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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 아티스트 Sep 13. 2022

소원을 말해봐 II

나의 두 번째 커리어에 대하여

오래전 어느 날, 친한 클라이언트 L씨와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인이고 나보다 세 살 많은 마케터였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은 셈이니, 그도 첨엔 웃었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자신도 아직 잘 모른다고 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토픽이었다. 둘 다 나이 마흔 언저리에 회사 생활도 꽤 즐겁게 하고 있지만 현재의 일이 최종 종착역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그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꼭 이 질문을 했다. 그도, 나도, 늘 대답은 '아직 모름'이었지만, '아직' 이란 단어가 유의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중요한 그 무엇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거니까. 


그러다가 시간은 훌쩍 2020년대로 흘러, 네덜란드 온 지 7년이 되던 해에 코로나가 오고 세상은 별별 희한한 일을 다 겪게 되었다. 나는 재택근무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고 이를 틈타 미루었던 정원 관리를 하고 새로이 꽃을 심기 시작했다. 세상이 전염병으로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나는 꽃에 관한 책을 사보고 온라인 강좌를 들으며 풀꽃과 민달팽이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팬데믹을 꽃에 빠져 지내던 중, 새해도 여전히 컴퓨터 부여잡고 집과 슈퍼마켓만 무한 왕복하는 생활이 계속될 거란 사실이 확실시되었다. 여행도 못 가고 재미난 광고 프로덕션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이 참에 우리끼리 재미난 거 해보자!라고 시작한 게 온라인 꽃집 개업이었다. 그때가 2021년 초였다. SNS에 가게 계정을 올려놓고 보니 매일 새로이 비주얼과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세상과 나누어야 했다. 난 매일 꽃을 심고, 꽃꽂이와 촬영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매달리거나, 온라인을 통해 뭐라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점점 농부(!)겸 플로리스트가 되어 갔다.


꽃꽂이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2022년 초, 회사를 그만둔 후 더 많은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먼저 웹사이트를 론칭해야 했다. SNS 에만 의존하던 꽃집 홍보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해 홈페이지가 필요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 혼자 공부하며 홈페이지 만들기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나도 놀란 상상 이상의 자급자족력이었다. 다음은 도예를 배워야 했다. 꽃을 예쁘게 꽂으려면 화병이 중요한데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생 초보지만 이것 역시 배워서 자급자족해보기로 했다. 


이십 년 만에 주어진 시간적, 정신적 자유를, 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배우고 연습하는 데에 아끼지 않고 썼다. 새벽에 일어나서 정원의 벌레를 잡고, 저렴하게 꽃을 사기 위해 네덜란드 전국을 헤매고, 밤엔 두어 개의 온라인 강좌를 번갈아 가며 듣고, 자기 전엔 책을 읽었다. 뜨겁게 열중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정원사에 플로리스트이고 도예 수련생이면서 사업까지 하고 있는 거였다. 아, 잠깐.. 이건 다 뭐고 난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수진아,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하는 거니? 자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답이 나한테 턱! 하고 다가왔다. 

AN ARTIST. 

에잉?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헉! 


두 달 동안 매일 10시간 들여 완성한 홈페이지.


영어로 pivot 이란 말이 있다. 컴퍼스로 원을 그리 듯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내 위치와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을 뜻한다. 나는 pivot 중이었던 것이다.


아티스트는 내가 늘 멀리서 동경하고 애정 하던 사람들이었다. 난 음악, 미술, 문학, 사진, 영화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무한 매력을 느꼈다. 이들이 나의 짝사랑이고 영감이었을지언정, 내가 감히 이들 중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아니 어쩌면 잠재의식 속에서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거의 삼십 년을 회사원으로 살던 사람이 불현듯 아티스트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내용은 지면에 공유하기가 매우 쑥스러운 이야기다. 친구가 '너는 미대에 갈걸 그랬나 봐'라고 말했듯, 미대를 안 나온 사람은 아티스트가 될 수 없지 않나라고 나도 스스로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늘 모두가 택하는 길이 아닌 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저 난 큰 소원이 생겼고,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 광고와 마케팅이 나의 첫 커리어라면 아티스트는 내가 미래에 하고자 하는 제2의 커리어가 되는 거다. 소원을 찾은 거지 이룬 건 아니지만, 파일럿이 이륙하기 전에 목적지를 비행 시스템에 입력해 두듯이 난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입력했으니, 어떤 경로로 갈까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건 대단한 발견이고 사건이다. 


그 나이에 소원이 생기면 어쩔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려나. 그런데 난 코로나와 네덜란드 덕에 오히려 일찍 나의 소원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난 코로나에 빚진 사람이고, 네덜란드가 한없이 좋아진 1인이다. 그러고 보니 L씨도 최근 본인의 광고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어쩜 그 회사를 훌륭하게 키우는 게 지금의 그의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만나 한잔 하며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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