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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y 15. 2024

5. 떠남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2024. 3. 4 ICN-LAX-SCL 30시간의 여정

  3월 4일 오후 2시 40분 비행기로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했다.

인천공항-로스앤젤레스(미국)-산티아고(칠레)의 여정으로, 약 30시간의 비행과 환승이 예정되어 있었다.  

생애 최장 비행을 앞두고 비장한 마음이었다. (물론, 최장비행의 기록은, 이번여행 귀국 시 바로 깨지게 된다. 귀국 시에는 총 40시간 이상 걸렸으니...)


  첫 1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우리는 경유지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약 18년 전, 이 공항에 온 적이 있다. 나의 빛나는 젊은 날, 아직 그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던 20대 초반의 나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미국으로 떠났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밴을 타고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횡단 여행을 하는 값진 경험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들렸던 LA 공항. 이곳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혼자 처음 여행했던 내 젊은 날의 기억이 이렇게나 먼 곳에 아직도 묻어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소중하다.




  파아란 LA의 하늘과 구름을 몇 시간이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

환승의 지루함은 기분 좋은 환기의 기회로 바뀐다. 오랜만에 느끼는 영어권 국가의 공항 내 분위기.

까만 피부, 하얀 피부, 노란 피부, 그 중간 색깔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음 짓는 분위기. 다소 경직되고 아주 바쁜 서울 시내의 분위기와는 약간 다른 느긋한 느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두 잔을 시켰는데 대기 손님이 없음에도 15분이 넘게 지나서 커피가 나온다. 이 정도 속도면, 강남역 스타벅스에서는 컴플레인을 만 번 정도 받았을 것 같다.




  이제 시작되는 우리의 여정은 더욱, 한껏 느려져야겠지.

승용차를 타고 시작점에서 목적지까지 부웅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목표인, 일상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주변 풍경 한 번 더 보고, 발 밑 땅을 한번 더 느끼는 느리고 더 느린 여행.

느리게 걷는 여행에서는 그만큼 눈에 담길 장면도 많을 것이다.




  LA 공항에서 뜻하지 않게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린다.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몰랐던 그때, 몰라서 불안했고 몰라서 열심이었고, 항상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때.

  이 공항에는 그런 내가 묻어있다.


  내가 가장 불행했을 때, 행복을 찾고 싶어 계획했던 이 여행.

  이 여행의 시작점에서, 내 어린 날을 뜻하지 않게 만난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는 젊은 내가 보낸 메시지는 아닐까.

 '괜찮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

  아무것도 몰라서 모든 것이 새로웠던 그때처럼.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선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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