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과 천국(가나안) 입성
Matthew 7:21-23 바른
"나에게 '주님, 주님.' 하는 자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그날에 많은 이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할 것이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할 것이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거짓선지자들과 그들에게 속한 무리는 질문을 한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의 질문은 자신들이 왜 거짓선지자인지 알지 못함이다. 또한 그 따르는 무리들도 자신들이 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인지 알지 못함이다. 거짓선지자와 그에 속한 자들의 가장 심각한 점은 자신들이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참포도나무가 아닌 가시나무에서는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들이 가짜인 것도 모르고 또한 자신들의 행위의 열매도 가짜인 것을 알지 못한다.
죽어서 지옥문 앞에 선 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신학을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소 7년을 공부하고 부교역자 생활을 했으며 그 모든 단계마다 시험을 통하여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목사가 되고 나서도 다른 이들보다 더 작은 월급을 받으며 세상에서의 성공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섬기며 교회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저를 모른다고 말씀하십니까?"
"지금 그렇게 산 저더러 지옥에 떨어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들은 죽는 날까지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것이 거짓신앙의 무서움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 항복(회개)하고 들어올 기회도 사라진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들은 이단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나의 완전한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 사랑의 계명은 만남을 전제로 하며 그 만남을 통해 우리의 뜻을 듣고 그것을 사랑의 동기로 하여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모든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다. 이는 산상수훈의 앞부분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내용들이 가지는 문맥을 통해 증명되어진다. 또한 성경 전체가 이것을 증거 한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 나무가 과일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와 포도나무인 나 예수에 관한 비유에 이런 말이 나온다.
John 15:1-27 바른
1"내가 곧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내 안에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신다.
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니,
4내 안에 거하여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내가 곧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들이다. 그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으니,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6누구든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는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게 되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운다.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8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어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여라.
10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11내가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내 계명은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14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이다.
15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아니할 것이니, 종은 자기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으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으니, 이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자기 주인보다 크지 않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므로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므로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그러나 그 사람들이 내 이름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너희에게 행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이나 지금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다.
23나를 미워하는 자는 내 아버지도 미워한다.
24내가 아무도 하지 못한 일들을 그들 가운데서 행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이나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다.
25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라고 기록된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며,
27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할 것이다."
이 말들에서 2절의 "내 안에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가지는"에서 "내 안에 있으면서도"의 원어는 "πᾶν(EVERY) κλῆμα(BRANCH) ἐν(IN) ἐμοὶ(ME) μὴ(NOT)"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주의하여 듣고 있는가? 분명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이 있다고 했다. 내 안에 가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자들이 두려움을 느낀다. 열매 맺지 않으면 제거되어(요 15:2) 밖에 버려져 마르게 되고 불에 던져 태운다(요 15:6)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자들은 포도나무 농부들을 관찰하여 가지를 제거하지 않고 땅에 늘어뜨려지거나 햇빛을 못 보는 가지를 관리하여 열매 맺게 하는 것이라 했지만 누가 봐도 이는 억지다. 분명 요 15장에서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제거하여 포도나무에서 버려져 말라지고 그 후에는 모아서 불에 태운다라고 했다. 분명 과일나무나 일반적으로 사람이 키우는 나무는 가지치기를 한다. 그런데 그 가지치기 당하는 나무가 자신이라 생각하니 두려워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부정한다 하여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그 해결책을 구하려면 먼저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 원인을 알기 위해 본문에서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관찰해 보자.
요 15:6에서 "누구든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는 가지처럼 밖에 버려진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요 15:2의 "내 안에 있는 가지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내 안에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가지는 분명 나에게 붙어 있으니 내 안에 거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요 15:2에서는 내 안의 가지(κλῆμα ἐν ἐμοὶ, 클레마 엔 에모이, branch in me)라고 했다. 요 15:6에서는 내 안에 거하지 않는(τις μείνῃ ἐν ἐμοί, 티스 메이네 엔 에모이, ANYONE ABIDE IN ME)이라고 했다. 여기서 가지가 사람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2절에서는 가지라고 했고 6절에서는 누구든지(ANYONE)라고 했다. 두 구절이 모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2절에는 거하다(μείνῃ, 원형 μένω)라는 단어가 없다. 거하다라는 단어가 없으면 버려지고 거하다는 단어가 있으면 열매를 맺고 풍성히 맺는다.
John 15:2b, 3, 4a, 5a, 9~10 바른
2b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니,
4a 내 안에 **거하여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5내가 곧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들이다. 그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으니,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여라. 10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11내가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내 계명은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14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이다. 15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아니할 것이니, 종은 자기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으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으니, 이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John 15:2a, 4b, 5b, 6
2a내 안에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4b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b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누구든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는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게 되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운다.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는 것(요 15:9~20), 그리고 사랑하면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5:13). 그런데 가롯 유다는 함께 있었으나 그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목숨을 버리지 않고 나를 팔았다. 여기 가롯 유다를 보면 육신으로는 나와 함께 있지만 마음으로는 나와 먼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자가 바로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다. 바로 내 안에 거하지 않는 자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른 11명의 제자들도 오순절이 있기 전에는 내 안에 온전히 거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내 안에 온전히 거해야 열매를 맺는다. 마음의 중심으로 온전히 하나 된 것이 아니면 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악하고 또 약한 마음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력(성령의 듀나미스)이 필요한 것이다(요 15:26~16:15).
요한복음 15장은 십자가를 앞둔 내가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내가 그들을 떠나 죽음으로 들어갈 때 그들이 어떠한 처지에 버려질지에 대해 알고 한 말이다. 그들은 사자 앞에 두려워 떠는 양과 같으며 늑대들에 둘러 싸인 가엾은 송아지와 같은 신세다. 그들은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했을 때 두려워했다. 그들은 어떻게 내가 있는 곳에 그들도 올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떻게 해서라고 나를 따라 내가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내가 없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바로 세상 속에 두려움으로 버림 당한 존재였기 때문이다(요 14:1~5).
John 14:5 바른
5도마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저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하니,
이들이 이렇게 질문하기 전에 나는 이미 그들에게 함께 거함의 비밀을 말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John 14:1-4 바른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내 아버지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하였겠느냐?
3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다.
4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들은 길을 알지 못했다. 나의 나라는 육신을 초월해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영으로 나를 만나지를 못했다. 영은 육신을 제외한 정신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만난다는 것은 육으로는 떠나 있으나 정신로 만나는 것이다. 이는 육이 없는 영적인 존재와의 교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가 영에 속했다는 것은 육신의 제약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 어디에 있든지 자유롭게 서로 교통 하며 말하고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요일 1:1~4).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마음으로 하나 됨이다. 요한복음에서 내가 말한 하나 됨은 이러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친밀한 것이다. 서로 사귐이 있는 것이다.
거듭남을 통해 우리와 함께 있고 그 마음이 우리에게 속하여야 우리의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야 사랑의 행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한 자만이 우리와 함께 할 자격이 있으며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하늘나라(천국)에 있는 것이다.
Matthew 7:24-27 바른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자와 같을 것이다.
25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자와 같을 것이다.
27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니, 그 집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매우 심하였다."
위에 수많은 말들로 설명하였으니 이 말에 대한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Matthew 7:28-29 바른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무리들이 그분의 가르치심에 놀랐으니,
29그분의 가르치심이 권위 있는 분 답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은 소경이요 천국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이 현대의 너희보다 뛰어남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러한 구약율법의 완전한 준행자들도 천국 밖의 존재들이다. 저들은 행위로는 나를 따랐지만 그 안에 사랑의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저들은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
Matthew 23:23-39 바른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요한 것들인 의와 긍휼과 신뢰는 버렸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것들도 행해야 했으며 저것들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맹인 된 인도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고 있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은 착취와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맹인 된 바리새인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하게 하여라. 그러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으니, 이는 너희가 회 칠한 무덤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자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들을 세우고, 의인들의 기념비들을 장식하며,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다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일에 그들과 함께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 조상의 분량을 너희가 채워라.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선지자들과 지혜로운 자들과 서기관들을 너희에게 보내니, 너희가 그들 가운데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들 가운데 더러는 너희 회당들 가운데서 채찍질하거나 이 성읍 저 성읍에서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흘린 모든 의로운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이것들이 모두 이 세대에 올 것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야,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그 날개 아래 모으려 하는 것과 같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하였느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다. 보아라, 너희 집이 버림받아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라고 말할 때까지 너희가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예수)의 말과 너희 거짓선지자들(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 역사와 현재의 사제라고 일컫는 자들)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인가? 왜 나의 말이 권세 있는 자의 것과 같겠는가? 나는 실재를 말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며 나는 전능자이며 영원히 존재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사 9:6).
Matthew 5:1 바른
1예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Matthew 8:1 바른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큰 무리들이 따랐다.
산상수훈의 처음과 마지막은 산에 오름과 내려옴이다. 산에 올라가 구약의 시내산과 같은 곳에서 계명을 선포하고 내려왔다. 구약에는 우리(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지켜야 할 계명을 선포했다. 그 계명대로 행하면 가나안을 얻고 그곳에서 평안을 누리며 장수할 것이라 가르쳤다. 성경에는 산과 관련한 핵심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성경에 순서대로 등장하는 산들을 나열하겠다.
에덴동산에서는 창조언약(생육번성, 정복, 다스림)이 선포되었다. 언약은 필연적으로 계명을 내포하게 되어있다. 언약은 서로 간의 약속인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 준수사항이 있다. 에덴에서는 그것이 선악과였다. 내 백성과 우리(하나님)가 사랑하면 그것이 낙원이다. 그 낙원의 삶 자체가 언약이다. 낙원 자체가 안식이다. 창조의 완성 후 주어진 7일의 안식은 영원하며 그 안식 안에 인류가 거하면 복락이 영원히 이어진다. 또한 그 안식은 원수의 어떠한 공격도 없음을 의미한다. 생의 어떤 굴곡도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만물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음도 의미한다. 동산의 모든 과일은 다 원하는 대로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약은 서로 간의 사랑을 약속함이다. 그 사랑의 약속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오직 한 조항만이 있다. 서로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인간은 그것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오직 하나 선악과를 먹지 않기로 했다.
그 이름이 선악과인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악을 정하고 자기 기준대로 행하는 것이 스스로 하나님 됨이므로 그것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 나무 자체가 선과 악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악과는 상징이다. 인간이 선과 악을 알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어서가 아니다. 스스로 우리(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악을 선택함으로 그 자신이 악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악과 자체의 기능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태초의 낙원에서 인간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만물과 함께 언제나 우리가 주는 안식을 누리는 존재였다. 에덴동산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우리의 얼굴을 보며 우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태초의 금지명령은 선악과 외에는 없었다.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모든 것을 먹고 마시며 누리는 완전한 안식이 있었다. 모든 자연은 인간을 대적하지 않았다. 가시가 인간의 살을 할퀴는 잃은 없었다. 태풍과 홍수가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일도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은 인간의 복락을 위해 있었다. 그것이 영원한 안식의 삶, 평안의 삶이며 그곳이 바로 복락이 가득한 낙원이었다.
이곳에는 성전이 따로 없었다. 태초의 세계는 모든 곳에 우리가 함께 함으로 그곳이 바로 성전이었다. 계시록의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이 타락하여 심판이 임했을 때 인간을 구원할 길을 열었다. 그것이 노아의 방주였다. 노아 방주 사건은 심판의 사건에 초점이 있지 않다. 노아 방주는 오직 구원에 초점이 있다. 방주를 통해 구원함을 입은 인간과 동물들은 새롭게 된 세상에서 또다시 언약을 받았다. 바로 방주가 멈춘 아라랕산에서의 언약이었다. 그 언약도 창조언약과 동일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인간이 바벨의 도시와 탑을 건설함으로 심판이 임했다. 그 타락의 자리에서 택함을 받은 자가 있었는데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민족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그들을 불러 시내산에서 언약을 주었다. 바로 구약의 율법이었다. 그들에게 준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언약이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안식을 주는 언약이었다. 여호수아를 통해 그 땅을 정복하였을 때 그 땅에 전쟁이 그쳤으며 그 땅에 평화(안식)가 왔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었고 구약의 율법을 주었다. 이 시내산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은 그림자였고 그 참인 하늘의 새예루살렘의 언약이 다가오고 있었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Isaiah 2:1-22 바른
이것은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말씀이다.
마지막 날이 올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 꼭대기에 서고, 언덕들 위에 높아지며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니, 많은 백성들이 오면서 말할 것이다.
"가자, 우리가 여호와의 산과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자. 주께서 주님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에서 재판하시고 많은 백성들을 판결하실 것이니, 그때에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니, 다시는 나라가 나라를 향하여 칼을 들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야곱의 집이여,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
"주께서 주님의 백성 야곱 집을 버리신 것은 그들에게 동방의 풍습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처럼 길흉을 말하고 이방인들의 자녀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는 은과 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말들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들이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일하고, 곧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에게 절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비천해지고 사람이 비굴해졌으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너희는 여호와의 두려움과 그 위엄의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틈에 들어가며 티끌 속에 숨어라. 그날에 거만한 자들의 눈이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거만한 자들과 교만한 자들과 높임을 받는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낮아질 것이니, 레바논의 크고 높이 솟은 백향목들과 바산의 상수리나무들과 우뚝 솟은 모든 산들과 높은 언덕들과,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들과 다시스의 모든 배들과 모든 아름다운 조각들에도 이 날이 임할 것이다. 그날에 교만한 자는 꺾이며 거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만 홀로 높아지실 것이며 모든 우상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땅을 뒤흔드실 때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두려움과 그 위엄의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틈 동굴과 토굴에 숨을 것이다. 그날에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려고 금과 은으로 만들었던 우상들을 박쥐와 두더지에게 던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땅을 뒤흔드실 때에, 너희는 여호와의 두려움과 그 위엄의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동굴과 바위 절벽의 틈 사이에 숨을 것이다. 너희는 인간을 신뢰하지 마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으니, 왜 그를 염두에 두어야 하느냐?
위에 등장하는 이사야 2장의 예언은 시온산 즉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다. 시온산은 예루살렘 성의 서남쪽에 붙어 있는 산이다. 그 아래로 기드론 시내가 흐른다. 예루살렘에 포함된 가장 높은 산이 시온산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말할 때는 시온산을 말한다. 이 시온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 예루살렘의 동쪽에 붙어 있다. 이 산은 모리아산이다. 모리아 산에는 성전이 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의 양을 받은 곳이며 자기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곳이다. 그곳에 다윗 시대와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 언약이 이루어져 성전이 세워졌다.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되어서 세워진 곳이 예루살렘과 그곳의 성전이었다.
성전과 다윗성이 있는 도시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이름이 시온산이었다. 시온산을 말하면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세워진 산의 이름이 시온이었다. 도시의의 최고봉이 시온산이다. 산이 솟아오르는 중간에 작은 산들이 있지만 그 작은 봉우리들의 이름으로 그 산들의 총체를 이름하지는 않는다. 최고봉의 이름으로 이름한다.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산들의 총체의 이름이다. 시온산에 예루살렘이 포함된다. 시온산의 중턱에 있는 얕은 경사의 평지가 예루살렘이다. 시온산의 동북방향에는 시온산보다 낮은 모리아산이 있다. 바로 성전산이다. 시온산보다 높은 감람산이 주위에 있지만 감람산은 예루살렘성 밖에 위치한다. 겟세마네는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작은 언덕이다.
(예루살렘_고도) [^1]
(시온산과_성전산-개요) [^2]
Micah 4:1~13 바른
마지막 날이 올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 꼭대기에 서고, 언덕들 위에 높아지며, 백성들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니,
많은 민족들이 가며 말할 것이다.
"가자, 우리가 여호와의 산과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많은 백성들 사이에서 재판하시고 멀리 있는 강한 민족들 사이에서 판결하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니, 다시는 나라가 나라를 대항하여 칼을 들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각각 자기 포도나무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행할 것이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행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날에 내가 발을 저는 자를 모으며 또 쫓겨난 사람 즉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을 것이니, 발을 저는 자로 남은 자 되게 하며, 또 쫓겨났던 사람으로 강한 민족이 되게 하고, 여호와가 이제부터 영원까지 시온 산에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너, 양 떼의 망루요, 시온의 딸 요새야, 네게 이전의 통치권이 회복되어 왕권이 딸 예루살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네가 어찌하여 소리치느냐? 네게 왕이 없어졌느냐? 네 조언자가 죽었느냐? 어찌하여 너는 해산하는 여자같이 진통하느냐? 시온의 딸아, 해산하는 여자같이 몸부림치며 신음하니, 이제 너는 성읍을 떠나서 들판에 거주할 것이다. 너는 바빌로니아까지 갈 것이나 거기서 너는 구출받을 것이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구속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민족들이 너를 대적하려고 모여서 말하기를 "시온이 더러워지며, 우리의 눈으로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생각을 알지 못하며 그분의 계획을 깨닫지도 못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타작마당의 곡식단같이 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의 딸아, 너는 일어나서 타작하여라. 이는 내가 네 뿔을 철로 만들고 네 굽을 놋으로 만들어 많은 백성들을 쳐부술 것이다. 나는 그들이 거둔 전리품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바치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님께 드릴 것이다.
이사야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의 기록에도 이사야와 거의 동일한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이사야와 미가는 예루살렘 즉 시온산의 심판에 관한 예언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회복되는 시기에 관해 말하는데 그때에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이는 구약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예수가 온 이후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과연 어디일까? 구약의 시온산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왔을 때 헤롯의 성전이 있고 헤롯의 궁이 있으며 마카비 왕조의 헤스모니안 궁이 있는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인가?
인류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때는 이미 악이 세상에 만연한 시대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은 어둠에 물들었다. 그래서 이 세상 즉 아담에게 속한 옛 세상은 불태우고 두 번째 아담인 나 예수에게 속한 새 세계(새하늘, 새땅)로 가야 한다. 그 새 세상의 수도의 이름이 새예루살렘(새 에덴)이다. 영적으로 율법과 말씀은 이 새예루살렘에서 선포된다. 만약 육신의 예루살렘이었다면 산상수훈의 새계명들을 선포한 곳이 지금 세상에 있는 예루살렘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새계명을 선포한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시온산 기슭의 어느 곳이 아니었다. 내가 새계명을 선포한 곳은 산상수훈 산이었다. 내가 새계명을 선포한 곳은 육신에 속한 땅이 아니요 영의 나라인 하늘나라의 새예루살렘이다. 내가 있는 곳이 하늘의 새예루살렘이요 바로 하나님 오른 편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나는 육신으로 가장 낮은 나사렛의 천한 목수였지만 나의 영적 보좌는 늘 하늘에 있었다. 그곳에서 선포된 것이 바로 새 율법이며 새 말씀이다.
나는 성경의 산들에서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언약을 수많은 내 백성들과 맺었다. 그 언약들은 항상 하나였다. 다시 에덴으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 에덴이 바로 새예루살렘이다. 새로운 세계인 낙원(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수도다. 만물 위의 곳이며 그곳이 교회다. 그 교회의 머리가 나 인간으로 온 예수요. 그 위는 우리(하나님)이다.
그런데 하늘나라 즉 우리가 다스리는 우리(하나님)의 나라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감히 누가 스스로 우리에게 나올 수 있는가? 어둠에 속한 어떤 인생도 우리에게 스스로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하나님)의 나라에 항복하여 나아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사실 그 의지를 꺾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여 인간이 나올 리도 없다. 누군가에게 순순히 복종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오직 교만을 드러내어 반역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복종하는 것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요 죽음이나 형벌이 두려워 굴복하는 것이다. 아니면 탐욕에 눈이 멀어 복종하는 척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복종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았음에도 위의 나의 말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한 번도 우리(하나님)에게 복종하려 시도해보지 않은 자다. 자기 본성으로 복종하려 시도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자기 스스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 것이다. 복종했다고 자랑하는 자들은 우리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요, 교회 안에서 자기의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외식(위선)의 행위를 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다. 자기 육신의 탐욕과 세상과 사탄에게 복종한 것이다.
여호수아서를 설명하면서 산상수훈을 이렇게 길게 언급한 이유는 하나다. 너희 중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책의 여호수아서에 관한 메시지를 비웃는 자들이 많음이 그 연유다.
이제 너희는 여호수아서에서 말한 가나안(천국)의 입성조건을 깨닫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