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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y 22. 2024

7. 파타고니아 땅을 밟다.

2024. 3. 6 산티아고-푸에르토나탈레스

  산티아고 공항호텔에서 새벽에 나와 국내선을 타고 머나먼 남쪽, 푸에르토나탈레스로 3시간가량 날아가는 날이다. 

  드디어 오늘, 파타고니아 땅을 밟게 된다.




  오전 10시 반쯤 푸에르토나탈레스 도착.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게 된 나는 창밖으로 칠레의 거친 자연을 온전히 내려다보며 착륙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만난 것은 청량한 공기.

쌀쌀하게 부는 바람이 기분 나쁘지 않고 아주 쾌청하게 느껴진 것은, 미세먼지라고는 하나 없는 맑은 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푸에르토나탈레스의 공항은 내가 이제껏 보아온 그 어떤 공항보다 작고 소중했다. 헛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건물에서 짐을 찾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예쁘게 꾸며진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서니 여행이 이제 진짜 시작되었음이 실감이 났다. 우리가 들어서자 모이를 주러 온 사람인 줄 알았던지, 철장 뒤 공간에서 흩어져있던 통통한 닭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온다. 개도 아니고 닭들에게 welcome 인사를 받다니....

  여기는 남미이다.

(숙소에 웰컴드링크가 아니라 웰컴에그가 놓있었다.)


Greeting 닭, Welcome 에그


  숙소를 나서, 아기자기하게 예쁜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쓰레기라고는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길을 걸으며(산티아고 길에서 충격받은 1인) 한국에서보다 명도, 채도가 몇 단계는 높아진 것 같은, 마치 개안이라도 한 듯이 깨끗하고 선명한 시야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우리의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고 한껏 들떴다.

 "바로 이게 여행이지!"   





  등산, 캠핑용품 대여점에서 트레킹에서 필요할 코펠을 빌리고, La disqueria라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식사는 완벽했다. 고기도 맛있고 파스타도 맛있고,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 나이지만 Torres del paine라는 지역맥주가 있길래 몇 모금 마셨는데 쓰지 않고 깊고 진한 맛에 반해버렸다.

  정말 잠시이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맑고 쨍한 하늘과 눈 덮인 뾰족한 산봉우리가 둘러싼 풍경이 창밖에 보이며 클래식 재즈의 편곡 버전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트레킹을 위해 이 작은 마을로 모여든, 대부분 편한 등산복 차림의 여러 인종의 외국인들이 이 작은 가게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이 순간.

  아마 앞으로 평생 내게 남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행복하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얼마만일까.

  이 일이 해결되면 행복할 거야.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야..

  지연된 예비 행복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한 것. 그런 일을 하는 것.

  떠나지 않고 일상에 매몰되어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이런 느낌이 지금 나에게는 소중하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아주 오랜만에 받아, 마음이 뭉클해진다. 


  바닷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뾰족한 산봉우리 앞에 바다가 있고, 파도 없이 잔잔한 바다에 오리와 새가 여럿 보인다. 여행자들은 느긋이 걷고, 길가는 한적하다.





  크게 상처받은 마음이 하루만의 행복감으로 상쇄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지금 그 길목에 있다.

오늘, 내일, 모레... 하루하루를 기대와 반복된 짧은 행복들로 채워나간다면... 어쩌면 정말 치유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이제 숙소에 돌아와 내일을 기약해 본다. 연이은 이동 스트레스에 정반대가 되어버린 시차에 적응하느라 눕자마자 잠이 들 기세다. (실제로 기절하듯 잠들어 온이가 내가 축 쳐져 자는 모습을 보며... 오징어 널어놓은 줄 알았다고 함 ;;;)


  내일은 드. 디. 어. TDP로 3박 4일 W-trekking을 떠나는 날.

  심장아, 나대지 마.


  결국 시차 적응에 실패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버렸다.

산행 준비물을 챙기며 행복할 것이 분명한 하루를 또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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