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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 아티스트 Jun 23. 2023

오십, 뭘 기대했는데?

인생 최고의 불안정기를 맞은 상념

나만 그런 가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 가고, 그 안에서 늘 허둥지둥하고 삽니다.  스물에서 서른 넘어가고, 서른에서 마흔 넘어갈 땐 그래도 뭐 삼십 대는 이럴 거야, 사십 대엔 이런 게 힘들데, 등의 생각이 있었는데, 오십을 앞둔 몇 해 동안 전혀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비슷한 날들의 연장선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을까요?  그러다 보니 오십을 맞던 일 년 전도 그렇고 쉰 하나가 코 앞인 지금도, 그저 쇼크의 연속이고 인생은 웜업이 없다는 생각 밖에 안 드네요. 


오십 정도면 인생이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고 삶의 스릴과 박진감도 한풀 꺾여 살짝 지루한 일상이 펼쳐 질거라 짐작을 했나 봐요. 이 나이에 죽기 살기 열심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던가, 예기치 못한 험한 모험과 도전이 있을 거라던가 뭐 이런 상상은 솔직히 못했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십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나죠.  아마 그 시작은 우리 몸에서부터이고요.  호르몬 밸런스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우리의 몸과 정신 상태는 스스로도 적응하기 힘들 만큼 이전과는 사뭇 달라집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자녀가 한창 청소년기거나, 서서히 성인기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감정 소모도, 교육비도 큰 출혈이 생기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직장 혹은 커리어적으론 만성적 불안감을 경험하기 시작하지요. 저처럼 20년 이상 회사 생활을 했다면, '만년 부장'의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힘겹게 임원 자리에 올랐거나 했을 텐데요, 한 해 한 해가 줄타기를 하는 마음 조이는 조직생활의 날들인 건 마찬가지죠. 


이렇게 삶의 모든 구석구석이 변화와 긴장감으로 팽팽해지다 보면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도 하고, 때론 가족관계가 삐걱 거리기도 합니다. 막연히 상상했던 평온과 안정은 커녕, 큰 위기감이 올 수가 있어요. 제가 올해를 맞으며 느낀 첫인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가족 하나하나가 큰 변화 앞에서 힘들어한다는 것. 또 이로 인한 부작용의 증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요.


우리 집의 경우는 저와 10살 차이가 나서 60대를 맞이한 저의 배우자에게서 가장 먼저 조짐이 왔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모두 쇠약해져서 한국으로 요양 생활을 하러 지난 겨울에 귀국했고 그러다 보니 저는 현실적으로 네덜란드에서 싱글 워킹맘이 되었지요. 그와 동시에 첫째 아이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주변의 십 대 또래들보다 훨씬 고된 사춘기를 맞고 있어요. 우울증이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아픈 사람을 늘 케어한다는 게 부모로서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경험하고 좌충우돌하는 날들이 반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둘째는 의심했던 ADHD 가 확정으로 판명이 되어 그 아이만의 싸움과 적응을 하느라 역시 쉽지만은 않은 날들이지요. 작년에 대기업 생활을 정리한 저는, 프리랜서로 단기 프로젝트와 주말 꽃집 일을 동시에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이런 시기에 누구 하나는 집안의 체력짱, 멘탈짱이어야 하겠죠?  보통은 별 선택의 여지 없이 그 역할은 엄마에게 돌아오고요. 스스로도 이 시기를 잘 적응하고 성공해 낼 것을 기대하고 있긴 한데 쉰한 살 저의 몸과 마음은 여기 저기 자꾸 잔고장이 납니다.  '잘 하고 있긴 한데, 조심해라.  좀 더 챙겨야 해..'  라고 말하면서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제 고정관념 속 오십 대의 스크립트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배웠던 기억이 요즘 자주 나요. 아이들만의 질풍노도가 아니라 부모로서, 50대에 입문한 성인으로서도 너무나 예상 못한 질풍노도의 날들이라서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오십 대 초반도 돌아보게 되요. 우리 엄마의 가장 힘들고 아팠던 해도 엄마가 쉰 하나 되던 해였어요. 그해 동생이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났죠. 제 솔메이트인 여동생을 잃은 제 슬픔에 빠져 그때의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별로 생각하지 못했었는데요... 그렇게 젊으셨었나, 새삼 놀랍기도 하고요. 


꽤 서프라이즈 투성이의 삶이었는데도 아직도 어떤 일이 닥치면 복부에 잽을 맞은 듯 숨은 턱 막히고 영혼은 멍투성이가 되어 버립니다.  고생은 아직 안 끝났다, 이거겠죠.  (영원히 안 끝날 조짐입니다)  아직 할만할 때 더 많이 경험하고 그만큼 현명해 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놈의 체력과 능력, 정신력이 아직 이 정도 남아 있음에 감사하면서요. 


오십엔요, 정말 슈퍼맨의 체력과 이순신 장군의 정신력, 그리고 꽤 묵직한 지갑이 반드시 필요하더라구요. 그래야 삶이 던지는 지진과 쓰나미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삶의 지각은 늘 변동하는 불안정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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