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언가 좀 더 신중하기 보다는 하려고 하는 것이면 젊은 열정에 해보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많은 것을 이루며 살 것 같았던 희망고문을 가지고 20대를 나름 열심히 보냈다. 학교까지 2시간은 걸리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서 준비해야 했고 아침6시에 헬스장가서 아침운동까지 하고 가는 날도 있었다.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2시간 걸려 집에 오는 길 차안에서 학과공부를 좀 봐두어야 한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과외 1~2개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10시를 훌쩍 넘기곤 하였다. 열심히 달린 것 같지만 대학 졸업 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되는 시점에 와 있다. 수학과를 졸업하고 수학과외만 해 오던 상황이었다. 학원에서 일해 본 경험은 없었고 교사 자격증은 취득을 못했기에 임용고시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토익을 공부하거나 기업 취업을 위해 준비했던 상황은 아니어서 이력서를 써볼 생각도 없었다.
그나마 가르쳤던 경험에 힘입어 수학 교육 대학원에 가서 석사학위 겸 정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해 보기로 생각을 굳혔다. 또 내 주변에 거의 대부분이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한 군대 대학원이 합격하여 다시 또 2년 연장으로 대학원을 다녀야 했다. 대학원은 저녁에 수업이 있기에 낮에는 임용고시를 공부하고 저녁에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그리고 간간히 과외를 하면서 내 용돈 벌이를 했다. 나름대로 낮에 계획을 짜서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임용고사 자체가 워낙 범위가 넓고 공부량이 방대하여 혼자 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2년을 후다닥 다녀 석사 학위와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정교사는 아니지만 기간제 교사는 가능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립학교 쪽으로 정교사 이력서를 여러 군데 내어 보았고 면접도 다녀봤다. 그러나 좋은 결실은 없었다. 그나마 1년제 기간제 교사 자리에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면접보라고 전화가 왔다. 합격하여 용인의 한 중학교에 1년 수학 기간제 교사로 갑작스레 학교에 취직하게 되었다. 어떤 교육도 없이 신입이 바로 1학년 담임과 1학년 전담 수학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1학기때는 적응도 힘들고 일끝내느라 매일 늦게 퇴근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잘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지났다. 2학기가 되니 적응이 좀 되면서 아이들의 수학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고 매일 매일 일을 후다닥 끝내놓고 칼퇴근 이었다. 그리고 매달 꾸준히 일하니 쓸거 쓰고 남은 돈은 저금하여 1년 후에는 꽤 많은 돈이 모아졌다.
그런데 매일 일대일로 과외만 하다가 여러 학생들을 대하고 선생님들을 대하는 사회생활이 나와는 잘 안맞는 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기 싫은 마음도 올라왔다. 그리고 힘이 들었다. 1년 기간제 교사가 끝난 후에 다른 곳을 소개시켜주기도 하였는데 하지 않고 다시 또 대학원의 길을 선택하였다.
수학교육학과로 박사과정이었다. 두 군데 학교를 넣었는데 한군데는 떨어지고 한군데가 붙었다. 그래서 27살부터 다시 또 2년간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과 공부가 많이 어려웠다. 영어 원서를 다 해석해야 했고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사 논문은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그건 나중일이고 수료나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대학원 졸업 후에 나의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공부를 오랜 기간 하고선 진로 결정이 나질 않는다. 그냥 박사과정 졸업하고 나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냥 달렸다.
그리고 계속 과외는 손에 놓지 못했다. 용돈은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새롭고 열렬했던 사랑이 찾아와 즐겁기도 했지만 괴로운 순간이었다. 대학원도 힘든데 연애도 힘들었다. 사랑하지만 나와는 성격이나 취향, 성향이 맞지가 않아 너무 많이 토라지고 싸웠다. 이 사랑을 끝내기까지 1년 반이 걸리고 이 사이에 대학원 수료 까지 마쳤다. 그리고 난 헛헛하게 30대를 맞이했다. 결혼도 진로도 돈도 아무것도 이루어 둔 것이 없었던 30대의 출발, 막막하고 씁쓸하고 우울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허무 했던 30대를 맞이하면서 난 좀 무기력해 졌다. 그래도 과외는 계속 했다. 힘이 안날때는 조금만 하고 힘이 좀 났을 때는 많이 하고 하면서 강약을 조절했다. 친구와 얘기도 많이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20대를 보내며 오춘기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성공하지 못한 30대를 맞이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감사하다. 나를 들볶지 않으셨다. 아주 심하게는. 잔소리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왜 이렇게 지내니 하는 그런 소리는 안하셨다. 그래도 마음 편히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으면서 편하게 지냈다. 30살이 넘어가니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소개팅을 굉장히 많이 하였다. 번번히 다 잘 안되었지만.
이렇게 결혼도 못하는 것인가 생각한 찰나 2년정도 지났나. 32살 1월에 지금의 남편을 압구정동 소개팅 장소에서 만나서 1년 안에 연애와 결혼까지 해서 그 해 12월 결혼하였다.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난 일을 모두 그만두고 집에서 있는 가정주부의 직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딸아이가 10살이니 10년 동안 난 다른 일 하는 것 없이 가정주부를 했다. 그 속에서 많은 생각이 올라왔고 이야기도 들었다.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냐 하는 소리 부터 나 혼자서도 나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려고 노력도 해 보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보이지가 않았다. 뭐가 끌려야 그 일을 할텐데 그럴 만한 일이 찾아지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면서 내가 그림책을 보면 행복해지고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래서 그 뒤로 그림책을 많이 사고 읽었다. 아이 6살 때부터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아이에게 그림책을 한권씩 읽어준다. 처음에는 별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읽어주면 재밌다고 한다. 그런거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이번 년도 무언가 여러 가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서 많은 일들을 계획하였지만 지금 재미가 들린 일이 글쓰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글쓰기 강의도 듣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이번 달은 이렇게 매일 글도 쓰고 있다. 행복하다. 20대 때는 무언가 목적을 위해 달리고 성취가 안되면 큰 좌절을 했지만 오늘의 글쓰기는 내가 좋아서 하고 있고 재미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글을 쓰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타자의 소리와 느낌이 좋다. 20대에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과거들이 모여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행복한 글쓰기를 오래 도록 하고 살고 싶다. 이일을 하면서 나는 어떤 성장을 하게 될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