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온 광복, 강석대 독립운동가 [8]
강석대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은 오랫동안 천도교 신자였다. 그래서 지난번 국가보훈처에 제출했던 '동학천도교 인명사전'에도 할아버지의 존함이 나왔었는데, 그때 인명사전의 출처가 되는 자료는 '<성금록> 화천교구 1964.3.21.'이었다.
천도교 중앙도서관에서 성금록 자료를 찾다가 도저히 없어서 포기했었는데, 기반이 되는 자료를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찾았다.
그것은 대신사순도백주년 기념사보라는 책인데, 1964년에 발간되었다고 한다. 따로 발간 연월일이 나와 있지 않아서 언제 집필된 것인지 모호했었는데, 앞부분에 '포덕 105년 3월 21일'이라고 적혀있었다. 포덕은 천도교 용어로, 덕을 편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는 천도교에서 전도를 뜻하는 말인데, 포덕 105년은 1964년이다. 그래서 이 책이 1964년 3월 21일에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사순도백주년 기념사보의 내지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에는 그 당시 행사 사진과 성금록이 수록되어 있었다. 성금록은 종교 단체에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인데, 목차에 보면, 할아버지와 강석대 독립운동가가 활동하셨던 화천 교구도 있었다.
128쪽에 우리 할아버지의 존함이 나와 있었고,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라는 주소지도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1,000은 성금을 얼마 내신지에 대한 내용인듯했고, 밑에 가족관계에 대한 짤막한 소개가 있었다.
그 내용은 "증조의 석대와 시고의 성구는 3.1 독립운동으로 1년 복역"이었다. 考자가 문어체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한다고 하는데, 아마 親考는 조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우리 가족과 강석대 독립운동가의 가족 관계를 증빙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자세한 사실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천도교에 전화해 대신사순도백주년 기념사보에 대해 문의했다.
먼저 대신사란 천도교의 초대 교주인 최제우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대신사순도백주년은 대신사님이 순도 하신, 즉, 돌아가신 지 백주년인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천도교의 기념동상 건립위원회에서 기념 동상을 세우면서 전국 교인 및 교구에 성금을 모은 것이고, 대신사순도백주년 기념사보의 성금록은 그때 성금을 낸 사람들의 기록인 것이다.
처음 국가보훈처에 동학천도교 인명사전을 보냈을 때, 이 내용의 기반이 되는 사료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천도교에도 자료가 없다고 하여 증빙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기반이 되는 자료를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하면서 '자료가 없다, 기록이 소실되었다, 증빙하기 어렵다' 등의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어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