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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pr 28. 2024

그가 점심에 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어떤 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도 하는데..

"사랑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


동료와의 식사 중, 남자는 아내에 대한 감정을 위와 같이 표현합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퇴근 후 집에 들어왔고, 아내 역시 여느 날처럼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여느 날 같지 않게 가출을 해버립니다. 드라마(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링크만 걸고 제목 언급은 하지 않을게요)에서는 마침 아내가 같은 식당에서 다른 무리와 식사 중이었고, 남편은 그걸 몰랐고, 그녀는 그의 말을 들었고, 그게 스토리에 중요하지만.. 저는..


그가 점심에 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날 그렇게 급발진하며 집을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다른 날 나갈 수도 있겠지만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친구들과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충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오고 손이 움직입니다(!). 조금 덜 조심한 표현들, 계산하지 않고 나온 표현들, 맥락에 딱히 맞지도 않는 표현들, 지금 내 생각을 반영하는 게 맞나 싶은 갸우뚱한 표현들 등등. 이런 표현들은 자주, 오랜 시간에 걸쳐 감정과 생각을 건드리고 새로운 말을 불러냅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 단어였다가, 비슷한 표현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문장이 되었다가 문단이, 글이 됩니다. 물론 전혀 진도를 뺄 수 없는 표현들도 있고, 며칠 뒤에는 같은 표현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글이든 말이든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 글을 다시 읽으면 그때의 나와 훨씬 더 많이 연결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무례하지 않는 선에서 잡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인물이 저 문장을 내뱉으면서 자기도 자기가 아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요. 재미는 없지만 문제도 없는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불만을 꽁꽁 숨겨오던 인물이 저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식사하고, 대화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숨 막혀하는 나를 알아차렸고, 더 이상 그런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충동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한 부분이고 훨씬 더 많은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큰 게 바로 사랑이라는 단순한 공식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저 문장 안의 사랑이라는 표현에는 체념이, 좋아한다는 표현에는 조금 더 욕망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감정탐구생활에 '그동안 감정을 잘 몰랐다'라고 몇 번 썼는데요, 몰랐던 모든 감정들이 억눌렀던 게 아닌, 드러내서 해소가 필요한 수준의 역치에 도달하지 않았던 것들도 많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글, 말 등을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용하다 보니 이런저런 전에 잘 쓰지 않던 표현 속 감정을 발굴하게(!) 되고, 그 감정이 뭔지 알아차리려고 애쓰게 됩니다. 그 감정들이 각자의 역치를 설정하려고 여러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들을 지금까지의 감정 범위 안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보니 조금 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의 요가 선생님은 종종 '근육이 깊게 늘어나면 나도 모르는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종종 눈물이 터지기도 하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니 당황하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초반의 저는 요가분위기를 만드는 멋진 멘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온전히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을 때,  몸과 마음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같은 자극에 다른 반응을 하기도 하고 그 역시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니지만요. 오늘 내가 경험하는 것이 오늘의 나에게 아주 중요하지만 오늘이라는 순간에 너무 매몰되거나 무겁게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알아갑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어떻게 변신할지 모르니까요. 어제는 좋았다가 오늘은 싫다는 손바닥을 뒤집는 결과의 변덕보다는, 어제 좋았던 감정과 오늘 싫은 감정이 어떤 흐름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를 추천해 준 친구가 요즘 '나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충 때우거나 미루지 않고 충분하게 고민해서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 '무리해서 일하지 않고 충분히 자려고 한다', '작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해결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등등 요즘 주요하게 경험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가족을 대할 때에도 그 전과 다르게 감정적인 여유가 생겼는데, 상대의 경험이 나 때문이라던가 나의 경험이 너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는 말도 포함하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이 나의 원인과 결과가 되면 안 된다, 나 역시 타인의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인과관계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 계속 맴돕니다. 잘 먹고 잘 자는, 너무 당연하면서도 잘하는 사람 거의 없는 것으로 나를 돌본다는 것도, 그게 가장 가까운 관계와 부드러운 거리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친구는 이 과정이 '세탁기에서 나온 쿠션을 팡팡 쳐서 솜을 살리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얘기했는데요, 서로의 날카로움에 찔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상대에게 나를 공격하지 말라며 선제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 쿠션을 먼저 팡팡 치는 과정인가 봅니다.


나와 내 곁의 사람이 여느 때와 같지 않게 변할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는 서로의 관찰자일 수밖에 없겠지요. 드라마의 아내가 그랬듯 자기가 뭘 잘못했을까 매몰되지 않고(자기를 원인으로 두지 않고), 누군가가 없어도 또 다른 관계들 속에서 나의 삶을 만들어가면(그가 나의 결과가 되지 않도록) 내가 중심에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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