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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레몬 Mar 07. 2024

행복이 늦게 찾아온다면 늦게 떠날 테니까

[어디까지 내려가나 했더니 바닥은 있더이다]


 인생의 로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건 확실하다.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도 있고 다만 어디까지 올라가고  내려가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나의 인생 그래프는 한참을 아래로 향해있었다. 이게 바닥일까 하면 지하가 있었고 지하가 끝인가 하면  더 어둡고 깊은 또 다른 지하가 나와서 바로 전 상황은 반지하 정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햇빛 한점 없는 지하가 나의 딱 10년의 느낌이다. 영화 '기생충'의 가족들이 오히려  생기 있어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혼 후 보증금을 못 받고 빚이 생겨버린 '첫 집 박탈사건'과 남편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 아이의 유산등 한 번도 버거운 인생사건들에 겹겹이 숨쉴틈 없이 밀려오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멀미가 날 것 같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운명이라는 놈에게서 도망을 가야 했다. 아이 둘이 있다는 이유로 세상과 단절하는 집콕의 시간이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무서웠다. '은둔형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10년이 무심히 흘러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서 '00 엄마'가 아닌 '나'라는 자아가 스멀스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마흔이 되었다. 숫자에 압도되어 무언가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알게 되어 '공부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설레며 떨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무언가를 목표하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는 새벽에 공부를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비밀 연애하는 것처럼 흥분되고 즐거웠다.

곧바로  자격증을  취득하니 '어쩌면 취업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취업을 돕는 일이니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20년 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이력서는' 경력단절이 길어서 별 내용이 없었고 '자기소개서'를 쓰고는 고용센터에 무작정 찾아가 내용이 어떤지 여쭤보았다.  직업상담사 선생님께서  "혹시.. 새벽에 쓰셨나요?"라고 물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아니 왜 업무내용은 없고 출산 얘기며 육아 얘기가 더 긴지.. 다시 여러 번 수정한 서류로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면접 후 합격했다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고는 그날 하루만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주말이 되니 두려움에 출근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그러니 실수할게 뻔하고.. 저 회사에 민폐가 안되게 안 가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너무 두려워하니 '그렇게 괴롭고 힘들면 나가지 말라'라고 했다. 취업합격 소식을 제일 기뻐하셨던 친정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일단 나가보고 못하겠으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예전에 나는 용감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모든 게 두려운 사람이 되었는지.. '.


자격증 도전으로 한 파도를 넘고, 취업 도전으로 또 한 파도를 넘었다. 멈추고 싶었다. (나의 멘털은 이미 면접에서 100% 소진되었다) '합격'하고도 이런 생각으로 괴롭히는 '나'자신과 싸우다 보니 밤을 꼬박 새웠고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다. 억지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 중앙문에 도착했다. 혼자 버텨왔던 1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움켜쥐고 회사 문을 넘은 나의 첫 출근 모습이다.


첫 출근하고 시간이 흘러 직업상담사 5년 차가 되었다.  나의 과거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내담자들이 매일 묻는다.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있는데 늦은 게 아닐까요?" 나는 그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아니요, 전혀 늦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건 뭐든 하실 수 있어요." 이건 말뿐인 위로가 아니다. 그 산 증인이 해주는 이야기다. 은둔해 있었던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이야기이다. 5년이 지나도  나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어제보단 좁쌀만큼을 바뀌려고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버티고 있다.

지금 그 무언가 때문에 힘든 시기에 있다는 당신에게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일단 살아만  있어 달라.

그렇게 버텨달라.

분명 그 시간도 끝이 있다.

우리도 다음도 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모두 꿈꿀 수 있다.

우리는 더 오래 행복할 것이다.


행복이 늦게 찾아온다면 늦게 떠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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