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과 천국(가나안) 입성
Matthew 7:12 바른
12"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너희도 그들에게 그대로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이다."
마음의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여 그를 기쁘게 하기를 원한다.
너희가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나의 율법은 사랑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리를 억지로 가게 하려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는 것이 사랑이다.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 사랑하면 바보가 된다. 사랑은 노예 됨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와서 나의 생명을 버렸다. 너희가 알든지 알지 못하든지 나는 너희를 위해 그날 그때에 나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도록 허용했다.
만약 나(예수님)나 우리(하나님) 중 그 누구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날 온 우주는 멸망당했을 것이다. 감히 하나님인 나를 죽이려 했는데 우리 중 하나라도 반대했다면 조물주인 우리 중 한 존재가 세상을 멸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존재가 사랑이 아니었다면 벌써 세상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따위 세상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우리가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이런 것은 장난 삼아 수도 없이 만들 수 있는 우리다. 우리가 무엇이 아까와 이런 쓰레기 더미를 그냥 둔다는 말인가?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그들에게 속한 세상과 그리고 그들의 타락한 보조자들인 악마들을 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감히 우리를 대항하고 우리가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 우리 중 하나인 내가 왔는데 나까지 죽이려 한 너희가 감히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과연 내가 너희를 위해 죽는 것을 당연히 여길 가치가 너희에게 있기나 하겠는가? 저 타락한 천사들을 보라 저들은 타락 이후 용서받을 길이 없다. 저들에게는 처음부터 육체가 없었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도 없으며 그로 인해 저들은 십자가의 대속에 의한 구원도 없다. 그런데 너희가 육체가 있다 하여 과연 천사들보다 못한 자들인가? 오히려 육체가 있음으로 구원의 기회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천사들보다 나은 자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너희가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가? 너희의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 중 하나인 내가 죽어야 하는데 과연 너희 전부의 목숨이 나의 목숨보다 더 나을 수 있는가? 아담의 반역을 너희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보았다. 그런데 너희는 핑계 할 수 있는가? 너희가 과연 실수하여 죄를 범하는 존재들인가? 아니다. 아담은 완전한 자의에 의해 완전한 의지를 동원하여 우리를 대적하고 반역을 일으켰다. 우리의 자리를 노리는 1순위의 반역자는 사탄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권세를 가졌던 아담이다. 결코 반역의 수괴는 사탄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너희는 반역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비웃으며 너희는 우리의 구원의 노력들을 멸시했다. 지금도 마음속에는 독사의 독을 품고 옆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행동으로 살해하는 너희는 과연 독사의 새끼들이다. 그런데 그것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선량하다며 사는 너희는 진정 악독하고 추잡한 범죄자의 새끼들이다. 너희는 어려서부터 권모술수와 악독이 가득하다. 너희 속에는 다른 이를 죽이는 악독한 더러움이 꿈틀댄다. 너희는 뱀의 욕망을 품고 뱀과 같이 징그럽게 기는 더러운 존재들이다. 나는 너희 행위를 혐오하며 너희 꿈틀대는 비늘의 죄악을 미워한다. 너희 존재 속에는 내가 사랑할 만한 어떤 아름다움도 남아있지 않다.
너희 죄악 중 가장 가증스러운 것은 그런 더러운 것들이 자신들은 아름답고 선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본주의라는 말도 안 되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자신들을 자랑했던 너희는 그 시절에 세계학살의 잔혹한 전쟁들을 저질렀다. 그리 하고도 깨닫지 못해 계속하여 어리석은 자기 자랑과 자기 의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왜 서구의 교회들이 문 닫았겠는가? 더 이상 사람들은 너희 허울 좋은 종교의 외식적 거룩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톨릭과 그 후신인 개신교에서 말하는 레미제라블의 몽상은 너희 외식교의 뾰족지붕집에는 없음을 본 것이다. 그러니 누가 뾰족지붕집으로 가겠는가? 아직 그런 참상을 경험하지 못한 제3세계의 어리석은 자들은 뾰족지붕집에 알지 못하고 찾아가 저 유럽과 같이 그 추악한 진실을 보지 못하여 충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저 뾰족지붕집이 언제까지 사람을 속일 수 있겠는가? 이미 너희 옆에서도 그 실상들이 드러나며 실망하여 더 이상 뾰족지붕집의 종교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태반이다. 뾰족지붕집에는 이제 도적들과 장사치들과 부드러운 비단옷의 명예를 구하는 자들만이 시체의 구더기들과 같이 들끓고 있다. 뾰족지붕집은 이미 죽은 시체이니 그 죽은 정통에는 구더기들이 들끓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타락한 너희라도 사랑한다.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 있든 네가 어느 시점에 있든 너를 사랑한다. 네가 죄인의 모습으로 있어도 나는 너의 아비가 되며 어미가 되어 네가 죄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너희 죄가 있다면 그 모든 죄의 몫을 내가 지겠다고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와 같은 어리석은 말을 할 것이다.
"내 새끼는 착한데 환경이 친구가 문제다. 다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 아이는 절대 그런 짓 안 한다. 저 아이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착하다. 착하고 사랑스런 내 새끼다. 천사보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다."
이 모든 말의 기저는 사랑이다. 사랑하여 모든 것을 사랑으로만 본다. 공의의 눈이 불꽃과 같은 우리라도 사랑이 눈을 가리면 오직 사랑의 판단만을 한다. 그래서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서라도 살려야 했다.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이며 너희를 향한 마음의 전부가 사랑이다. 나는 너희를 만날 때부터 너희가 핏덩이 일 때부터 광야에 버려진 너희가 살기를 바랬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시점에도 너희가 살기를 바랬다. 오직 그 한 마음으로 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 올라갔다. 창조주인 내가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고 내가 짊어질 십자가를 지지 못해 한 흑인의 어깨를 빌려야 하는 처참한 자리에서도 나는 네가 살기를 바랬다. 지금 과학의 테크놀로지를 쌓고 인간들의 연대를 힘으로 삼아 모든 공멸의 제약을 끊고 죽음으로 달리는 너희를 보는 이 시점에도 나는 너희가 살기를 바란다.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의 노예가 되게 한다. 상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그것보다 더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그들을 대접하여 주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다.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며 하늘의 완전함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완전함은 완전한 사랑에 있다. 완전히 사랑하며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말과 같이 행하라. 너희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타인을 대접하라. 그러므로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인간이 어떻게 율법을 이룰 것인가? 어떻게 형제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것인가? 인간의 본능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찌하라는 말인가? 형제가 아닌 스승과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위해서도 목숨을 버리는 것은 실패였다. 내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도 저 모양이었는데 누가 감히 이 율법을 이룰 것인가?
과연 누가 이 계명들을 뚫고 천국에 침노할 것인가?
Matthew 7:13-14 바른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나,
14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곳을 찾는 자들이 적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멸망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간다.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인가? 과연 씨 뿌리는 비유에서 밭이 세상이며 세상에 속한 자들이 길밖에 뿌려지는 것과 같이 여기서도 세상 사람들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물론 세상에 속한 자들은 모두 지옥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문맥을 잘 보라. 과연 멸망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이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무리는 누구인가?
글을 해석함에 있어 청중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지금 나 예수가 하고 있는 말을 듣는 자들은 나에게 "항복하고 천국에 들어오라!"는 말을 들은 자들이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며 이스라엘인들이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며 포로기를 겪고 더 경건함을 추구하던 하나님의 선민이라 일컬어지던 자들이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본래 의미를 찾기 위해 본문 자체의 문맥을 살펴보자.
멸망에 이르는 문에 대해 문맥을 따라 살펴보면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찍혀서 불에 던져지는 자들이다(마 7:19). 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다(마 7:21).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 불에 던져진다(마 7:19, 21). 또한 저들은 나 예수에게 '주님, 주님' 했던 자들이다. 또한 저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나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나 예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쫓아내고 나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과연 세상 사람들인가? 아니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인가?
마 7:13~27의 통일성
(마 7:13~14)
그런데 과연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거짓선지자들을 따르는 자들인가?
(마 7:15~20)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을 따라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인가?
(마 7:21~23)
또한 저들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인가? 저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인가?
(마 7:24~27)
저들은 나 예수의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인가? 저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며 저들은 비와 홍수와 바람에 그 집이 무너짐이 매우 심한 자들인가?
먼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인가?
Matthew 7:13-14 바른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나, 14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곳을 찾는 자들이 적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누구인지를 살피려면 본문(마 7:13~14)의 앞의 내용을 보아야 한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내용인 본문은 앞의 산상수훈의 결론과도 같은 내용이다.
산상수훈의 항복 조항을 선포하기에 앞서 나는 항복하고 천국에 투항하라(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항복의 경고를 했다.
그리고 그 항복 권고 선언을 듣고 항복하러 온 자들에게 팔복을 통해 천국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오려면 완전한 율법을 행하여야 한다고 했다. 저들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정도의 율법준수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완전케 한 율법을 선포하는데 그 율법을 지켜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먼저 구약과 비교해 완전한 대인 계명을 선포하고 그 모든 것을 지켜야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마 5:21~47).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해져라"라고 했다. 이는 완전한 의를 가져야 하는데 완전한 의는 율법을 완전히 행하는 것이다.
또한 구약의 대신 계명 다섯 개와 댓구를 이루는 완전한 새 다섯 대신 계명을 지키라고 했다(마 6:1~7:6).
그 후에 너희 스스로는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으므로 하늘의 능력인 성령을 구하라고 했다.
그리고 율법의 참 뜻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이 완전히 사랑하라고 했다(마 7:12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너희도 그들에게 그대로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이다.").
그 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바로 앞의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완전한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자들은 넓고 평탄한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완전한 율법을 행하여야 하고 나를 따름으로 핍박을 받을 것이므로 그 길이 좁고 험하다.
그러므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나 예수의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이다. 저들은 참 선지자인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므로 저들은 거짓선지자들에게 속했다. 그래서 저들은 내 말을 따라 행하여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들은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시나무다. 또한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엉겅퀴다.
결국 마 7장에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이다. 교회 안에 속했으나 지옥의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또한 마 7장은 교회 안의 대부분이 지옥의 넓은 문을 향해 간다고 설명하고 있다(마 7:13).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참 그리스도인으로만 구성된 참 교회를 말함은 아니다. 여기서 교회란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들을 말한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는 유형교회라고 한다. 또한 참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된 참교회는 무형교회라 칭한다.
유형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들이다. 그런데 이 유형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국의 백성은 아니다. 그중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구하는 구도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세상적 목적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온 악한 무리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형교회는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는 교회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 교회의 실체는 영적인 공동체로 영적 에클레시아다. 이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지 어느 시대에 있든지 영적으로 하나 된 교회다. 과거에 살다가 생을 마감한 성도는 영으로 이 교회의 일원이 되어있다.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참 성도도 이 교회의 일원이 된다. 현재 유형교회 안에 속하여 유형교회의 일을 하고 있지만 참 성도는 그 무형교회 안에서 나 그리스도의 뭄에 속하여 참 예배를 드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상 임신과 같은 거짓 상상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예배를 드려도 참 성도는 무형교회에 속하여 영적인 공동체 안에서 우리(하나님)와의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참 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의 말을 들으며 우리의 말을 따라 우리의 뜻을 행한다. 또한 우리와 대화하며 의견을 나무며 우리와 마음이 합의되고 동의되어 하나 된다. 한마디로 무형교회에 속한 참성도는 리얼한 만남을 한다. 생생한 만남을 이어간다. 결코 상상임신과 같은 상상만남은 그에게는 없다. 그는 우리(하나님)를 만난다고 할 때 결코 상상하지 않는다. 바로 그냥 직접 우리를 만난다. 그는 우리를 보며 우리와 대화하며 우리와 걷는다. 나 예수가 육체로 온 이유는 바로 아담과 같이 동산에서 우리(하나님, 엘로힘)와 함께 걸으며 우리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얼굴을 마주하는 삶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필요 없다면 나는 결코 육신으로 와 인간이 되어 인간이 다시 우리(하나님)와 하나 되게 하기 위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 헤어졌다가 다시 살려낸 아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과연 그 아들을 왜 살려내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너희를 살리려는 모든 이유는 한 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만나기 원하는 것처럼 너희를 만나기 원함이다. 사랑하는 행위의 핵심은 만남이다. 만남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면서 만나기를 거부한다면 그의 사랑은 거짓이며 이미 식어버린 마그마와 같이 그 생명을 잃어 굳어버린 화산재와 돌이 된다. 그러니 사랑은 살아 생생한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만남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원치도 않고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유형교회 안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저들은 대부분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그 길이 넓고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왜 대부분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가?
여기에는 거짓의 속임이 있다. 거짓의 속임으로 인해 사람들은 속아서 넓은 문으로 가고 결국 그곳은 지옥문이다. 속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거짓말로 속여서 유형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넓은 문으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Matthew 7:15-20 바른
15"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다.
16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17이처럼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에 던져진다.
20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앞에서 문맥을 여러 번 살펴보았듯이 거짓선지자는 넓은 문으로 자신도 들어가고 무리를 이끌어 들이는 자다. 또한 거짓선지자는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같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다. 거짓선지자를 따르는 자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된다. 거짓선지자들은 자신도 완전한 사랑의 율법을 행하지 않고 따르는 자들도 행하지 않게 한다. 결국 둘 모두 심판을 받아 넓은 길로 가게 된다. 그곳으로는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이 책의 앞에서 언급한 대로 거짓선지자들은 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사람들을 나의 백성이 아닌 원수의 백성으로 만든다. 또한 원수의 백성으로 산 결과로 지옥에 보낸다. 그래서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저들은 양의 옷을 입고 오지만 속은 약탈하는 늑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속임이다. 그들의 겉은 양과 같다. 그런데 그들의 속은 약탈하는 늑대다. 이들의 핵심적인 행위는 속임이다. 교회 안의 사람들이 거짓선지자들을 따라가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속임 때문이다. 거짓선지자들은 정상적인 양으로 보인다. 바로 교회 안의 성도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가 아니다. 저들은 성도인척 속이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속여 다른 성도들을 자신과 같이 만든다. 그런데 자신도 속은 자들도 참 성도가 아니기에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결국 지옥으로 들어간다.
거짓선지자는 이단일까? 사람들을 기독교인척 속여서 기독교의 이단에 빠트리는 자일까? 물론 이단은 기독교인척 속여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 그런데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나의 말의 후반부를 보라 저들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있다. 또한 저들은 자신이 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이 나의 성도가 아니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자신들이 나의 백성이며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단들도 자신들이 참 기독교라고 착각하며 자신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진정 이단인가?
잘 보라 이들을 정의하는 아주 정확한 단어는 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말은 문맥을 따라 보면 앞에 산상수훈에 나온 대로 완전한 율법을 행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완전히 율법을 행한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들은 완전한 사랑의 법을 행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정의하는 단어가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구절을 설명할 때 계속 설명을 이어가겠다.
거짓선지자들의 넓은 문은 그 길이 쉽고 평탄하다. 완전한 사람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죄인인 인간은 완전한 사랑의 법보다 미움의 법을 행하는 것이 본성에 맞다. 그래서 가기 쉽다. 넓고 평탄하다.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바로 행위다. 행위로 참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
구약에도 행위의 열매에 관한 구절들이 다름과 같이 많이 나온다.
Proverbs 1:31 개정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Isaiah 3:10 개정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Jeremiah 11:16 개정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Jeremiah 32:19 개정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Hosea 10:13 개정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Amos 6:12 개정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Micah 7:13 개정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바로 우리(하나님)의 말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하나님)의 말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
죄인은 그 의를 이룰 수 없지만 내(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나의 공로와 그 공로로 인한 성령의 합법적 역사로 율법을 성취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의를 말할 때 율법의 준수를 배제한 의를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죄인은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태생의 성도는 그 태생 대로 의를 행하며 산다. 물론 육체의 죄가 발목을 잡지만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다. 새롭게 거듭난 마음으로부터 새 생명의 기운이 올라와 그 소망을 인해 사랑으로 인내를 이루어 영광스러운 아들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 나 예수가 준 생명은 이렇게 영광스러운 것이다. 만물 위의 최고의 자리에 앉는 영광이다. 그런데 그런 영광스러운 자들이 죄에 굴복하고 죄로 인해 무너질 수는 없다. 이는 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모욕하는 것이며 나의 구원을 헛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의 구원은 확실한 능력이 있다. 나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다. 나는 권세 있는 자이며 서기관들과 같이 단지 말로만 명령하여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이루도록 하지 않는다. 나는 하늘의 능력을 부어 율법을 성취하게 하는 자다.
그러므로 행위의 열매가 없을 수 없다. 행위의 열매가 없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나 예수에게 속하지 않았으며 또한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다 해도 사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또한 그들도 자신들이 나 예수의 이름을 불렀다지만 실상 그들이 부른 신의 숨겨진 이름은 다르다. 그들은 탐욕을 섬겼으며 자기 욕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세상 신들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르치는 자인데 자신이 거짓선지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완전한 사랑을 따라 우리(하나님)와 대화하며 우리의 뜻을 묻고 그 길을 따라 완전한 율법을 행하는 가이다. 그리고 그대로 성도들을 가르치는가?이다. 만약 자신이 완전한 율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면 즉 우리와의 완전한 사랑의 사귐을 통해 우리에게 들은 대로 그리고 성경의 완전한 사랑의 법대로 행하고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거짓선지자가 된다. 다시 한번 너희 마음에 일어나는 의문과 억울함에 대해 답하겠다. 너는 자신이 참선지자 이었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기준에 네가 합당하지 않다면 미안하지만 너는 거짓선지자다.
참은 오직 하나다. 다이아몬드는 오직 한 종류다. 그와 비슷한 모든 것은 가짜다. 여러 가지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가짜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한국에는 참꽃과 개꽃이라는 말들이 많다. 경상북도 영양과 봉과 안동등에서는 참꽃은 진달래를 의미하며 개꽃은 철쭉을 의미한다. 독이 있는 철쭉은 사람들이 그 꽃을 먹거나 술을 담거나 화전을 만들 수 없기에 개꽃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것이 나리와 개나리다. 나리는 참 나리를 의미하고 개나리는 나리와 비슷한 노랑이지만 나리와는 다른 가짜임을 뜻한다. 머루가 있고 개머루가 있으며 배가 있으며 돌배가 있다. 배와 돌배는 조금 다른 표현이지만 배와 야생배인 돌배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돌배는 배인데 야생배다. 그래서 배의 크기에 비해 아주 작고 그 맛도 배와는 다르다. 과육도 거의 없어서 배의 씨방 주위에 살이 조금 붙은 정도의 크기다. 배의 씨방 주위를 먹어보면 그곳에는 신맛이 난다. 돌배도 익었을 때의 맛이 신맛이다. 그것도 배의 씨방의 신맛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조의 신맛이다. 익기 전에는 돌과 같이 단단하여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그 이름이 돌배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포도나무와 가시나무, 무화과와 엉겅퀴가 나와 있다. 이는 참된 과일나무와 과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짜 나무를 비교한 것이다.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대조하여 비교하듯 식물을 에로 들어 비교한 것이다.
참선지자, 참포도나무는 나 예수다. 또한 지상에서 참된 가르침을 행하는 선지자는 모두 나에게 속한 자다. 그러므로 참포도나무인 나에게 붙어 참된 생명을 공급받는 자는 참사랑을 행하여 참된 열매를 맺는다. 참된 행위의 열매를 맺어 참된 의를 행한 자는 비로소 천국의 백성이며 천국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하여 보라. 과연 자연적인 인간이 참된 사랑의 율법을 행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가? 과연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주류들은 사랑이 아닌 약탈하는 늑대들이다. 저들은 약탈한다. 저들은 심지어 도적질 하며 남의 것을 자신이 차지한다. 그래서 세상의 학자들이 말하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라미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John 8:43-44 바른
43너희가 왜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욕심을 따라 행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안에서 있지 않았으니, 이는 진리가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자기 본성에서 말하는 것인데,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John 10:10 바른 전반부
10도둑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지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한 인간의 심리적 언어로는 이기심이다. 바로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을 정의할 때 자기를 사랑하듯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대로 인간의 본성으로 이것이 가능한가? 만약 내가 거듭나게 하여 성령을 붓고 새피조물로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나의 복음도 거짓이다. 거짓이라면 천국도 모든 안식의 약속도 거짓이다. 만약 세상에서 그러한 거짓을 전하는 곳을 발견하면 즉시 그곳을 떠나라. 단지 너희를 약탈하려는 늑대의 집단일 뿐이다. 그곳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곳을 떠나라. 거짓이 어찌 참된 약속을 이루어줄 수 있겠는가? 혹 나 예수의 음성을 듣고 그곳에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려 하면 그곳에 머물라.
John 10:10 바른
10도둑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