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글의 주제가 탁 떠오르지도 않고 마땅히 쓸거리도 없다. 그래서 이번주 한주는 에세이 클럽에 글써서 내는 것을 건너 뛸까의 마음도 올라왔다. 글을 못 써내는 것에 대해 계속 걸리는 마음과 애써 모르는 척 하는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고진나 (에세이클럽4기 모임 이름) 단톡방에 잔뜩 글이 올라왔다. 예스 24 에서 개최한 '집의 일기' 공모전에서 우리 고진나 멤버들 중 3명이 가작으로 당선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 이름과 내가 써냈던 제목이 있었다. 계속 한글자 한글자 확인하며 보고 있었다. 내가 맞는지 의아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당선됐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쓴지는 이번 년도 부터이고 3월 부터는 공모전에 한달에 3~4건 정도는 응모를 해보고 있다. 소소하게 커피쿠폰과 참가상 정도의 잔잔함만 있다가 그래도 가작이라는 이름 있는 상에 들어 지금도 기쁜 여운이다.
게으름 부려볼까하다가 다시 눈을 번쩍이게 만들어 준다. 시작이 반이라고 글쓰기를 시작하니 소소하게 기쁨을 안겨주는 일들이 일어난다.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고 책도 다양하게 즐겨 읽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땅에 헤딩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엉겨붙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학과를 졸업하고 결혼 전 수학관련 일을 12년 정도 한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의 꿈이 방송작가 였다. 그때 막연하게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다. 어떤 계기도 없이 정말 막연한 꿈이었다. 그래서 생활기록부에 나의 장래희망은 방송작가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는 막연함이 현실감으로 바뀌면서 장래희망이 교사로 바뀌어져 있었다. 교사가 좀 더 현실적이고 먹고 살 수 있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로 방송작가의 꿈은 땅속에 파묻혀졌고 수학과 가서 수학을 가르치며 잘 먹고 살았다. 결혼 후에 수학과도 이별하고 땅속에 묻어둔 채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일구며 마음공부하며 30대를 보냈다. 아이를 키운지 10년이 흐르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았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취미가 되었고 소소하게 아이들 수학지도도 같이 한다. 파묻혀졌던 두 가지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송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고 있고 수학도 다시 배우면서 가르치고 있다. 왜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지,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말들을 글로 쏟아내려고 하는지, 이제는 때가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내진 않더라도 소소하게 글을 쓰며 살아가는 기쁨을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오늘 같이 좋은 소식이 들릴때면 더더욱 그렇다. 계속해서 꾸준히 쓴다면 그것이 차곡 차곡 모여 나의 인생책 한권은 소장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고등학교 1학년 저녁 자율학습시간, 공책에 끄적였던 시가 떠오른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목은 미로 였고 내용은 청소년기 시절 알 수 없는 파도치는 마음을 표현했다. 앞이 보아지도 않고 막막한 길이고 미로 속을 헤매이고 있는 그때의 심정을 쓰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그 시로 혼자 위로받기도 했다.
미로같던 순간순간들을 벗어나고 미로를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살고 있지만 그 미로 속에서 진주 같은 보물들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될 미로 같은 세상과 내 마음을 잘 살피며 나아가야 겠다. 헤매여도, 도착지를 찾아도 내 인생이기에 미로의 출구를 찾기보다는 미로를 헤매이며 즐기는 삶을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