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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un 26. 2024

17. 진짜로 떠나기 싫어.

2024. 3. 16 El chalten->Ushuaia

  Chao, patagonia!!

  오늘은 파타고니아를 떠나 우수아이아로 향한다.

 변화무쌍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날씨와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인간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이 지역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몰려온다.

인터넷이 아예 안되거나 잘 터지지 않아 아날로그적 생활을 해야 했고, 산에서는 심지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텐트 속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해 생활하기도 해 보았다.

늘 빠르고, 편리하고, 밝고, 휴대전화만 내 손에 있으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네모상자의 삶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느리고 해가 지면 잠이드는 생활을 하며 자연과 벗삼았던 약 일주일 남짓의 기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란 걸 확신한다.                  


엘찰튼 마을 입구에 있던 배낭모양의 벤치





  엘찰텐에서 버스를 타고 엘칼라파테 공항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는 여전히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와 도로로 동물들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박아둔 울타리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자연이 빚어낸 그대로의 모습뿐인, 풍경이 이어졌다.

저 멀리 뾰족한 산봉우리들과 만년설이 보이고,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가끔 야생 과나코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는 그야말로 Wild life.

아~~~~ 그리울 거야 파타고니아!!!


  공항에서 시간이 남아 샐러드파스타를 사 먹었는데, 핵노맛! ㅡㅡ;;;

정말... 이 지역에서 단 하나 그립지 않을 것은 커피와 감칠맛 없는 식문화이다. 온이는 식도락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먹질 못해서 항시 약간 우울해했다.

'미안해 온이... 나 따라 남미 와서 고생이다 니가.'

아직까지도 내가 이곳 마트에서 찾지 못한 게 있다. '우유'.

왜 우유가 없을까? 소가 그렇게 많다면서... 탈지유, 멸균우유는 있는데 냉장고에 보관되어있어야 할 일반 흰 우유를 한 번도 보질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카페라테 같은 커피도 진한 맛이 없고 밍밍하다. 커피 없이 못 사는 나는 이게 참 힘들었다.

아직도 이곳에 우유가 없는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누구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발 알려주세요 ㅋㅋ) 아르헨티나 주민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정도의 대화가 가능한 스페인어 실력이 아닌 관계로, '아마, 나라가 엄청 큰데 냉장유통시스템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는 아닐까?'라고 혼자 상상만 해볼 뿐. (근데 아닐 수도 있을 듯... 왜냐하면 요거트나 치즈 같은 물품은 다 있으니까. 그냥 이곳 사람들은 우유를 싫어하나...)

오늘 밤에 주문해도 내일, 심지어 당일에도 문 앞까지 신선제품을 배송해 주는 우리나라.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문제의 샐러드파스타... 비주얼은 좋은데...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1시간여 날아, 우수아이아에 도착하였다.

"Fin del mundo (End of the World)"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이곳.

도착하여 숙소 근처로 오자마자 넓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들이 해수욕을 하고 해변을 즐기는 그런 바다가 아니라. 진. 짜. 바. 다. 쌩 파랑색의 바다.

보자마자 압도되는 바다의 짙푸른 색깔과 차갑게 볼에 와닿는 바닷바람.

이곳은 정말 남극과 가장 가까운 땅.

 


  저녁 시간에는 바다를 따라 한참을 걸어보았다.

짙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어찌나 예쁜지, 비슷한 사진을 수십 장 찍으며 걸었다.

바다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의 새들이 많았다.

꽤 큰 새가 뭍에까지 나와있어서, 덤벼들까 봐 좀 무서운 아이들도 있었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각종 오리류(?)의 새들도, 바닷속에 뭔가 먹을 게 많은지, 연신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뭔가를 잡아먹는 듯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굶주리거나 더럽혀지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한국의 길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야생동물도 아니고 반려동물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빵빵거리는 차와 쓰레기통 근처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사는 도시의 고양이들.

  나는 길을 가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항상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참 미안하다. 너희들이 좀 더 편하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곳 우수아이아의 새들처럼...

  물론 진짜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과 상황을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태어난 것을 눈치 봐야 하는 삶은 아니길 바란다.

'너희 잘못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내일은 고대하던 펭귄 투어의 날이다. 야생 펭귄과 바다사자 무리가 살고 있는 섬에 들어가서 직접 그들을 볼 수 있는 투어라고 하길래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해두고, 오매불망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근두근... 내일 만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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