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다. 짝꿍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개미 이야기 였는데 자세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팍 터졌다.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주는 유쾌한 친구였다. 그러면서 야간자율학습도 열심히 하는 단발머리에 키가 크고 늘씬한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스며들었다. 함께 있으면 너무 재미있고 이야기도 잘 통하였다. 그러나 처음 학기를 시작할 때 같이 다니는 친구는 서로가 달랐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다른 친구와 놀다가 집에 가는 길이나 주말이면 둘이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공부 실력도 비슷해서 수학 정석을 매일 몇장씩 풀면서 서로에게 검사해주자는 아주 모범생다운 약속도 하면서 경쟁도 하면서 지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주기적으로 쉬는 시간에 만나서 매점도 가고 이야기 꽃도 피었다. 그리고 우리는 교환일기를 쓰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힘든 점과 즐거운 점, 여러가지 수다거리를 공유 하였다. 그 친구는 나를 개구리 라고 불렀다. 내가 눈이 커서 개구리 닮았다고 한다. 방학이 되면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놀기도 하였다. 친구는 방학때도 집에서 혼자 철저한 계획을 짜면서 공부를 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방학 계획을 세워 열심히 공부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독서실도 같이 다니고 가끔 공부하기 지루할 때 노래방가서 스트레스도 풀었다. 친구는 끼가 있어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신명나게 잘 불렀다. 나는 그런 친구의 흥을 같이 하며 웃고 즐거웠다. 드디어 수능이 끝나고 우리는 대학교 가기 전에 만나서 더 많이 놀았다. 꿈에 그리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가서 분위기를 느껴 보고 친구의 펜팔 친구 였던 아이가 사는 전주에 기차타고 같이 가보기도 하였다.
<친구 혜진이와 고등학교 졸업식>
우리의 즐거웠던 학창 시절, 이 친구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게 잘 보냈다. 대학교 가서는 각자의 생활을 하며 사느라 고등학교 시절 처럼 자주 얘기를 하거나 보지 못했다. 왠지 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에게 자존심도 더 세웠다. 그래도 생일은 꼭 챙겨가며 우리의 우정을 유지 하느라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이다. 점점 더 사이가 멀어짐이 느껴지고 생각하는 것들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친구 혜진이 대학교 졸업식에 축하해 주러간 영옥>
그러면서 우리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열심히 20대를 지낸 것 같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많은 회의감도 들었다. 나는 20대 부터 계속 수학과외를 하면서 지냈는데 이 일 또한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속도를 조금 늦추면서 일을 했다. 친구는 공기업에 취직이 되었는데 정직원이 되기 까지 몇개월 수습기간이 있었는데 정직원이 못되고 최종 탈락이 되어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며 모범생으로 지내왔건만 우리의 현실이 잘 만족이 안되고 아직 결혼도 못하고 아무 것도 이루어 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시기에 우리는 다시 또 서로를 끌어당겼다. 사춘기를 다시 맞이하는 느낌으로 30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친구는 책을 많이 읽었다. 읽은 책들을 공유해주면 하나 같이 읽을 만하고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우리의 심리와 마음을 잘 다독이는 치유과정을 거쳤다. 이 시기에 3년 정도는 많은 책을 사서 읽었다.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시기 였다. 남들은 본격적으로 취업하여 돈모으고 결혼준비 하는 시기에 우리는 다시 방황의 시간을 거쳤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서 얘기하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함께 펜션으로 여행도 떠나고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서 새벽 바다를 함께 보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친구는 나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많이 주고 나는 과외를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조금은 더 여유가 있었기에 만날 때 많이 사주었다.
그 친구는 그 시기에 전공과 전혀 다르게 작가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부러웠다. 나는 창의적이지 않아 그런 일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이 친구가 작가가 되어 돈 많이 버는 거 아닌가하는 질투도 해 보고 또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의 응원도 있었다. 양가 감정이었지만 공존하는 마음이었다. 3년을 그렇게 우리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남자친구가 생겨 결혼하게 되었다. 당연히 친구가 부케를 받았다. 나는 결혼하게 되어 행복하고 좋았다.
친구는 결혼 후에 우리 집에 놀러오고 간간히 연락을 이어 갔다.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내가 결혼 하고 몇달이 지난 후 밤 11시쯤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친구의 문자 였다. "영옥아 ! 내가 너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앞으로 연락을 못할 것 같아." 하는 문자 였다. 나는 너무 벙 뜨고 황당하였지만 " 알았어. 너가 원하는 대로 해 ."하고 쿨한 척 한 답문을 보내고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배신감이 들었고 너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결혼하여 남편이 있으니 자연스레 친구들과는 멀어져 갔기에 그래도 이 친구와의 소통이 없어도 지낼만 하였다. 그 뒤로 그 친구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한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나의 생각에 갇혀 있었지만 몇 년전 부터는 그 친구가 이해 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친구의 가정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친구는 공황도 앓고 있었고 집안 상황이 너무 안좋아 원룸에서 고시원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럴 때 난 반찬과 김치도 가져다 주고 생활용품도 챙겨주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결혼을 했고 착한 남편을 만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서로의 집안도 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느꼈을 비교되는 마음은 피하고 싶을 수도 있었겠다 싶고 다른 삶을 살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그 친구와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바다 보러 갔던 기억이 났다. 역에 도착하여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홍합탕에 소주를 즐기며 바다를 보고 사진도 예쁘게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친구는 워낙 단단한 사람이기에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 난 지금 40대가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서로의 40대가 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친구가 보고 싶은 밤이다. 친구에게 마음이지만 안부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