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받았다. 현정에게.
작년 6월 21일 화요일, 아침 7시 현정과 그녀의 아이들 나로, 아로를 만나서 현정의 차에 짐을 실었다. 나와 나의 딸 종화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나르고 한참 반복하여 짐을 모두 싣고 현정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달렸다. 아침밥으로 산 김밥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들도 김밥 한 개씩 먹어가며 주절주절 이야기 꽃을 피었다.
강원도 고성 아야진 해변을 향해 속도를 내며 우리는 스릴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운전에 능숙한 현정은 3시간 반 거리의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한번에 달렸다. 강원도로 달리는 길목에는 약간의 흐릿한 안개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다를 자주 다니는 현정은 맑은 하늘의 바다를 보는 것은 행운이라고 하였다. 바닷가 가면 파란 바다가 쫙 펼쳐지는 것 아니었건가. 흐릿한 날씨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약간의 불안감도 올라왔다. 밝고 예쁘게 빛나는 파란 바다를 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한번도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없다. 종화가 태어나서 9년을 살면서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이 없고 그냥 그림책에서 본 바다가 전부이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학교에서 발표시간에 바다에 갔다가 해파리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다는 무서운 해파리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확인시켜 준 적이 없기에 나도 더 이상 바다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바다까지 놀러 가려면 차로 3시간은 운전해야 한다. 우리 남편의 운전 실력은 고속도로를 달리면 주변에서 우리 차를 하도 추월하고 달려서 옆에 차들이 씽씽 지나가니 아찔할 정도로 허술하다. 아무리 운전해도 늘지 않는 운전 실력에 차를 타고 멀리 가리는 일은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나의 불안감으로 몸도 많이 아팠었고, 차를 타고 멀리 여행하는 일은 공황이 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결혼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남편 차를 타고 경주까지 놀러 다녀 온 일도 있다. 결혼 후에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져 1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 거리만으로 차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바닷가로 여행가는 일은 나에겐 벅찬 일이었고 굳이 바다가 그립지도 않았다. 오고 가는 힘듦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긴 것이다.
이런 나에게 현정은 바다를 선물해 주겠다고 했고, 하루 시간을 내어 아이들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떠난 바다 여행이었다. 운전 실력이 능하고 바다에 자주 가 본 경험이 있는 현정과의 바다 여행은 안정감을 주어 선뜻 함께하자고 응했다. 현정의 선물이 기뻐서 이것 저것 먹을 것을 바리바리 준비하였다. 더 고맙게도 현정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주먹밥, 김치 볶음밥, 토스트까지 완벽 풀세트를 준비해 주었다.
바닷가 근처에 다다르니 흐릿한 날씨 속에 습한 바람이 살짝 불어오고 약간의 비가 올 듯 분위기의 바다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도 바다다. 결혼하고 10년 만에 보는 바닷가 모래 위를 푸석 푸석하게 밟고 있는 나다. 그것도 9살 되어 처음으로 바다를 보는 나의 딸아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철푸덕하고 바다에 들어갔다.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발을 적신다. 바다의 느낌을 처음 느껴본 아이는 마음이 들떠 보인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설레고 온몸으로 바다를 만끽하여 본다.
오전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서 날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에메랄드 빛의 파란 바다 모습이 나타났다. 현정은 이런 바다를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계속 흐릿하고 뿌옇게 보일 것 같던 바다가 영롱한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밝은 바다가 나에게 넘실대며 다가왔다. 바다의 오색찬란한 모습과 부드러운 모래 바닥이 내가 바다에 왔는지 더 실감나게 해 주었다.
오전 놀이를 마치고 바닷가 근처에서 싸온 도시락과 먹거리들을 풀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을 채비를 하고 아기 새들 마냥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고픈 아이들 먼저 먹이고 우리도 캠핑 의자에 앉아서 현정이 싸온 계란이 얹어있는 김치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 찰나에 허겁지겁 혀를 깨물 것 같은 속도로 마구 흡입했다. 바다를 보며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고, 김밥, 토스트, 주먹밥에 시원한 음료수 까지 배가 가득 찰 정도로 들어갔다.
배도 두둑해졌으니 이젠 바다에서 본격적으로 놀아 보아야 했다. 아이들은 튜브를 들고 모래 놀이 세트를 들고 바다를 향해 다시 돌진 했다. 모래성도 쌓고 모래에 누워 모래 찜질도 하여 보고 튜브 타고 파도에 넘실대며 바다에 몸을 싣고, 밀려오는 파도를 도망치며 달려가기도 한다. 오후가 되어 물이 좀 따스해졌을 때 나도 조심스레 바다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6월이지만 아직도 바닷물은 차디찼다. 살갖에 차디찬 물의 온도가 온몸으로 전해지고 약간은 추웠다. 그래도 바다에 왔으니 바닷물은 적시고 가야 했다. 오후의 바다는 내내 환하고 밝은 빛으로 눈으로만 보고 있어도 예쁜 바다였다.
이렇게 예쁜 바다를 눈에 넣으려고 계속 바라보면서 앉아있었다. 여름이 다가 오는 냄새와 시원하게 적셔주는 바다 소리, 반짝 반짝 빛나는 모랫바닥, 휘휘 날아다니는 갈매기,
바다와 닿을 듯한 하늘, 내가 서있는 아야진 바닷가. 10년 만에 본 행복하고 고마운 나의 단짝 현정의 선물이었다.
이렇게 오면 되었을 것을 바닷가 까지 오는 길이 두렵고 무서웠던 나의 마음이 나를 가로 막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고 호탕한 성격의 현정 덕분에 그 문턱을 넘은 듯 했고 굳이 남편의 차로 오지 않더라도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바다보러 올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에게 하나의 관문을 넘은 듯한 용기를 준 현정의 선물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어제도 현정과 집 근처 술집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 하였다.. 내가 이번에 함께 아야진 바다에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썼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현정의 흥으로 그 순간 속초 갔다올까 하는 이야기로 새벽 바다 보고 오자는 실행계획 까지 갔다가 워워 하며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이미 얘기로는 속초가서 바다 보고 왔다.
그 후에 우리 가족은 작년 10월쯤에 어느 복지관에서 하는 투어버스로 양양 낙산 해수욕장에 가는 코스에 당첨 되어 가족여행을 바다로 처음 다녀왔다. 흐릿한 날씨의 바다로 거센 파도가 일었지만 우리 가족의 감격스러운 첫 바다 여행이 되었다. 이번 년도 또 가족 바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자꾸 자꾸 떠나고 싶다. 두려움과 불안을 파도에 싣고 떠나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