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보더라도 비슷한 것 같다. 싸고, 조악하고, 쓸데없는 물건들이 잔뜩 나와있지만 진지하게 팔고 있는 상인들과, 너무 쓸데없어 웃음이 나는 물건들을(Ex. 돌로 만든 매우 큰 사람 머리 조각? 저게 왜 여기...? 해동용궁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님?) 구경하며 분위기를 즐기는 맛에 가는 게 아니겠는가!
복작복작한 시장 분위기를 제대로 느낀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벼룩시장 초입부
이 나이에 펭귄 인형 삼. 내 사랑 마젤란 펭귄.
산텔모 시장에서. 오늘의 포토제닉!
산텔모 시장 근처에는 우리가 예전에 TV에서 보고 침을 질질 흘리며 꼭 가보자고 약속했던 아사도 고깃집! La Brigada가 있다. 이곳에서 웨이팅을 조금 하고 드디어 숟가락으로 고기를 썰어주는 퍼포먼스를 보게 되었다!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서 숟가락으로 썰어도 될 정도라는 걸 뽐내는 이 집의 특이한 세리머니.
와우. 여기 사람들 고기 스타일은 아주 거칠고 과감하다. 일단 구워져 나온 고기가, 잘라보니 아예 쌩고기였다. 도저히 못 먹어서 더 구워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진짜 온몸으로 나 고기임!!! 을 외치는 듯하게 투박하게 썰려 나오는 고기...ㅋㅋㅋ 고기가 나왔을 때, 서버분이 숟가락으로 고기를 잘라주긴 하셨는데, 나는 막판엔 그냥 뼈를 손에 들고 뜯어먹었다. 옆테이블의 서양 남자분이 흠칫 놀란 듯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ㅋㅋㅋ 뭐 어때, 한국인은 갈비 이렇게 먹어! 칼도 숟가락도 필요없다구! 너도 한번 해보렴~!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ㅋㅋ
오픈런 중인 사람들. 축구 광팬인 듯한 사장님.
라보카는 탱고의 발상지라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치안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라보카로 걸어가는 길에서 그걸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급격히 나빠지는 위생상태와 자주 보이기 시작하는 거리의 부랑자들.
도착한 라보카의 카미니토 거리는, 듣던 대로 형형색색깔로 칠해진 담벼락과 메시 조형물 등으로 꾸며져 예뻤지만, 주변 위생이 너무 좋지 않아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았다.
항구로 들어온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살며 이민자의 애환을 춤으로 표현한 탱고가 발생한 발상지가 이곳이라는데, 평범한 삶을 사는 주민들이나 탱고, 음악은 온데간데없고, 즐비한 식당과 호객꾼, 관광객들로 들어찬 이곳은, 특색을 잃어 보였다.
탱고와 서민의 삶이 없는 라보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우린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유명 맛집이라는 'pizza guerrin'이라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가지고 가서 피맥을 하기로 했는데...
"피자를 사가지고 가다"라는 말이 "3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을 거치다"라는 말로 탈바꿈될 줄은 우리는 이때까지 미처 알지 못했다 ㅡㅡ;;
라보카에서 땡볕, 모기, 수많은 인파에 지친 우리는 얼른 29번 버스를 잡아 탔다. 어라? 이 버스가 왜 정해진 경로대로 안 가지? 급기야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주지 않고 다른 길로 우회하더니 그대로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얼른 내린 우리는 다른 버스로 다시 갈아탄다.
'왜 노선이 변경되고 난리람? 우리가 뭘 잘못 알았나?'
의심하며 탄 111번 버스도, 조금 가다가 서더니 다 내리란다. 뭐지 뭐지???
에이 몰라, 좀 걷지 뭐 그냥. 결국 나머지 몇 블록을 걸어 피자집에 도착했다.
피자집은 거의 도떼기시장 수준이었다. 와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서로 농담까지 해가며 일하는 모습에 나는 심심치 않은 감명을 받았다.
한참을 서서 대기해서 받은 피자를 품에 안은 온이는 캥거루가 주머니에 아기를 품은 듯 피자를 소중히 안고, 피자 사수만을 사명으로 여기며(?) 씩씩히 귀갓길에 올랐다. (진짜 피자 한쪽만 달라는 부랑자가 있었고, 나는 저 부랑자가 온이에게 맞을까 봐 무서웠다.ㅋㅋㅋ)
정신이 없지만 웃음을 잃지않는 점원들. (Feat. 내 안에 강하늘 있다...초상권.. 죄송합니다....)
그러나 귀갓길은 순탄치 않았다. 오늘 29번 버스가 구글에서 알려주는 루트를 벗어난 것, 111번 버스가 운행을 중단한 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무슨 메모리얼 데이로, 예전 모기소굴 ABNB 관리자가 주말쯤 엄청 붐비는 날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메인 도로에 차량 통행이 중단되고, 사람들이 길에 쏟아져 나와있는 데다, 경찰차와 무장 경찰들의 무리와, 시위를 준비 중인 듯한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래서 버스가 정상 운행을 못하고 있는 거였다. 하아... 어떻게 돌아가지...
우리는 결국 한참을 걷고, 길에서 만난 젊은 아가씨에게 도움을 받아, 교통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길을 알아냈고, 거기까지 또 꼼짝없이 걸어가야만 했다. 피자 하나 사가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결국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려, 숙소에 돌아오게 된 우리. 장하다!!! 이번여행 정말 파란만장하구나!! ㅋㅋㅋ
도로에 쏟아져 나온 인파 (실제로 이보다 더 많았다.)
텅 빈 대로, 버스정류장
오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거의 모든 시민이 집 밖에 나와있는 듯했다. 어딜 가나 사람으로 가득가득했고, 무서울 정도였다. 일요일마다 이런 건지, 메모리얼 데이가 겹쳐서 더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시내 쪽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광장, 놀이터, 공원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긴 했는데, 관광객으로서는 상당히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숙소에서 드디어 게린피자를 맛본 우리. 맛없었으면 분노할 뻔했는데, 와.... 이건 진짜 인생피자!!
엄청난 맛에 감동해 버린 우리. 아사도고기보단 피자. 역시 탄수화물파 한국인들!! ㅎㅎㅎ
아무리 힘든 하루였어도 시원한 샤워와 피맥이면 다 용서되는 거 아니겠어?! 캬아 오늘하루도 끝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