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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 아티스트 Jun 30. 2023

1년차 프리랜서가 된 나

직장생활 28년 후의 새로운 도전.  그것도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를 다니는 8여 년 간 나는 수도 없이 많은 프리랜서들을 만났다.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소개인사를 하는 그네들에게 나는 한국적인 선입견을 감추지 못하고 도대체 왜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하는지 조곤조곤 물어보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곳 프리랜서는 시간에, 조직 문화에 덜 구속된다는 점 이외에도 금전적으로 전혀 꿀리지 않는 처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이곳의 프리랜서는, 일종의 임시직 회사원 같다. 즉 특정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는 기간 동안은 직원처럼 매일 근무를 한다.  내가 본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6개월, 1년 또는 2년, 조직 안에서 정직원들과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곤 했다.  정직원을 해고하기가 어려운 이곳의 노동법 때문에 쉽게 들이고 쉽게 내보낼 수 있는 고급 인력이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연히 동경하던 네덜란드 프리랜싱.  드디어 시도해 볼 기회가 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간의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구직 시장에 들어간 나는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이밀고 있었지만, 막상 면접까지 가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기회들을 밀쳐내고 있는 거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함으로써 면접이 어그러지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 생각을 해보면, 내가  그 자리에 가는 것을 썩 원하지 않고 있는 거였다. 


그러던 차에 5개월짜리 프로젝트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열심히 지인들 사이에 뿌려 놓은 '김수진 한가하니 갖다 쓰세요' 중 하나가 먹혀 들어간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 브랜드의 네덜란드 지사였다.  톱 매니지먼트 3-4명은 한국분들이지만 마케팅 부서에는 한국인이 없는 조직.  게다가 할 일은 경험도 없는 대형 소비자 이벤트 총괄 진행.  나는 그럼에도 고민도 않고 그 일을 덥석 물었다.  왜 그랬냐고?  한국브랜드라는 반가움 및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기 프로젝트.  생각보다 조건은 못 미쳤지만, 해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나를 푸시했다.  이렇게 나의 프리랜서 입문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5개월짜리의 그 첫 일, 그 후 6주짜리 데스크 리서치 프로젝트, 그리고는 3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 이렇게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데스크 리서치 일은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가 10년 만에 갑자기 연락을 해와서 맡게 되었다.  최근 3개월짜리 프로젝트의 경우는 첫 번째 회사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니, 아마도 처음에 잘해 냈다는 뜻이다.  다시 나를 찾아주는 고객.  그것은 프리랜서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이렇게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초짜 프리랜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금껏 느끼고 배운 몇 가지 감상과 기억할 점들을 공유해 본다. 분명 말해 두지만, 초보의 기록이다. 


1. 일이 들어오면 일단 잡고 본다. 

프리랜서.  언제 어떤 일이 들어올지, 반면 언제 일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을지 전혀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무조건 콜일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 한다. 쉼 없이 달려온 피로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사뭇 느껴져도, 당장 나를 찾는 이 있다면, 거절할 배짱이 그 누구도 없지 않을까.  현명한 거절, 또는 페이스 조절에 대한 고민과 후회가 조만간 밀려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언정, 초보 프래랜서의 운명은 왠만하면 무조건 OK 인 것이다. 


2. 가격 책정.  나, 얼마? 

나의 '단가'를 잘 매겨놔야 한다. 일단 나와 동급의 다른 프리랜서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당 fee를 책정하는지 꼼꼼히 알아보라.  처음으로 내 시간과 아웃풋에 가격을 매기는 경험은 스스로를 상당히 쫄개한다.  하지만 내 미미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싸구려보다는 비싼 게 바람직하다.  파리 날리는 장사의 돌파구로 박리다매도 있지만, 프리미엄 전략도 있다.  이왕 전략을 써야 한다면, 고급화 전략을 시도해 볼 것.  비싼 가격을 주고서 누군가가 나를 선택했다면 그에 부응하기 위해 더 정성을 쏟고 철저하게 된다.  제 값 받고, 프로젝트 끝까지 기분 좋게 프로다운 자세로 임하라. 


3. 끝이 보이는 터널 

프리랜서의 프리덤(freedom)은 내가 그 조직에 완전히 속해있지 않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시작과 끝, 업무의 명확함 및 책임소재의 분명함 - 이런 여건들 때문에 자신도, 조직도, 함께 일할 팀원들도 냉철하게 보게 되고, 감정 소모 없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짧은 과정임을 잘 알기에 고도로 집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끝이 보이는 터널이기 때문에 그 안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리딩해 나갈 힘이 생긴다.  기업들이 프리랜서가 필요한 이유는 단지 특화된 스킬이나 경험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프리랜서만의 여유와 자신감, 객관성과 통찰력이 조직에 유익한 영향력을 주게 되는 것이다. 


4. 너무 다른 수입 (income) 관리

월급이란 형태의 수입밖에 모르고 살 던 사람한테, 프리랜서 활동으로 인한 수입을 관리한다는 것은 참 난해하고 복잡한 일이다.  수입 자체가 들쑥 날쑥한건 당연하고, 거기에 분기별 부가세, 연말 소득세도 스스로 준비하고 예측해야 한다.  사실 난 지금도 작년 소득세 정리한 결과로 얼마의 추가 세금 폭탄을 맞을지 전혀 예상을 못한 채로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원천징수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남들 배부터 채워주는 체계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회사의 이윤, 정부의 세금, 의료 보험 및 연금 공단까지 그들의 몫을 챙긴 후에야 월급쟁이는 마지막에 잔여를 받는 셈이니까.  세전의 금액이 잠시나마 내 통장에 머무르는 것을 목격해보면, 우리가 뜯기는(?) 돈이 얼만지 실감할 수 있다.  하여간 내 통장 안에서의 돈의 흐름이 상당히 과격해지고 불규칙해지는 게 이 직종의 특징이다.  순간의 계산 착오나 준비 미비로 펑크도 나고 심지어 부도도 날 수 있으니 그만큼 캐시 플로의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5. 새로운 멘탈 관리의 시작

일과 일 사이의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쌓인 피로를 풀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잠시, 곧 초조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프리랜서라는 삶의 방식 자체가 괴로울 수 밖에 없다.  프리랜서 생활을 즐기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무 일이 없을 때, 때때로 불안과 패닉이 몰려와도, 그걸 밀쳐내고, 최대한 자유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배우고 준비를 해 놔야 하는 기간도 이 기다림의 시간이다.  결국 단단한 멘탈 - 그게 필요하다.  내가 제공할 가치에 대한 자신감, 세상에는 수많은 일거리와 기회가 있다는 확신, 쉬지 않고 배우고 성장해 나갈 나에 대한 기대 등 말이다.



이제 또 한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음 주부터 나는 딱히 계획 없는 휴지기를 갖게 된다.  여름휴가철이 다가온다는 핑계로 적극적으로 다음 일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3주 후에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셔서 한 달 계실 예정이고, 함께 여행도 할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원일 하면서, 꽃꽂이 웍샵도 많이 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부터는 오래 손 놓고 있던 브런치 글도 시작했다. 내가 애정하는 활동들로 이렇게 내 일상을 다시 채워 넣고 있구나.  참, 더치 공부와 헬스클럽도 다시 재개해야지.. 써 놓고 보니 한가할 틈이 없다.  


가을부턴 또 뭘 먹고 사나 - 고민이 조만간 시작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이 소중한 현재를, 자유를 즐길 것이다. 


곳간에 한 철 양식 채워 둔 프리랜서는 마음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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