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너비 아티스트 Aug 30. 2023

기분 다스리는 법

0.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은 길고 어두운 겨울로 악명이 높다. 여기서 자란 현지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름 끝자락이 되면 곧 다가올 축축, 스산, 어두운 계절에 지레 몸서리(!)를 친다. 기분이 침체되고 즐길 아웃도어 활동도 줄어들어 우울해진단다. 내가 이곳에 온다고 했을 때, 발령 나서 이곳에 왔다가 가족 중 우울 증세를 보여 귀국해야 했던 케이스 이야기를 지인들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함께 저녁을 먹은 동생 부부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우울감 이야기가 나왔다. 역시 또 북유럽 이야기인데, 우울증 약 복용률이 세계적으로 높단다. 덧붙이는 이야기는 이곳의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우울감을 방치하지 않고 약으로 적극 조절하는 것이란다.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에게 약으로 이를 돕는 건 당연하니까. 


뭔가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기분과 감정의 조절이라. 나는 내 기분과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왔지?  이런 걸 딱히 배웠던가? 이건 어쩜 행복한 생활, 아니 생존을 위해 너무 중요한 삶의 스킬일지도 모르는데!


1.

기분이 썩 좋기란 쉽지 않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처럼 하루 중 여기서 30초, 저기서 50초 잠깐씩 행복한 기분이 스쳐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유머로 2-3분 정도 유쾌하게 웃기도 한다. 바쁜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의 하이라이트가 있는 하루는 나쁘지 않은 날이다. 퇴근 후, 재미난 이벤트나 데이트라도 있는 날이라면 그날의 기분의 색깔은 좀 다를 것이다. 왠지 덜 피곤하고, 회사에서도 유난히 밝고 들떠있겠지. 기대되는 미래의 순간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현재의 기분의 칼라 톤을 지정한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의 기분은 어떠한가. 기상부터 기분이 상쾌한 날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종종 잠이 부족하고 숙면을 못해서 찌푸둥한 상태로 일어나 피곤함을 호소할 겨를도 없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분당에서 강남까지의 출근길이 떠오른다. 한 시간 이내로 전투력 끌어올리고 눈빛 초롱초롱하게 회사로 입성해야 하는데 내 기분은 아직 새벽 4시일 때. 그러면 나는 무드를 전환시켜 줄 '으쌰으쌰 음악 리스트'를 큰 볼륨으로 들으며 기분을 가다듬었다. 차 안에서 Britney Spears, Madonna, Alanis Morissette의 투지와 파이팅 넘치는 노래들에 감정 이입을 시켜 듣고는 내가 원하는 기분으로 무장하는거다. 음악은 아침부터 지쳐있는 내 기분을 위한 커피 같은 거였다. 


나중에 이 말을 음악 마니아 선배한테 했더니, 음악을 그런 기분 전환의 도구로 쓰냐며 핀잔을 주는 거다. But why not? 기분이 좋아지면 일의 퀄리티, 협업 능력 그리고 행복감도 함께 좋아지는데 음악이건 미술이건 수단을 가릴 이유가 없었다. 기분 좋아지라고 세상에 널린 것들을 왜 마다하는가. 참고로 선배는 기분 전환으로 주로 줄담배를 폈다. 


정말 기분이 더러울 때도 있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겪은 경우가 그랬다. 눈앞이 하얗게 화가 난 그날, 나는 가장 친하고 술 잘 먹는 친구들을 SOS로 불러냈고, 빠지지 않고 나와준 아이들은 밤새 억울해하고 분개해 주며 몸 바쳐 나를 위로해 주었다. 솔메이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무너진 내 기분을 200% 힐링받은 케이스다. 


2.

이유를 알 수 없이 한 며칠, 마음이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가? 내 경우, 2-3일 이유 없이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으며 예민해진 내 모습을 문득 발견하면, 나는 일기장을 펼친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침대 머리맡에 앉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나의 불안감의 출처를 찾아본다. 생각의 흐름을 글로 기록하면 좀 더 잘 정리된다는 건 브런치 작가분들은 잘 아시리라. 


추리라는 게 별거 없다. '최근에 회사에서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던가. 아님 지난번 엄마랑 전화하면서 들은 그 이야기 때문인가. 아니면, 요즘 이유 없이 자꾸 관절이 아픈 게 마음에 걸리는 건가? 혹시, 다음 달 세금 폭탄 맞을 게 걱정돼서 그런 건가?  아, 그거네. 내가 요즘 우리 집 재정 상태 걱정이 많이 되나 보네'. 보통 한두 시간이면 무거워진 기분의 원인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며 마음이 50% 가벼워진다. 문제를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첫 단추이다. 


물론, 문제점을 찾고 나면 해결을 해야 한다. 해결의 핵심은 찾아낸 문제의 직면과 행동이다. 위의 몇 가지 예를 다시 생각해 보자. 만약 엄마가 해준 어떤 조언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건 엄마 말이 맞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인정하기 싫고, 행동에 옮기기는 더 싫어서 이리저리 미루느라 기분이 갈수록 찝찝해지는 거다. 내가 틀렸을 땐, 틀린 걸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게 좋다. 쓸데없는 에고(ego)는 기분학적 관점에선 어리석고 해로운 성질의 것이다. 


몸이 어딘가 예전 같지 않은데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아 스멀스멀 불안한 건 잘 알지도 모르면서 어두운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빨리 의사를 만나 내가 실제 어디가 아프긴 한 건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정확한 사실확인을 해야 기분을 안정시킬 수 있다.


우리의 기분은 어쩌면, 현실의 수많은 문제 그 자체보다, 그걸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따라서 이해하거나, 해결하지도 않는 나의 게으름과 두려움 (=게려움) 때문에 더 고통받는 게 아닐까. 대학생활 내내, 해야 할 공부를 모른 척 한쪽에 밀어 두고 매일 딴짓하며 도망가려 무단히 애를 썼던 적이 있다. 몸은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고 있어도 마음의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던 그때. 그냥 직시하고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미루고 또 미루며 무겁고 어중간한 기분을 스스로 만들어 안고 산 셈이다. 


이러니, 우린 의식적으로라도 쌓아 둔 걱정이나 찜찜함을 작정하고 처리해야 한다. 계절마다 '기분 대청소'를 하면 어떨까. 불길한 기분의 원인을 찾고, 하나씩 해결책을 열거하며 기분의 불필요한 때를 깨끗이 닦아주는 것.


3.

코로나 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갑자기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그 갑갑함이 얼마나 지속될지 기약 없어서 더 힘들었던 우리의 기분들. 얼마 전 엄마랑 이야기를 했는데, 70 중순이셨던 엄마는 그때,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화장을 하셨단다. 아무 갈 데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그렇게 집에만 있는 게 너무 이상해서 매일 곱게 화장을 하고 하루를 지내셨다는 고백을 하셨다. 


당시 미치지 않기 위한 나의 해결책은 정원에서 땅 파고 꽃나무 심기였다. 한 2년, 허리가 휘고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노동에 올인했다. 그 집념의 잡초 제거가 내겐 마음의 평정과 흐뭇한 기분을 안겨 주는 묘약이었다. 나는 몸으로 땀을 흘려 마음의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덕분에 나의 코로나 시절의 기억은 아름답고 심지어 magical 하다고 하면 믿으실라나. 


4.

우리의 기분에 깊고 무거운 어둠을 드리우는 원인 중 하나는 후회이다. 지나간 결정들, 그로 인해 이제는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설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슴 치는 후회가 기분을 착잡하게 한다. 외면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인생의 큰 결정들의 여파는 생활 속에 매일 발현되니 말이다. 


이런 고난도의 부정적 기분은 어떻게 어르고 다루어야 하나. 모든 걸 fix 할 수 있다고 믿는 나같은 사람도, 큰 인생의 결정으로부터 기인한 후회는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그저 다시 일기장을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뭔지 생각해 볼 뿐. 성급한 의사 결정을 했던 당시의 나를 좀 더 분석도 해보고 (한번 더 합리화에 성공해보고 싶은 나), 2-3년 전과 좀 달라진 현재의 상황에서 새로이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보기도 한다. 그나마 좋았던 모멘트들을 상기해 보면서 후회감을 1% 라도 덜어낼 수 있을까 바래보기도 하고. 


말뚝처럼 박혀버린 현실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지만, 한 두 가지 후회가 된다면, 그 또한 내 삶의 흔적으로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 단지, 미래의 변화의 가능성은 열어놀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내년이나 내후년 이맘때엔 달라질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러면서 후회라는 마음의 무게로 인해 나의 감정과 기분이 짓눌리지 않도록 내 마음을 돌봐야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5.

기분 다스리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오늘, 지금의 기분은 과거의 너무나 많은 일들과 얽혀있고, 미래의 내 마음의 건강과도 직결되니까. 


기분의 경영학은 어쩜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엄마 말고 그냥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