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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Oct 20. 2024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

2024년 11월이 얼마 안 남은 시점, 드디어 가죽 재킷을 입을 수 있음


D와는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났다. 회사에서 D가 알음알음 사주를 봐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D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기보다 내 사주가 너무 궁금했다.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는 지극한 내향형 인간인 나는 용기 내어 그녀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당차고 야무진 성격인 그녀는 흔쾌히 나의 커피챗에 응해 주었고 나는 회사 라운지에서 사주를 보게 되었다. 약식일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꼼꼼하게 내 생년월일시를 적어가며 나의 미래를 점쳐 주었다. 가까이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나는 마냥 신기했다. 모든 사주 풀이를 마치고 D는 내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이직운을 물었다.


“저 혹시 제가 언제 이직하게 될까요?”
“아! 네 11월쯤에 이동수가 있네요. 10월부터 바빠지실 것 같아요. 이직 준비하시느라.”


11월이 되었고 나는 다음 직장으로 이직했다. 이직하고 몇 개월간 회사와 너무 맞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냈다. 온몸에 염증이 났고 모든 일에 싫증이 났다. 비관적인 들을 습관적으로 내뱉는 내가 너무 싫어질 때쯤, 머리에 스치듯 몇 개월 전 사주를 본 생각이 났다. ‘생각해 보니 그분이 내 이직 시기를 맞췄네? 회사운을 한번 더 물어볼까?” 이직하기 전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었던 그녀에게 다시 한번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만난 D는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압구정의 한 유명한 타로집에서 틈틈이 타로를 배워 이제 D는 타로 마스터였다. 사주와 타로의 만남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서양의 만남인가. 타로 카드를 멋있게 펼치는 D를 왜인지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농담과 덕담이 오가면서 우리는 한창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사주를 거의 다 볼 때쯤 서로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근데 나 이 회사랑 왜 이렇게 안 맞지?”
“이 지역이 좀 그래. 언니는 불이 많은 데랑 안 맞아. 여기는 불바다야.”


D의 멋진 타로 카드


끄덕끄덕. 그렇구나. 그날 나는 일기에 ‘불바다’라고 적고 빨간색으로 별표를 그려 넣었다. 불바다는 도대체 어떻게 건너야 하나. 불바다에서는 어떻게 버텨야 하나. 결국 나는 불바다를 견디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D와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한 사람이 야근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면 무한 ‘ㅋㅋㅋ’을 눌러대며 서로의 노예 생활을 응원했다. 새 직장은 물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적응도 별 탈 없이 흘러갔다. 새 직장에 적응한 한 달 차에 나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피터팬의 부동산 구하기, 당근 부동산 등을 들락거리며 나의 다음을 이을 세입자를 구하고 있었다. 다른 이사 준비는 아주 순조로웠다.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빼면. 그때 당시에 나는 내 보증금을 찾고자 과자와 커피를 사들고 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읍소하던 중이었다. 밤이면 퀭한 눈으로 ‘분리형 원룸, 역세권 : 세입자 찾습니다.’는 글을 이곳저곳 복사 붙여 넣기 하며 다녔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한다는 D에게 ‘ㅠㅠㅠ’를 50개쯤 넣어 우는 소리를 했다.


-D야 나 요즘 이사 때문에 죽을 것 같아… 타로 한 번만 봐줘…

-언니, 이번 달이 이번 연도 중에 제일 힘들어. 다다음달도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이번달만큼은 아니야...- -그래? 얼마나 잘되려고 이러는 거지…

- 이사 간 집이 언니랑 잘 맞아… 다 잘 될 거야.


D의 말이 적중했던 걸까, 나는 팝업과 카페의 고장인 뚝섬을 사랑하게 됐다. 한 껏 들뜬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로 구부정하게 걸으며 타투한 팔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곳. 힙합 음악이 나오는 블루리본 커피 맛집 옆에 기사 식당이 자리하는 완벽한 코스를 자랑하는 곳. 내게는 뚝섬이 뉴욕이자 도쿄이자 파리가 됐다. D와 나는 아직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는다. 


-언니 잘 지내?

-그럼! 근데 나 퇴사하고 싶어.

-나도.


이런 부질없는 말들로 서로의 마음을 부여잡으며. 한 달만 더, 하루만 더 한 치 앞을 모르는 이 사회에서 버텨보자고 다짐한다. 가끔 너무 힘든 날이면 D에게 전화를 걸어 미래를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나는 몇 번의 사주와 몇 번의 타로 끝에 기특한 마음을 먹었다.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보다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을 먹기로. 그렇게 보고 싶었던 미래에도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미래에 다가올 일을 불안해하기보다는 현재에 발붙이고 살기로 말이다. 먼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큰 행복보다 현재의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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