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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닉사라 Oct 17. 2023

햇빛에서 배우는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

 폴란드의 가을과 겨울에 대하여 

9월 말까지만 해도 꽤나 더웠던 날씨가 

10월에 들어서니 갑자기 추워졌다.

대낮 바깥 기온이 10도 안팎으로 뚝 떨어지더니, 

아침저녁으로는 초겨울 날씨처럼 무척 쌀쌀해졌다.


가을에 입으려고 손질해 둔 트렌치코트는 다시 옷장에 넣고

생각지도 못한 겨울코트를 찾아 꺼내 입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중앙난방도 가동이 시작되었다.

10월 말까지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당분간 추운 날씨가 계속될 것 같다.

'이러다가 바로 겨울로 껑충 바뀌는 건 아닌지?'


확실히 예년보다 가을의 시간적인 폭이 훨씬 줄어든 듯하다.

매년 지금 같은 초가을쯤이면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형형색색 단풍 구경하며 숲이나 공원에서 산책을 즐길 때이다.

 

올해는 하루종일 화창했던 날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하고

햇빛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느샌가 금방 구름 가득 낀 흐린 날로 바뀐다.


그 찬란했던 여름도 지나가고,

그 찬란한 계절, 오! 여름 (brunch.co.kr)

'아~ 이제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폴란드의 늦가을 무렵을 시작으로 겨울을 좋아한다.

아쉬움이 감돌면서도 곧 겨울시즌이 시작됨에 대한

반가움이 교차하는 이유는

그 겨울 나름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늦가을과 겨울의 가장 큰 특징은,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계절이라는 점이다.

하루종일 해가 안 보이는 어두침침한 날도 허다하게 자주 있고

오후 3시가 넘으면 벌써 날이 저문다.    

 

서머타임이 해제될 무렵인 10월 중하순부터 시작해

겨울 내내, 그리고 이듬해 초봄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연간 6개월 넘게

이런 날들이 자주 있다고 보면 된다. 


햇빛이 부족한 탓에

폴란드와 같은 중유럽과 북유럽 쪽 지역에는

겨울에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 

심지어는 건강상태까지 이러한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폴란드에서는 날씨가 생활의 중심 이슈이다.

날씨가 사람들 사이의 화제로 자주 떠오른다.

나도 폴란드에 와서 살면서부터 날씨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아침 기상 후 첫 루틴 중의 하나는 일기예보를 살펴보는 것이다.




산책하기 딱 좋은 따뜻한 햇살의 초가을 오후. 작년 2022년에 인근 공원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


신기한 것은, 겨울에 바깥 기온이 아무리 낮아도

햇빛이 드는 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밖에 나가 햇빛을 쬐며 거리를 활보한다는 점이다. 


폴란드에 갓 도착했을 때, 추운 초겨울 무렵이었다. 

커피숍 안에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굳이 바깥쪽 테이블 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폴란드인들을 보고 의아해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괜히 궁상을 떠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생각해 보면, 햇빛을 맘껏 즐기려는 이유였던 것이다.

언제 또 찾아올지도 모르는 이 찰나의 순간을 말이다.

(당시 내 공감능력의 절대적 부족이 탄로난 일화 ^^)


울긋불긋 가을기운을 돋우는 자연의 색깔




햇빛이 드는 겨울 어느 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타인이라도

가벼운 눈웃음과 미소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유쾌한 분위기에 이끌려, 

자연스레 가벼운 대화를 같이 나누기도 한다. 


햇빛이 주는 따스함과 온화함을,

그 순간의 행복감을 같이 누리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듯 말이다.


나 역시 이곳 생활에 적응하면서

이곳 기후의 영향을 어쩔 수 없이 받고 있음을 실감한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극과 극에서 요동을 치기도 한다. 

특히 늦가을 무렵이면, 햇빛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때가 있다!


이제는 나도 여느 폴란드인들처럼 화창한 날이 되면

도중에 하던 일이 있어도 다 제쳐두고

밖에 나가 햇볕을 쬐려고 한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 하더라도 결단코 밖으로 나간다.

정말, 짧은 산책일지라도 그 효력은 대단해서,

몸과 마음이 엄청 상쾌해진다!




숲 속에 난 이름 모를 버섯가족. 2020년 팬데믹이 한참이던 때 가을 산책 중 찍은 사진. 



이곳 폴란드에서 햇빛의 소중한 가치와 고마움알게 되었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햇빛이 주는 잔잔한 행복감을

진정으로 만끽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결핍과 부족이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매일매일 나의 삶이 펼쳐지는 이 곳. 

상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폴란드인들이 보내는 공감의 미소가 이해가 되고,

나도 이제는 편안하게 미소로 화답하곤 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엔 도브르! (Dzien dobry!)

- 폴란드의 기본 인사말로 '안녕하세요'를 의미함 -

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 늦가을 길목에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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