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해주세요 (4) 술이 달면 어른이 된 거란다.

30대 편집자의 취향 확립 프로젝트

by 선선

"술 좋아하세요?"


어른이 되고 종종 받는 질문들.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네, 좋아해요."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의 그 들뜨고 노곤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술 한 잔을 똑 들이켰을 때 남는 묘한 단 맛 때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소주'를 좋아한다.

발 끝까지 따뜻하게 데우면서 입 안에 남는 달짝한 맛 때문에.







주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술을 두루 섭렵하거나 역사가 긴 술 하나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도 많은 요즘에는 '소주'만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의외로 특이하게 받아 들여지곤 한다.


그 쓰기만 한 소주를 왜? 아무 맛도 없이 그냥 알콜향이잖아? 라는 되물음을 받기도 수차례였다.

하지만 내게는 소주가 가장 '맛'있다.




양주는 꼬릿한 향이, 고량주는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막걸리는 특유의 맛이 싫어서, 마셔도 마셔도 '맛'이 없었다.

아, 맥주는 탄산을 잘 못 마셔서 작은 한 캔도 반 이상 남긴다. 아! 와인은 항상 머리가 아파서 마실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씩 소거해보며 남기지 않아도 사실 소주가 제일 좋았다.

어떠한 음식과 마셔도 튀지 않고,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잔에 가득 부어 한 잔 탁 털어넣으면 되는 알맞은 양에, 너무 쓰지도 너무 달지도 않아 적당히 술 맛 나는 도수까지.




내 기억 속 첫 술은 수능이 끝난 후 어느 날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과 잔을 짠 부딪히며 넘겼던 첫 술의 한 모금은 쓰고 맛이 없었다.


애주가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라 술 마시는 모습도 익숙하고, 술에 대한 인식도 꽤나 좋은 편이었던 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첫 잔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 아빠 도대체 뭐지? 이걸 어떻게 그렇게 마시는거지?"


다음 날, 저녁 식사를 하며 엄마에게 볼맨 소리로 처음 삼킨 술 맛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네. 술이 써서. 원래 술이 달면 어른이 된거란다. 술보다 사는 게 쓰니까. 아직 어른들처럼 술이 달면 안되지."


술이 달다니. 그게 말이나 될까?


이후에도 마주한 술은 언제나 내게 쓰디 썼고 그래서 나는 항상 재빨리 안주를 입에 넣기 바빴다.







그 맛 없다던 술을 대학 내내 참 많이도 마셨다.


4년을 부지런히 다녀 대학을 졸업하고는 중등 임용 시험을 내리 몇 년을 보았다.

떨어지기를 몇 년, 1차 합격하고 2차에서 소수점 차이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 사이 이런 저런 알바도 하고, 학교에서 기간제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술자리와 얼마나 많은 술병이 내 곁을 스쳐갔을까?


어느 순간, 술이 달아졌다.

안주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달게 남는 소주의 맛이 좋아졌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술과 싫어하는 술이 명확해져갔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가벼운 자리에서도 맥주잔 사이에 꿋꿋하게 소주잔을 쥐고 있는 나.

'역시 소주가 맛있지. 오늘따라 술이 더 달다. 달아.'


그런데 어째서인지 엄마의 말이 술잔 끝에 남는다.


"술이 달면 어른이 된거란다."





물론 같이 마시는 사람에 따라, 안주에 따라 맥주도, 막걸리도 잘 마십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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