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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03. 2024

마리아 찬가(1:26-56)

비천함이 높아질 때

"은혜받을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인사한다. 놀란 마리아에게 천사가 전한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평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식을 전했다.


많아야 열다섯 쯤 되었을 소녀 마리아. 가난한 동네 나사렛 출신에 약혼한 남자가 있는 여성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이 어떻게 들렸을까? 마리아의 처지는 비천함에 가까웠지 평안함에 가깝지는 않았을 테다. 


가부장제도가 확고한 시대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의 임신은 위험한 일이었다. 천사는 "마리아야, 무서워하지 마라."하고 말했지만 천사를 만난 일보다 그가 전한 말이 더 무서운 소식이었다.


사람들의 멸시와 비난이 마리아를 괴롭게 만든다. 부잣집 딸이었다면 뒤에서라도 수군거릴 텐데 마리아의 눈치를 보는 사람은 없다. 간음한 여성을 향해 "돌로 치라."라는 말을 하는 시대에 혼전임신이라니. 마리아가 천사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살기 위해 하나님을 파는 사람으로 몰려 손가락질을 당할게 뻔했다. 그러니 어떻게 그녀에게 평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 천사는 도무지 평안해질 수 없는 말을 전하면서 평안의 안부를 전했다.


놀랍게도 마리아는 그 소식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천사는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해주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사가랴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 어린 소녀가 치안도 좋지 않던 시절에 홀로 산 길을 지나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다.


마리아의 문안을 들은 엘리사벳은 마음이 매우 기뻤다. 얼마나 기뻤는지 뱃속의 아이가 뛰어놀았다. 그 순간 엘리사벳은 성령충만함을 받아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놀라고 무서웠을 마리아는 이제 복 있는 여자가 되었다.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견뎌야 하는 비천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자 예수를 잉태한 가장 복 있는 여성 마리아가 되었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신성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축복해 주고 응원해 줄 사람. 


엘리사벳의 축복을 들은 마리아의 영혼이 찬양한다.


"내 마음이 주님을 기뻐함은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의 긍휼 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도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석 달을 머물렀다.


석 달 후에 사람들은 마리아를 축복했을까? 마음이 교만한 자들의 생각이 바뀌어 마리아의 잉태소식에 함께 기쁨을 나누었을까? 도무지 그런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를 신성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엘리사벳의 축복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도 위축되지 않고, 존엄이 상실되지 않을 수 있는 신성한 힘이 생겼던 듯하다.


마찬가지로 나를 신성하게 대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교만한 자들의 말이 권세를 잡은 듯하지만 그들의 말이 나의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만한 말들이 나의 존엄을 훼손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비천하다 말해도 하나님께서 존귀하다 하시면 신성한 것이다.


교만이 권세가 된 세상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인식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겨 줄 수 있어야 한다. 출생 배경에 상관없이 생명은 신성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복이 있고, 당신의 아이도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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