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꿈 Dec 31. 2022

우리들의 마지막 글자국

어쩌면 우린, 모두 빛나는 별일지도 몰라

    

스무 편의 시가 모여

  우리들의 글자국이 열여덟 번째에 멈춰있었을까? 우린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왔다. 열여덟 편의 시에 이어 두 편의 시를 더 썼었다. ‘그림자’와 ‘자유주제’로 아이들은 ‘나만의 시 짓기’ 내가 만든 시 스무 편을 꼭 채웠다. 그렇게 25명이 쓴 시가 모두 모이니 500편의 시가 탄생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시를 썼구나! 한 걸음씩 걸어왔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고 우리가 걸어온 길의 글자국을 보며 놀랐다. 이렇게 나만의 뚜렷한 글자국을 남기며 아이들은 자신을 채워왔다. 남은 시간 동안 시를 더 쓸까? 아이들은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시에 맛들였구나? 벌써 스무 편이나 썼는데 더? 이만큼이나 썼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충분한 건 원래 없어? 이렇게 나만의 시를 멋들어지게 잘 쓰는데? 그럼 내 손끝에서 피어난 시들로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한 학기 동안 우리가 창작한 시를 이제 시집으로 만들 차례였다. 시는 10월에 모두 완성되었고 11월과 12월은 시집을 만들고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2년의 마지막을 우리만의 특별함으로 빛내기 위해 서로의 빛을 모았다.



올 한 해, 우리를 가득 채웠던 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손으로 만든 시집이다. 시집을 완성하고 자가 출판 플랫폼을 통해 시집을 출간해 예스24, 알라딘 같은 전문 서점으로 외부 유통되기까지 준비하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것이었다. 편집부, 디자인부, 전시회부로 나누고 각 부서의 부장들을 뽑아 부장들을 주축으로 각 부서의 역할을 맡아 운영했다. 역할을 정한 뒤 우리 반 이름, 시집 제목, 차례를 정했다. 아이들의 여러 의견을 받았고 정말 많은 후보가 나왔다. 학급 회장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스티커 투표를 받았고 그중에서 꽤 많은 득표를 한 후보들로 재투표를 거듭해 최종적으로 3개의 후보가 추려졌고 학급 선거하듯 비밀투표로 우리 반 시집의 제목을 정했다. 치열한 접점 끝에 탄생한 제목은 “어쩌면 우린, 모두 빛나는 별일지도 몰라”이다. 이에 반 이름도 샛별반, 별똥반, 별반 등이 있었지만 은하반이 최종 선택되었다. 참 예쁜 시집에 참 예쁜 우리 이름이다.



어쩌면 우린, 모두 빛나는 별일지도 몰라

  차례는 프롤로그로 시작해 1장부터 5장까지 5개의 장과 작가의 한마디로 구성했다. 지금까지 써온 시를 각 차례에 맞게 분류해 구성했다.


1) 나를 담아, 나답게

- 나 / 꿈

2) 내 곁을 담아, 소중한

- 우리 반 / 친구 / 학교 / 가족

3)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 마음 / 기분 / 웃음 / 감사

4) 추억을 담아, 그때의

- 시간 / 가을 / 추석

5) 모든 것을 담아, 함께한

- 자유 주제 / 별 / 그림자 / 선물 / 마실 것 / 자유


  안에 채울 내용만 있어서는 책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책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디자인부 아이들이 앞뒤 표지와 속지 그림을 그렸고 프롤로그에 들어갈 인사말을 썼다. 책등과 우리 반 일러스트까지 아이들이 역할을 나눠 열심히 그려 완성해냈다. 지금 내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우리 반 금손 아이가 그려준 거다. 마지막에 들어갈 시집의 끝, 작가의 한마디는 편집부 아이들이 모든 아이들의 한마디를 모아 채웠다.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들고 우리가 함께 일 년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를 담았다. ‘마지막’이라니 진짜 이 아이들을 올려 보내고 우리가 맞이할 이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다음부터는 나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시집에 싣고 싶다 선택한  편의 소중한 시들을 스캔해 차례에 맞게 집어넣고  차례의 시작을 알리는 속지 디자인을 넣었다. 그리곤 바로 뒷장에  차례를 여는 소개글을 작성해 넣었다. 책을 열었을 때 첫 장에는 우리 반 아이들의 예쁜 단체 사진을 넣었다. 빛났고 빛나는 은하반의 이야기다. 지금껏 우리가 쓴 스무 편의 시 전체 사진들과 작가님들의 이름도 넣었다. 차례부터 시작해 5개의 큰 주제를 거쳐 마지막에는 작가의 한마디를 넣고 우리 반의 단체 사진들로 가득 채웠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합쳐 책의 표지를 만드는 작업이 까다로웠는데 책의 크기에 맞게 계산해 합쳤고 해상도 조절하는 법을 배워 해상도를 높이고 로고가 들어가고 인쇄  잘려 나갈 부분까지 고려해 크기를 수정하길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책날개 앞부분에는 시집 소개글을 써넣고 뒤에는 우리  일러스트와 이름들로 가득 채웠다. 시집 편집까지 완료하고 출간을 위해 담당자와 연락하며 최종 승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판매 사이트에 올라갈 저자 소개, 목차, 도서 정보 미리 보기를 입력해 정말 시집 출간의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어쩌면 우린, 모두 빛나는 별일지도 몰라우리가 만든 시집이 탄생했다. 언제쯤 직접 받아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을 넣은  인쇄를 기다리며 아이들과 전시회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먼저 작품 전시회에 전시하고 싶은 나의 시를 하나씩 선택했다. 시를  도화지에 다시 쓰고 시에 어울리게 꾸며 액자에 넣었다. 하나만 전시하기에는 아쉬워 지금껏 시를 쓰며 느낀  또는 은하반으로 1년을 보내며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해 보았다. 이렇게 탄생한 시와 더불어 스크래치 종이에  편의 시와  점의 그림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스크래치 종이는 내가 지나간 길에 어떤 알록달록한 예쁜 색이 나올지 몰라 기대하며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옆에는 아이들의 낙관을 붙였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필름 사진을 붙여 작가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그럼,  작품들을 모두 어디에 전시한담? 게시판이나 칠판? 벽에 붙일까? 고민했지만 전시회장 같지 았다.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아주  우드록을 여러   4개를 옆으로 이어 붙여 정육면체처럼 만들었다.  면에는 2명의 작품을 붙여  3개의  전시장을 구성했다. 책상 배치를 조정하며 3개의 전시장을 만들고 작품이 떨어지지 않게 글루건으로 단단히 붙이는 일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모두 하고 싶다 돕고 싶다고 하며 열심히 참여했다. 내가  로 시집이 나오고 이렇게 시 작품 전시회를 열어 보여주고 나누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이렇게 2022년의 마지막에 우리는 작품 전시회 & 시집 출간식 & 은하반 시상식을 열었다. 계획 과정에서 아이들은 누군가 우리 전시회를 보러 와준다면 기쁠  같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를 초대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교장, 교감, 수석 선생님과 상담, 사서, 체육, 영어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아이들이 직접 초대장을 만들어 찾아뵙고 초대장을 전달했다. 물론 아이들이 초대장을 전달하러 가기 전날 내가 먼저 찾아뵙고  아이들과 함께 시집을 출간했는데 작품 전시회를 진행하려고 한다 간략히 말씀드리고 초대에 응해주실  있는지 먼저 양해를 구했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초대장으로 초대한다고 신나서는 얼른 드리고 싶다고 설레며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예뻤다.


  은하반 연말 시상식에 모든 아이에게 각자 걸맞은 상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상을 받았을  기뻐할까? 누구에게 어떤 상을 주는  맞을까? 고민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  누가 어떤 상을 받으면 좋을까?  이름부터 허니콤보드에 적어 합쳐보고 이야기해 보았다. 그리고 며칠  아이들의 의견을 추린 것과 내가 생각한 참신한 상들로    의견을 물었다. 설문조사 앱에 태블릿 QR코드로 접속해 아이들이 직접  상에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투표했다.  년을 돌아보며 나는, 친구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엇을 열심히 하고 잘했는지 찬찬히 추억했다. 그렇게 받은 결과로 누구에게 어떤 상을 주는 것이 좋을지 심사숙고해 결정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연말 시상식 분위기가 나게 꾸미고 싶어 미리 캔버스에 올라온 여러 템플릿을 살펴보고 시상식처럼 편집해  게시판에 ‘은하반 대상포토존을 만들었다.  게시판은하반 사진들로 꾸몄고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입구는 시집 전시회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꾸몄다. 들어오자마자 전시회 안내판이 크게 보이도록 두고 정식 출간되어 받은 따끈따끈한 은하반 시집지금껏  500편의 시와 마지막 한마디,    앙케이트 조사 결과두었다. 전시회를 관람하러  사람도 직접 참여할  있도록 전시회 입장권과 방명록도 만들어 두었고, 들어오는 길목에 레드카펫을 깔아 카펫을 따라 입장하도록 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교실  앞에도 깔았다.



  아이들은 전시회장을 뒤로한 채 모두 앞에 모여 앉아 연말 시상식을 즐겼다. 1, 2학기 회장이 투 MC를 맡아주었다. 이 아이들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진행 순서와 멘트 예시를 주고 함께 고민하며 큐시트를 만들었고 당일 리허설도 해본 뒤 실제 시상식의 사회를 진행했다. 듣기만 해도 영광스러운 오스카 시상식 bgm으로 성대한 시작을 열었다. 상을 소개할 때마다 어떤 상인지 화면에 띄워놓곤 두구두구 효과음을 넣어 분위기를 고조시키다 상을 수여해 제법 시상식답게 진행했다. 자기 이름이 언제 호명될까 기대하고 혹시 이 상이 내 상일까? 이 상은 누구의 상일까? 설레는 모습들이었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과 상 이름이 박힌 트로피와 부상을 들고 기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트로피에 리본 하나씩 묶고 금색 라벨지에 인쇄해 붙이던 준비 과정은 모두 잊고 나도 같이 기뻤다. 초대했던 분들뿐 아니라 옆 반 선생님과 반 친구들도 전시회를 관람하러 왔다. 덕분에 사람들로 가득 차 제법 전시회 느낌이 났다. 비치해둔 방명록에 남겨주신 감상평을 읽으며 같이 뿌듯해했고 주시고 가신 사탕 꽃다발을 들고 시상식 포토존에서 한 장, 자기 작품 앞에서 한 장을 모두 찍고는 단체 사진도 같이 찍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시집을 하나씩 받아 들고 맨 첫 장에 멋진 사인을 그려 넣으며 모두 작가가 되었음을 만끽했다. 시집, 트로피, 부상, 전시회 시 작품, 시 20편, 기념사진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며 엄마, 아빠에게 자랑할 거다. 친구에게 보여줄 거다. 잔뜩 들떴다. 가득 찬 가방과 손만큼 마음도 만족감, 행복감으로 가득 넉넉해졌을까? 전시회가 끝나고 뒷정리하며 모두 함께 오늘을 기념했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검색하기만 해도 우리 시집이 12월 신작으로 뜬다. 전문 서점을 비롯해 여섯 군데서 우리 시집 “어쩌면 우린, 모두 빛나는 별일지도 몰라” 가 판매되기 시작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 함께 고민하고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고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걸 느꼈다. 우린 함께 벅차올랐다. 덕분에 2022년이 꽉 채워진 기분이다. 잊지 못할 2022년이었다. 올해를 잊지 않고 싶다. 이 충만한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해야지.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