이 편견의 사회에서 벗어나 더 높고 넓은 세상으로 가길 바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국 대학에서의 유학과 외국계 은행  취직.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일부는 일본인이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며 결국 일본에 남아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길 원한다. 

  편견에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졸업앨범에 심한 욕이 낙서되는 등의 직접적인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모자수는 자신의 역사를 아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솔로몬은 일본인 여자를 사랑하고 일본인 사람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처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다름을 받아들인다. 성정이 나쁜 일본인에게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해고를 당하면서도, 일본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스며들어 간다. 




  슬프고도 기구했던 한국의 역사는 몇 세대를 거친 후손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회의 부당함에 전면적으로 칼을 뽑아 들고 싸울 수는 없어도, 그 안에서 묵묵히 살아내며 전체적인 흐름을 아주 천천히 변화시키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파친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이용한 게임. 

지고 또 질 것이 뻔하지만 언젠가는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 

인생은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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