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온 광복, 강석대 독립운동가 [10]
지난번에 민족의 얼 시상과 관련하여 강원일보 기사를 찾았다는 내용을 올린 적 있다. 이번에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여 중요한 자료를 하나 찾았는데, 바로 1975년 3월 1일 자 한국일보 강원판 6면의 기사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기사를 소중히 스크랩하셔서 지금까지도 가지고 계셨다. 이 기사의 내용은 3.1절을 맞아 민족의 얼 표창을 받은 할아버지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꽤 긴 내용이었는데,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우리 가족과 강석대 독립운동가 간의 관계를 증명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였다.
기사에 따르면, 할아버지의 선조 2대는 독립만세운동으로 투옥 희생되었다. 할아버지의 증조부이신 강석대 독립운동가(당시 64세)와 조부이신 강두성 독립운동가(당시 32세)께서 독립만세를 위한 비밀결사에 가담하여 만세를 부르고 일본 헌병대를 불사르는 등의 항일투쟁을 하셨다고 한다.
이 둘 부자는 태극기를 만들어 주민에게 배포하고, 거사 날에는 일본 헌병대 화천분견대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는 임무를 맡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의 인터뷰 혹은 기사는 가족 관계를 증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국가보훈부 담당 연구관에 따르면, 제적부나 호적이 없을 때 고신문 자료로 가족 관계를 증빙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를 할아버지 댁에서 찾은 후 또 다른 내용이 1975년도 한국일보 강원판 기사에 수록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신문 전체를 구해보려고 했다.
지금 고신문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군데이다. 하나는 언론사 홈페이지다. 보통 규모가 큰 언론사들은 자사의 오래된 신문을 PDF로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1975년도 한국일보 본 판(전국지)이지, 1975년 강원판은 따로 볼 수 없었다.
이 외에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빅카인즈(BIG KINDS)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신문 자료를 검색하여 볼 수 있는데, 옛날 신문 자료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부터 현재까지의 많은 언론사의 기사를 볼 수 있지만 1975년도의 자료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측에 문의해 보니 더 옛날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문화체육부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사이트에 접속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1883년부터 1960년까지의 신문 98종의 기사를 서비스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1883년~1960년까지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1990년부터 현재까지는 빅카인즈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니 1961년부터 1989년까지는 신문 아카이브가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이 방법으로는 더 이상 1975년 3월 1일 자 한국일보 강원판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한국일보 본사에 문의해 보니 본인들은 전국지만 가지고 있지, 오래된 지역지는 따로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일보는 강원도만 담당하는 지부마저 없고, 다른 지역에서 강원도까지 커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강원도 지역의 대학에서 한국일보 강원판 기사를 따로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도내 대학 도서관에 한번 문의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원주),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가톨릭관동대학교 강릉캠퍼스, 한림대학교' 등 강원도 내 대학에 전화하여 한국일보 강원판 1975년 3월 1일 자 기사를 가지고 있는지 문의했으나 모든 대학에서 관련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일단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께서 스크랩해 두신 자료만 보훈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강원판 기사를 찾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아쉬웠다.
다른 기사에서는 어떻게 강석대 독립운동가와 민족의 얼 시상식을 다루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석대 독립운동가와 가족 관계를 증빙할 수 있는 오래된 기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큰 소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