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뒷모습이 누군가에게 목표가 되어 준 나의 달리기
요즘 혼자 운동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게을러진다기보다는 재미가 줄어들고 있는 듯.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깬 새벽부터 이불을 끌어당겨 목 아래까지 끼워 두고 꼼지락거리기를 반복하던 침대를 기어이 박차고 나섰다. 세상 어떤 것보다도 당뇨병을 무서워하는지라 오늘 아침은 조금 길게 달려보기로 마음먹고 반포대교 쪽으로 뛰었다. 830 안팎의 느린 페이스로 살살 달려서 반포대교 앞에 이르니 딱 30분이다. 최근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계속 30분 내외로 뛰었던지라 갑자기 돌아갈 일이 막막하다. 그래도 어쩌랴, 집이 저긴 걸......
잠원수영장 옆에서 한 청년을 앞질렀다. 그는 이 더위에 까만색 운동복을 아래위로 입고 까만 모자를 썼다. 심지어 운동화도 까맣다. 온몸에서 땀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어서 금방 세탁기에서 탈수도 하지 않고 꺼낸 빨래처럼 젖은 운동복들이 더 까만색으로 보였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지만 지쳐서 발바닥을 질질 끌고 있었다. 뒷바람 덕택에 첫 30분보다는 약간 빠른 800 페이스로 뛰는 내가 쉽게 그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몇 분 지났는데, 머리 뒤에서 그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뒤에 있는 듯한 소리에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그래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돌아보니 아까 그 까만 친구가 꽤나 뒤떨어진 채로 죽을힘을 다해 용을 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보다 하고 계속 앞으로 달리는데 어느덧 그 발소리가 바로 뒤까지 쫓아오더니 “감사합니다! 목표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다 못 뛰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목표까지 왔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남대교 아래에서 출발한 그는 잠수교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란히 뛰면서 몇 마디 더 나눈 그는 내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는 다리 밑 그늘에 드러누었다. 그런 모습을 빙그레 쳐다보며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세상 살면서 언제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오늘 그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 주었다. 숨을 헐떡이며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달리던 그의 모습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달리기의 새로운 의미를 깨우쳐 준 그 청년 덕분에 나머지 길은 꽤나 가볍게 달려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회색빛 하늘 낮은 구름들 사이로 밝은 햇살이 내리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