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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Mar 30. 2024

3.1.1. 두 번째 아담과 새피조물

예수님은  인간으로 성육신 하셨다. 바로 사람(히 아담)으로 오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것이다. 왜 두 번째  아담이라고 불렀는가에 대한 부분은 이미 언급했다. 실패한 아담이 아닌 새 아담 즉 새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 즉, 두 번째 아담인 것이다.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 평생에 육신에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시어 자신의 몸으로 단번에 완전한 속죄와 화목을 이루셨다(히 5:1~9)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지만 두 번째 아담 안에서 모든 믿는 자는 의인이 된다. 첫 사람 아담은 육을 입은 사람이었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시어 신령한 몸으로 거듭나셨다.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우리도 결국에는 첫  아담의 몸을 벗고 예수님 안에서 신령한 몸을 입고 만물 위에 교회로 즉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자리로 가게 된다(행  6~7장, 엡 1장) 이제 우리는 첫 아담 안에서 실패한 죄인들이 아니요 두 번째 아담 안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만유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의 몸이 되어 함께 하늘에서 만유를 통치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하나님의 아들)과 독사의 새끼


 아담의  후손들은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원수에게 속아 타락한 이후에는 독사의 새끼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독사의  새끼는 서로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다. 이런 대조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에 등장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하시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독사의 새끼들로 등장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러 온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다. 세례를 받으러 왔는데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다. 역사상 가장 경건했던 부류였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다면 회개하지 않은 우리들을 향한 호칭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 가장 경건하다는 부류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 관하여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둠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지만 어둠에 속한 자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진 사도 요한의 그 말씀과도 같은 맥락의 판단인 것이다. 그 판단의 목적은 단지 정죄를 위한 것이  아니요 돌이켜 회개하여 살 길을 얻으라는 긍휼의 선포인 것이다.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두 번째  아담에게 속한 새로운 아담들(사람들)이 된다. 첫 번째 아담 안에서가 아닌 두 번째 아담 안에서 신 인류(아담)가 되는 것이다.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아담의 후손이 된다. 이전에는 우리는 타락하여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그 독사의 새끼들에서 아담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원수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돌이키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아담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태초의 아담의 지위로의 회복인 것이다. 다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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