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들뜬 마음에 온이가 자고 있을 때 깨어버린 나는 일출을 혹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조용히 문을 나서본다.
새벽 골목길에 어떤 덜떨어진 자식이 "China!!" 하며 위협적(으로 느껴짐)으로 불러대길래 거의 발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걸어서 해변까지 걸어 나갔다.
다행히 그 자식은 더 따라오진 않고 멀어졌다.
낮게 깔린 구름 뒤로 해가 빛을 내뿜고 있었으나, 구름에 가리어져 강렬한 붉은빛은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바닷길을 조금 걸으며 잔잔하고 맑은 호수 같은 바다를 즐겼으나, 이내 추워져, 오후에 있을 투어를 위해 얼른 집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구름 뒤로 떠오르는 해
투어 예약 시간이 되기 전, 우리는 100년 전통의 카페라는 Ramos generalis를 찾았다.
온이는 카푸치노, 나는 핫초코, 치즈케이크를 시켜 먹었는데... 읭??? 이게 뭐여
네스퀵을 타먹는 게 낫겠고, 컴포즈 커피가 낫겠고, 냉동 치즈케이크를 코스트코에서 사 먹는 게 낫것어!! ㅠㅠ
역시나 카페 맛집을 찾는 것은 오늘도 실패군. 온이와 나는 눈알을 굴리며 '이게 맞아? 100년간 이맛??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는 무언의 대화를 하고, 결국 배고픈 상태로 투어를 떠났다.
비주얼은 그럴듯 한데...2
펭귄섬에 직접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 투어는 여러 투어사 중, Pira tour 한 군데에서 진행한다.
우선, 투어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1시간 40분을 간다. 가는 길에, 여행 가이드에게 펭귄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절대 절대 만지거나 주머니에 넣어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듣는다. 지키지 않으면 투어는 중단될 거라는 으름장을 듣는데,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펭귄들이 보호받고 있구나... 다행이다.
그렇게 선착장에 도착하고 나서, 엉덩이가 빠개질 것 같이 통통 튀는 배를 타고 10분 남짓 들어가면, 세. 젤. 귀 (세상에서 젤루 귀여운) 펭귄을 볼 수 있다.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젠투펭귄과 마젤란 펭귄...
아니,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내 얼굴에는 추위로 굳어져있던 표정이 바로 사라지고, 또 함박웃음이 떠오른다.
바지 제대로 안 입은 듯한 엉거주춤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짧은 다리를 최대한 길게 내딛으며 양 날개를 양옆으로 뻗은 채 열심히도 걷는 펭귄들을 보니,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거센 바람을 피해 풀숲 뒤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녀석들, 거처인 작은 동굴에서 부부펭귄 두 마리가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는 모습, 아기펭귄이 둥지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 입에 풀, 지푸라기 같은 걸 물어 어디론가 가져가는 모습, 하나같이 예뻤다.
넘나추워
우리는 부부 (로 추정)
나는야 황제(펭귄)
엄마가 흙장난 하지 말랬지
단, 펭귄 섬의 최대 단점은, 너무, 너어어어어어무 춥다는 것... ㅜㅜ 너무 추워서 사진 같은 걸 여유로이 찍을 겨를 따윈 없었다.
"여기가 땅끝이다아~~!!" 라고 외치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거세게 우리를 밀어댔고, 한겨울 서울 한파에 부는 바람은 바람도 아니라는 듯, 냉기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냉기였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것이겠지?
아웃도어브랜드 파타고니아에서 개비싸게 주고 산 피츠로이 패딩이 오늘 할 일 다 했다.
오늘 바람을 이만큼 막아준 것만으로도, 그 돈이 아깝지 않을 지경. 파워 J 프로준비러. 과거의 나를 다시 한번 칭찬한다.
몇겹을 껴입은건지...
이 섬에는, 아주 큰 바다사자들이 있었는데, 뉴질랜드에 갔을 때 본 물개랑은 차원이 다른 덩치였다. 이 추위를 견디려면 저 정도 지방층은 있어야겠지..;;;
예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바닷속에서 펭귄을 잡아먹는 물범 사진이 적나라하게 찍힌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바로 이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가!
짱 큰 바다사자들
난 왜 계속 졸리지?
야생동물들은 언제 보아도 신비하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좀 본 사람.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 3)
그들만의 습성,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 열심히 살아가는 동물들.
이 심한 바람과 추위를 맨몸으로 맞으며 살아가고 있는 야생동물들은 정말. 멋. 지. 다. 강. 하. 다.
(이 추위에 얼음장처럼 차가울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펭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달까...)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며, 보존되어야 한다. 바다사자가 무리 지어 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하며, 펭귄들이 방해받지 않고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이 존중되어야 한다.
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죠?
펭귄의 성별은,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들의 행동을 보아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데, 그것은 모든 활동을 동등하게 나누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 집을 짓기 위해 지푸라기를 옮기거나 땅을 파는 행동을 하면 수컷이고, 그 외에는 모두 똑같이 한다고 한다. 와우!! 가사노동과 육아 분담의 중요성을 펭귄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역시 멋진 짜식들!
펭귄의 귀여움에 도취되어 손끝이 곱고, 볼따구가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산채로 동태 되기 직전, 뭍으로 되돌아갈 배가 도착했다.
펭귄들과 헤어짐은 아쉬웠지만 솔직히 너무 추워서 고통스러웠기에 배에 얼른 올라탔다. 다시 한번 엉덩이가 빠개질 것 듯한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며 뭍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피츠로이 등산하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꼬리뼈에 큰 타격을 입었던 걸 기억하는가? 훗.... 난 배에서 결국 꼬리뼈에 금이 가는 줄 알았다.)
다시 투어를 시작한 곳으로 돌아온 온이와 나는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극도의 배고픔에, 숙소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을 생각 밖에는 할 수 없었다. ㅋㅋㅋ
우리는 지금 이곳 음식에 물릴 대로 물려서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결국 숙소에 도착해서 고기를 구워 먹고는 평온을 되찾은 우리... 온셰프에게 무한한 영광을!!!
내일은 비글해협! 드디어 땅 끝에 있다는 등대를 보러 간다.
땅 끝 등대에 내 아팠던 기억 모두를 두고 올 작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예상보다 더 잘, 더 완벽히 치유 중임을 느낀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