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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2.1.2.3.2. 두 공멸 이후의 인류사

by 에스겔

바벨의 시대에 언어의 혼잡이 없었으면 도시 문명과 심판 대항 탑의 교만으로 인해 공멸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노아에게 맹세한 대로 우리는 우리의 맹세를 지켰다. 그래서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물의 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인류(아담)는 홍수 심판의 염려가 없는 시간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인류가 두려움이 없어져 더 방종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럼에도 위의 공멸 방지툴들로 인해 처음 노아 시대의 공멸과 같은 공멸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인류는 공멸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짧은 수명과 언어의 혼잡에서 기인한 수천수만의 분열로 인해 더디고 힘겨운 시간의 흐름에 오르게 되었다. 나의 아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을 수 있는 생의 시간이 짧아졌다. 그러나 생의 긴 세월을 살면서 점점 악해져 전 인류가 함께 공멸에 이르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도 없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 힘겨운 시간의 흐름에 영원히 있을 것인가? 흥망성쇠가 영원히 지속될 것인가? 과연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그 끝이 와 결국 공멸의 심판에 이를 것인가?


01.3.2.1.2.3.2.1. 제국과 민족들의 흥망성쇠와 테크놀로지의 발달 저해로 인한 공멸 저지


인간의 언어 혼잡과 짧은 생은 인간이 무엇을 이루기에는 너무 넘기 힘든 절대적 장벽이 되었다. 전에는 니므롯과 같은 용사가 나오면 그의 지휘아래 전 인류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그 뭉칠 수 있는 단위가 단지 자신의 언어 종족에 불과해졌다. 결정적인 것은 홍수 이전에 그 수명이 1000년 가까이 된 인간들은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짧은 생을 사는 인생들은 대부분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죽는다. 때로는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와 같은 걸출한 용사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정복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숨을 거둔다. 그러면 대부분 그들의 유산은 자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들의 참된 유산은 그들이 차지한 땅이 아니다. 그들이 확장할 수 있던 힘이다. 한 언어 종족이 언어가 다른 그룹들과 뭉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을 거쳐야 한다. 이 전쟁을 수행하고 피정복지의 지배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이 참 유산인데 그 유산은 자손들에게 대부분 전달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제국은 그 확장을 멈추게 되고 점차 쇠퇴하게 된다. 저 지혜로운 인간 토인비의 말과 같이 역사는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그렇게 심음과 거둠,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을 거듭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순환을 거듭한다. 결코 전 인류의 완전한 공멸로는 달려가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탐욕을 따라 흘러간다. 그 탐욕의 강을 따라 사람도 돈도 세상의 모든 자원도 모여든다. 그 모여든 곳이 도시다. 그런 도시가 더 큰 피와 탐욕을 머금으면 국가가 되고 그 국가가 더 큰 탐욕과 피를 마시면 제국이 된다. 제국은 세계의 정복을 꿈꾼다. 그것을 염원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제국은 쇠퇴한다. 전쟁과 죽임과 탈취가 멈추는 것이다. 너희 인간들은 그것을 제국의 역사라 하여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역사를 너희도 일으키기를 원한다. 도시문명의 메커니즘은 이미 앞의 공멸의 역사들에서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는 농경 문명에서 시작하여 발달하는 도시 문명과는 다른 유목민족 제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01.3.2.1.2.3.2.1.1. 유목민족 제국사


인간들은 계속 도시 문명을 건설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이룰 제국을 건설한다. 고대에 유명한 제국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제국들은 사실 유목민족들의 제국이었다. 그들은 역사 상 가장 단 기간에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해 세상을 그들의 폭력으로 뒤덮었다.


01.3.2.1.2.3.2.1.1.1. 유목민족


대부분의 농경민족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유목민의 삶은 그 자체가 전투다. 활을 들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냥감을 잡는 것은 기본적이며 양 떼들을 습격하는 늑대와 곰, 표범, 사자와의 생사를 건 싸움은 일상이다. 이 모든 일에는 말을 타는 것이 필수다. 이들은 말을 타고 모든 활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말을 타고 잠을 잘 수도 있어야 한다. 이들은 달리면서 새의 눈을 꿰어 떨어뜨릴 수 있다. 빨리 달리는 토끼를 흔들리는 말 위에서 화살로 잡는다. 그러니 토끼에 비해 수십 배는 큰 표적인 사람을 활로 맞히는 것은 그들에게는 너무 장난스러운 시험문제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농경민들이 보았을 때 악마적이라 할 정도로 기이하다. 몽골족들이 유럽에 도착했을 때 유럽인들은 그들을 악마라 규정했다. 그들은 성을 점령하면 그 성의 모든 건물을 부숴버리고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남자들은 모두 잡아 강가에 일렬로 무릎 꿇려 묶어 놓는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그 성의 모든 남자를 목베어 죽인다. 강은 피로 물들고 대지에는 피가 고인다. 유목민은 도시도 노동력도 필요가 없다. 오직 가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씨를 뿌릴 적당한 수의 여자들이 필요하다. 이들의 행동은 철저히 자신들을 대항할 수 있는 유럽의 도시 문명을 파괴하는 파멸자, 종말을 가져올 악마들의 행동이었다.

이들은 옆에 다른 가족이나 다른 부족이 지나가면 먼저 그들의 강약을 가늠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더 강하면 그들을 바로 약탈한다.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가로채고 그들의 가축을 가로챈다. 복수를 할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죽인다. 심지어 어린 남자아이들도 죽이는 경우가 있다. 칭기즈칸이 그러했듯 커서 아비의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비슷한 힘을 가졌을 경우는 친분을 다진다. 유목민이 이동하여 정착한 북유럽의 게르만족을 보면 잔을 서로 부딪쳐 서로의 술을 섞는 풍습이 있다. 이는 서로의 힘이 비슷할 때 상대를 독살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잔에 독이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들의 삶은 이렇게도 비정하고도 가혹하다. 약하거나 방심하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또한 이들의 유목의 삶은 농경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들은 농산품을 구하기 위해 농경민족들을 약탈해야 한다. 농경민들과 거래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산품인 유제품과 가죽을 가져가더라도 한계가 있다. 특히 약탈이 일상인 그들에게 굳이 약해빠진 농경민과 자신들의 물건들을 건네어주기까지 하며 거래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진다. 그냥 빼앗으면 되는 것이다. 이들의 삶이 이러하니 이들은 군사훈련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가족 단위, 부족단위가 바로 군사의 단위가 된다.


01.3.2.1.2.3.2.1.1.2. 유목민족 제국


이러한 유목민족들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북부를 휩쓰는 강력한 지배세력들이 되었다. 유럽에 쳐들어간 이들의 흔적은 훈족이나 몽골족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북유럽의 바이킹을 포함하는 게르만 족도 유목민족의 후예다. 유목민족의 후예들이 바다 끝에 다다랐을 때 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정복을 나섰다. 유목민이 바다민족을 만나 그들을 흡수하여 해양정복과 육지정복을 동시에 수행한 것이다. 그들이 바이킹이다. 바이킹의 호전성과 전투력은 유목민족의 것이다. 그들이 말을 다루는 기술과 그리고 그들의 뿔투구, 특히나 바이킹의 도끼는 유목민족의 것 그대로다. 그 바이킹들이 남으로 정복하여 내려와 독일과 영국 등 여러 지역들을 점령했다. 독일은 게르만족이 그리고 프랑스는 골족이 다른 곳은 슬라브족이 점령했다. 또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등 유목민족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많다. 특히 투르크는 동방에서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아프리카의 북부와 중동, 터키, 그리고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까지 점령한 거대 제국들을 세웠었다. 몽골족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너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유목민족의 역사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세워졌으며 너무 그 영향력이 막강하여 각 지역의 정착민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후대에 각 지역들을 탈환한 지역소국들은 심지어 이들의 역사를 삭제하려 많은 노력들을 했다. 러시아가 칭기즈칸의 역사를 삭제하고 중국이 흉노와 돌궐, 고구려, 백제, 고조선의 역사를 삭제한 것과 같다.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제국들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한 권이 제대로 없는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이들 나라 중 그렇게 크지 않았던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였음에도 자신들의 사서의 기록을 모두 지우지 못하여 흔적이 남았다. 고구려의 사고를 태우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중국의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한반도의 소국의 사고를 태우는데 6개월이 걸리겠는가? 과연 고구려는 한반도의 소국이었는가? 심지어 섬나라였던 왜의 기록도 남아있는데 육지에 있던 제국들의 기록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너희 인간들은 역사를 편집하고 조작해서라도 땅을 차지하고 다른 이들의 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너희 인간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들이 지배당한 수치를 지우고 적들의 역사를 축소하여 다시 적들의 후손들이 조상의 역사를 기억하고 동일한 침략을 상상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유목민족들은 공포스러웠다.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유목민족인 고구려는 중국보다 더 선한 종족이었는가? 과연 그들이 말갈이나 거란족들을 그리고 일부 몽골족들을 정복했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했겠는가? 과연 광개토대왕의 정벌은 피 없는 아름다운 부족 연합이었으며 상대 부족에게 번영을 주는 축복이었겠는가? 아니면 상대의 땅과 집과 나라와 아내와 딸과 아들을 강탈하는 착취였겠는가?



01.3.2.1.2.3.2.1.2. 도시 문명, 농경 문명, 유목 문명 모두 공멸의 메커니즘


너희는 이들의 역사가 영웅들의 역사 같으냐? 그들이 니므롯과 같이 용사며 영웅들처럼 보이느냐? 니므롯은 용사였더냐? 그들의 역사가 제국 건설의 굴기처럼 보이느냐?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너희 제국들의 역사는 약탈과 방화의 역사다.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 그들의 성을 불태우고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아내와 딸을 겁탈하며 그들의 모든 것을 약탈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것이 옛적 원시인들의 행위 같더냐? 일본인들이 저지른 위안부 겁탈과 인도인들이 파키스탄에서 저지른 전쟁 강간은 언제였더냐? 너희 사회에는 아직도 아동성폭행이 근절되지 않는다. 너희는 여전히 살인자들이며 강간자들이다. 너희는 여전히 전쟁으로 돌입하면 너희 악을 품어낸다. 너희는 왜 그런 전쟁을 하는가? 너희 세상에는 왜 아직도 제국이 존재하는가? 미소갈등이나 미중갈등은 제국의 갈등이 아닌가? 왜 사람들이 니므롯이나 칭기즈칸의 소유가 되어야 하며 왜 그들 우두머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왜 유교의 교리와 같이 인간은 하늘을 떠받들듯 천자를 받들어야 하는가? 천자는 하늘의 아들이 맞는가? 왜 그는 너희의 주인이 되어 멀쩡히 살아가는 너희에게 세금을 요구하는가? 왜 너희 아들을 전쟁에 내보내어 사지로 모는가? 전쟁은 너희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맞는가? 소위 왕이니, 천자니, 황제니 하는 자들의 탐욕이 없다면 전쟁이 발생이나 하겠는가? 너희는 어려서부터 그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 작은 집단이건 큰 집단이건 거의 대부분의 집단들은 그 우두머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우두머리의 이익을 위해 집단과 제국이 있다. 그 우두머리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너희는 심지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충성이라 배웠다. 그런데 과연 너희가 왜 그렇게 희생해야 하는가? 애초에 우두머리들의 탐욕이 없다면 그런 일이 필요하기나 한 것인가?

너희는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한 것이다. 그들은 너희를 지배하기 위해서 공교한 속임수를 사용한다. 너희의 안전과 행복을 약속한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너희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너희는 그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너희의 전생을 착취당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더 나은 제도인가? 민주주의는 진정 민중 즉 국민이 주인인가? 또는 공산주의는 정말 유토피아를 건설해 주었는가? 그렇다면 모든 제도를 없애고 원시의 상태로 돌아가면 너희의 안전은 보장이 되는가? 법이나 법을 행사하는 공권력이 없는 공백 상태에서 너희는 너희의 안전을 어떻게 스스로 지킬 것인가? 아니면 어떤 중립적이고 절충적인 제도를 만들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사를 살펴보라. 너희의 땅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과거에 존재했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결과는 실패였다. 어떤 제도나 사상도 인간의 악을 치유할 수 없다. 인간은 지옥의 늪과 같은 탐욕을 가진 존재다. 서로서로를 착취하여 결국 공멸하는 공멸의 존재다. 그런 인류(아담)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너희 인간들(아담) 자신에게는 없다.


그리고 너희 아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그런 공멸의 DNA를 가졌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러니 스스로 공멸을 대비할 수도 없고 자신의 악함과 타인의 악함을 대비할 수도 없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재산을 노려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느냐? 어느 남편이 아내가 자신의 체면을 위해 남편을 명예살인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가? 어느 형이 자신의 친 동생이 부모의 작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교사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어느 동생이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작은 칭찬에 자신을 질투하여 자기 형이 가인과 같이 자신을 들에 몰래 불러내어 돌로 치리라 예상할 수 있는가? 너희는 우리의 형상의 흔적을 가져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가 악하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는 스스로 선악을 정하고 스스로 하는 행위를 선하다고 규정한다. 근본적인 교만이 도사리고 있으니 그리고 근본적인 자존심이 스스로의 악을 인정할 수 없다. 양심과 악이 함께 공존하지만 결국 그것은 악이다. 선은 완전히 흰 것만이 선이다. 흰 것에 작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악이다. 그리고 그 점들이 계속 모이면 치명적인 결과들을 낳는다. 바로 전체가 점으로 채워져 악이 편만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더럽혀진 개인이나 사회의 양심은 개인적, 사회적 악을 낳는데 그 모든 것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한 이기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가장 선한 신앙적 양심을 가졌다는 제사장이 강도 만난 자를 버렸다. 레위인도 버렸다. 오직 세상에서 버림받은 같은 처지의 사마리아인만 그를 불쌍히 여겼다. 온 유럽이 기독교화된 사회에서 공장의 직공 아이들은 하루 2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영양실조와 과로로 말라죽어갔다. 그것을 보고 유대인 출신의 독일 루터교인 청년 마르크스가 그 아이들을 구하려 했을 때 루터 교도였던 공장주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받아 직업을 부여받고 소명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조상들이 직업의 소명을 태만히 하여 가난에 이른 것이니 그들의 삶을 우리더러 책임지라고 하지 말라. 그런 억지를 부리는 칼 마르크스 너는 누구냐? 너는 루터 교인이냐? 자유주의자냐? 아니면 이단자나 이교도냐?

결국 기득권층들은 마르크스를 이단자이며 국가 전복을 꾀하는 반역자로 여겼다.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행하여 그 결과 쌓은 부로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고 많은 헌납을 하는 공헌자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세대를 보고 분노한 마르크스는 잘못된 폭력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나를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세상의 방법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세상은 인간의 어떤 처방으로도 구원될 수 없다. 인간 안에 있는 독사의 독을 뽑아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 계속 악하여지고 결국은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간은 악하다.

바리새인들은 내가 인간으로 갔을 때 나를 신성모독자로 여겼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나를 인자라고 지칭했을 때도 그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간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200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율법의 준행자요. 집행자이며 그 율법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

너희는 그들과 다르겠느냐? 너희는 그들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그리고 스스로의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느냐?

그래서 너희는 너희 스스로 두면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희가 공멸에 이르지 않도록 공멸 방지툴을 너희 세계에 백신어플로 셑업했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심어 놓은 백신들의 방화벽을 뚫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방화벽을 제거하고 너희 스스로의 공멸로 달리기 위해, 심지어 해서는 안될 인간을 복제하는 실험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너희는 누구냐? 너희는 누구의 자손이냐? 독사의 새끼냐? 우리 신의 아들들이냐?


너희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너희 악함으로 인해, 너희가 공멸로 끝없이 반복하여 달려감을 인해 우리는 완전하고 영원히 변동할 수 없는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계획한 앞의 공멸 방지책의 역할은 사실 완전한 구원의 책략의 실행을 위한 시간 벌기였다. 공멸의 영원한 방지책이면서 마약에 정신이 나가 납치범을 사랑하는 이상 심리를 보이는 아이를 완전히 새롭게 하여 원래의 착하고 우리와 사랑하던 그 아이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책이 필요하다. 이제 그 방책을 우리가 어떻게 세웠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전에 너희 인류의 마지막 공멸은 무엇이며 인류는 여전히 교만에 이끌려 시간을 늦추어도 파멸의 길만을 향해 달려가는 어리석은 무뇌자들임을 보여주려 한다. 혹시라도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은 이제 너희 시대의 실상, 죽음의 질주의 참상을 보고 그 죽음을 향한 컨베이어벨트에 너 자신도 포함되었음을 실감하기 바란다. 그래서 그래서 그 길이 죽음의 길임을 깨닫고 돌이켜 살아주기를 바란다.

"나의 아이야 살아라. 나의 아이야 살아라. 살아야 좋은 날을 볼 수 있다. 다가오는 내일은 죽음이, 심판이 아니다. 내일 오는 세상은 아침부터 햇살에 붉음이 가득한 해돋이가 꽃피어오르는 곳, 사랑의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곳이다. 아침 이슬이 영롱일 때 호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배경으로 노아의 무지개가 피어 꽃을 이루는 그런 곳이다. 그곳엔 내가 태양이 되어 너를 지키고 밤도 없이 너희 빛이 되겠다. 너는 아프지도 피곤치도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너는 만물의 영장, 만유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영원히 사랑을 향해 달리는 목마름이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사랑은 너희에게 넘치고 넘쳐 온 만유를 채우고 사랑으로 모든 것은 그 안에서 가득 차 모두 충만케 될 것이다. 그 사랑이 흘러 아이는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독사가 물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 미움과 공격 성향과 공포는 없을 것이다. 독사는 더 이상 물지 않을 것이다. 늑대는 더 이상 피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사자는 더 이상 강한 턱을 가젤이나 물소의 숨통을 끊는 곳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표범이나 치타의 새끼를 물어 죽이는데 그 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더 이상은 배고픔도 병듦도 죽음도 보지 않을 것이다. 사자는 표범과 치타의 새끼를 기르고 하이에나는 보모로 인간들에게 고용될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지키고 아이들이 가는 곳에 앉아 그들의 기댈 곳이 되고 아이들의 길 안내자가 되어 아이들이 마실 샘을 찾고 아이들이 쉬고 낮잠을 청할 그늘을 찾을 것이다. 오늘의 세상, 죽음의 세상, 고통의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이제는 내일 오는 세상만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가자. 영원히 울음이 없고 더 이상 외로움에 흐느끼는 아픔이 없는 그곳으로 가자. 마음이 아파 숨 쉴 때마다 그 고통에 아파오는 고통이 없는 그곳으로 가자. 누군가를 잃고 그 죽음에 전염되어 죽음의 고통을 겪음이 없는 죽음의 질병이 없는 그곳으로 가자. 그래 너는 이제 하늘에 속한 자다. 오늘은 이 세상에 이방인이지만 내일 오는 세상에 속한 자다. 오늘까지는 세상이 악에 물들어 있지만 내일은 오는 세상이라 더 이상 악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잠시 오늘이라는 세상이 내일에 속한 너를 미워해도 이상하게 생각지 말자. 오늘이 미워하여 너의 육신을 죽여도 네가 눈을 뜨면 너는 내일에 일어날 것이다. 내일 오는 세상에 눈뜬 자여 너는 영원히 아비의 세상에 눈을 떠 영원히 자애로운 미소로 너를 보는 아버지의 품에 누일 것이다. 어미의 사랑의 손길이 아비 품에 누인 너의 머리를 빗어 참하게 정돈할 것이다. 이제 너의 얼굴에는 미소만 미소만 가득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의 얼굴에서 아픔도, 외로움도, 슬픔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네가 느끼는 절망과 죽음을 함께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너의 심장과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너를 느낀다. 너의 고통을 느끼고 너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너의 우울과 견디지 못해 정신이 나가버린 공포와 그 끝에 찾아오는 텅 빈 공허를 느낀다. 나는 이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너의 미소만 가득한 너의 심장, 그 마음의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다. 이제 네가 천국이니 나도 천국이다. 네가 지옥일 때는 나도 지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천국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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