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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y 11. 2024

4. 여행의 준비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살다.

  우선, 비행기 표는 여행이 결정된 순간 바로 질렀다.

남미 배낭여행자들의 여행후기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동지옥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버스를 30시간 타는 등의 무리한(?) 계획은 피하기 위해, 장거리는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완전한 배낭여행을 선호하는 짠돌이 프로여행자들은 우리를 흘겨보며 뭐 저렇게 럭셔리하게 다닌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ㅡㅡ;;;;

30시간의 버스 이동 후 하루를 골골대며 버리느니, 시원하게 돈을 쓰기로(?) 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우리의 하루를 돈으로 사게써! (옛날사람만 알아들음)


  아무리 이동을 줄인다고 해봤자, 한국에서 남미로 오갈 때는 어차피 30~40시간이 소모된다. 까짓 거. 환승할 때 공항에서 침낭 펴고 자지 뭐!

온이와 나는 음흉한 웃음을 공유하며 비행기 표를 순식간에 결제했고 (사실 순식간은 아니다. 오류가 자꾸 나서 하루정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결제함) 이메일로 E-ticket이 날아온 순간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간다!! 남미!!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W트레킹은 내가 오래전부터 숙원해오던 일이다.

뉴질랜드에 루트번 트레킹코스를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나는, 트레킹이 얼마나 값진 경험이 되는지를 알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TDP(Torres Del Paine) 트레킹을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칠레 남쪽 지방이라는 접근이 다소 쉽지 않은 위치와, 예약이 어렵고 코스가 쉽지 않다는 소문에 항상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해 왔는데, 이번 우리의 여행이 결정되기 딱 얼마 전에 산장 예약이 오픈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산장이 오픈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시기는, 온이가 아직 여행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서지 않았던 시기라, 나는 매일 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며 X 마려운 강아지처럼 예약이 마감될까 봐 노심초사했고, 온이가 드디어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마자, 즉시 숙소 예약을 시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트레킹의 전초기지인 칠레의 푸에르토나탈레스까지 가는 루트가 모두 예약되어야, 딱 맞는 날짜에 산장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선 비행기, 칠레 국내선 비행기 예약과 산장 예약이 모두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텐트를 짊어지지 않고 오르기 위해, 산장이나 텐트가 미리 쳐져있는 캠프사이트의 예약이 필요했는데, 이 또한 상당히 비쌌다.

얼마면 돼~~ (그만해)




  여행의 준비 시기. 나는 점점 더 들뜨기 시작했다.

산에서의 숙박이니, 캠핑이니, 평소에 자주 하는 일들이 아니다 보니 새로운 것들 투성이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종종 필요하게 될지 모를 낯선 물품들에 대해 공부하고 적절한 것들을 구매하는 데 심취했다.


  등산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평소에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산은 그냥 운동화에 레깅스에 티셔츠 입고 오르던 나였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몇 박 며칠을 산에 있어야 하고 날씨가 변덕스럽고 매우 추울 수 있다는 정보에, 이참에 등산 의류, 장비에 대한 정비를 하고자 공부를 시작했다.


  울로 된 베이스레이어, 땀 배출과 속건성에 능한 미드레이어, 보온을 위한 경량다운, 방수, 방풍을 위한 하드쉘, 강추위가 올 경우를 대비한 패커블한 우모패딩, 부피가 꽤 크지만 무게를 허리로 받쳐줄 수 있도록 잘 설계된 등산 가방, 어두울 때 필요한 헤드랜턴, 머리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모자, 울양말, 산에서 캠핑을 하더라도 죽지 않게 해 줄 침낭. 비 올 때를 대비한 우의, 도가니 나감 방지를 위한 무릎보호대와 등산장갑....


  필요한 물품의 가짓수도 많은 데다가 가격의 편차도 아주 심하여 준비하기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극강의 J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일일이 정보를 알아내느라 사서 고생이다.

너무 비싸지 않은 것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에 들어야 했고, 내구성도 좋아야 했음에 발품을 팔고 이런저런 사이트에 눈팅을 하고, 샀던 물건을 반품하고 좀 더 싼 다른 물건을 사는 등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귀찮은 온갖 짓(?)을 해서 어느 정도 물건들을 준비하고 나니, 마음이 참 따스와졌다. 통장은 차갑게 식었지만... 나는야 물욕의 신... 남미 여행 가면서 이렇게 물욕을 부리다니. 참... 정신수양이 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노력은 정말 보람 있었다! 여행에 가서 단 하나도 쓰지 않고 되가져온 물품이 없었다.)




  여행의 준비부터 남달랐던 이번 여행.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뒤섞였다.

  내 과거에 일어났던 불행한 일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일에 몰입했다.


  현자는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에 살지 말고, 현재에 살라고.

  그러나 나는 그 당시 미래에 살았던 것 같다. 현재를 견디기 힘들었다.

당시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얽매는 모든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며 미래를 살았다. 그게 날 버티게 해 주었다.

  그렇게 몇 달을 꼬박 미래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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